법원 "공정성 기대할 수 없어", 서울변회 "일방적 재판진행 지적"
법관평가제 둘러싸고 법원·서울변회 갈등 고조
법원 "공정성 기대할 수 없어", 서울변회 "일방적 재판진행 지적"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하창우)가 24일 서울지역 법관 700여명을 대상으로 법관평가를 강행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일선 판사들과 변호사단체의 갈등이 조금씩 고조되고 있다.법관들은 사건 당사자인 변호사가 법관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평가항목에도 문제가 많다며 반발하는 반면 변호사들은 법관의 일방적인 재판진행을 지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법관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분위기다.서울변회는 24일 법관들의 평가항목을 설문형태로 만들어 소속회원 6,300여명에게 우편배송했다. 설문결과는 이날부터 내년 1월17일까지 25일간 접수한다. 한 사람이 다수의 법관을 평가할 수도 있다. 서울변회는 평가결과를 우수한 평가를 받은 법관군과 열등한 평가를 받은 법관군으로 나눠 내년 1월30일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판사들, 평가표 문항에 문제 많아= 법관평가표를 본 판사들은 평가문항들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평가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는 졸속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법관평가표의 ‘공정성’ 항목 중 ‘판결 전에 예단을 갖고 있지 않는가’라는 설문은 “구술주의에 대한 변호사들의 이해부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현재의 구술주의는 당사자에게 재판결과를 예측가능하게 하기 위해 재판도중 재판장의 심증을 드러낼 것을 권장하고 있다”며 “따라서 이 질문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만큼 ‘예단’이라는 단어보다는 ‘불합리한 편견’, ‘선입견’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또 ‘기록내용을 충분히 파악한 후 재판에 임하고 있는가’라는 설문에 대해서는 “현재의 공판중심주의는 취지상 법정에서 현출된 것에 의해서만 재판을 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판사는 공소장 내용만 알고 있어야 하고 수사과정에 대해서는 무지해야 하는 만큼 이 질문항목은 형사사건은 제외하고 민사·행정·가사사건에 한정한 질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사건처리태도’를 평가하는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조사하고 있는가’라는 설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변호사들은 일단 증인이나 감정신청을 하면 다 받아줄 것을 원하나 신속한 재판 등 효율적인 재판을 위해 변호사의 요청을 무작정 받아들여줄 수는 없다”며 “이 질문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만큼 ‘증거조사의 필요성에 관한 판단이 적정한가’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서울중앙지법의 또 다른 판사는 법관평가에 대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으려면 차라리 모든 변호사에게 평가표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판사는 “법관평가표 제출에 강제성이 없으면 결국 재판에 대한 민원성 불만을 나타내는 창구로 악용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같은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제도의 취지는 공감하나 제도가 너무 성급하게 시행된 감이 없지 않다”며 “오류를 없애기 위해서는 시범실시를 거칠 수도 있었을텐데 서울변회에서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공정성 시비가 일 소지가 있는 만큼 변호사가 직접 판사를 ‘평가’하는 방법보다는 일본처럼 판사의 잘못된 언행이나 태도, 즉 ‘팩트’를 법원에 전달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관평가표 >>
평가내용
평가기준
평가
자질 및 품위
말씨가 법관으로서의 품위를 가지고 있는가(고압적, 인격모독적, 반말투의 말씨 등)
A, B, C, D, E
태도가 법관으로서의 품위를 가지고 있는가
A, B, C, D, E
당사자나 대리인을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가
A, B, C, D, E
증인에 대한 태도가 진지한가
A, B, C, D, E
공정성
일방에 편들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가
A, B, C, D, E
당사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공평한 대우를 하고 있는가
A, B, C, D, E
판결 전에 예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A, B, C, D, E
사건 처리 태도
개정시간이나 고지된 재판시각을 잘 지키고 있는가
A, B, C, D, E
기록내용을 충분히 파악한 후 재판에 임하고 있는가
A, B, C, D, E
쟁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A, B, C, D, E
재판의 대상이 된 사안과 관련된 실무지식 및 관행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가
A, B, C, D, E
당사자나 대리인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가신문을 잘 듣고 있는가
A, B, C, D, E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조사하고 있는가
A, B, C, D, E
소송지휘권을 적절히 행사하고 있는가
A, B, C, D, E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는가(정당한 이유 없는 연기 등)
A, B, C, D, E
조정이나 화해를 강제하는 일이 없는가(불응하면 불리한 결론을 내리겠다 는 발언 등)
A, B, C, D, E
* 평가등급 구분 - A : 매우 좋다, B : 좋다, C : 보통, D : 나쁘다, E : 매우 나쁘다◇ 변호사, 일방적 재판 지적하는 최소한 장치= 법관들의 비판과는 대조적으로 변호사들은 그동안 법관들의 일방적인 재판진행을 지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생겼다며 반기는 분위기다.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근들어 법관이 무리한 조정을 강요하는 등 법관의 고압적인 재판진행이 부쩍 많아졌다”면서 “법조의 한축을 담당하는 변호사로서 당연히 판사의 재판태도를 지적할 수 있다고 본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이 변호사는 “패소한 변호사의 평가에 객관성이 우려된다”는 법관들의 지적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들의 이런 인식은 국민들을 대리해 사법절차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의 인식수준을 지나치게 낮추어 보는 표현 아니냐”면서 “오히려 공직자인 법관들은 사법절차에서의 국민의 대리인인 변호사들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 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또 다른 변호사는 ‘기록내용을 충분히 파악한 후 재판에 임하고 있는가’라는 설문에 형사사건을 제외해야 한다는 법관들의 지적에 대해 “형사재판이 여러차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인 의견서도 보지 않고 들어오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면서 “첫 기일에 기록을 보고 들어오라는 의미가 아니라 재판절차과정에서 제기되는 변호인의 의견을 정확히 인식하는지를 체크한 항목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변호사는 또 “변호사의 증인 및 감정신청을 무한정 받아 줄 수 없다는 법관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면서 “하지만 유달리 합리적인 이유없이 증인신청에 인색한 재판부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이에대해 변호사들이 적절히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하창우 서울변회장은 “법관평가제는 열등한 법관을 집어내자기보다는 잘하는 판사의 사기를 진작시켜 주자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면서 “당사자의 재판만족도가 높은 판사가 결국 승진하는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평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변회, 공정성 확보 고심= 서울변회의 법관평가제를 둘러싸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결국 ‘얼마나 공정한 평가를 하겠느냐’에 집약된다. 이에 서울변회 법관평가특별위원회(위원장 김정수)는 29일 회의를 개최하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정성 확보방안으로는 먼저 통계상 유의미한 설문만 집계에 포함하는 방식이 있다. 접수된 설문 중에서 통계상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수의 평가를 받은 판사는 평가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두번째로는 피겨스케이팅의 채점처럼 가장 좋은 평가와 가장 나쁜 평가를 제외한 나머지 평가를 유용한 평가로 인정하고 이들 점수를 합산해 총점을 정하는 방식이다. 또 설문에 응답한 변호사가 실제로 재판에 참여한 변호사인지도 철저하게 가려낼 계획이다.서울변회는 이를 위해 별도의 전산시스템을 마련하고 25일부터 접수된 평가표에 대한 입력작업을 시작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평가받은 법관이 우수와 열등 중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부터 특정법관이 17개 설문항목 중 어느 항목에서 장점과 단점을 보이는지까지 추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irene@lawtimes.co.kr
권용태 기자 kwonyt@lawtimes.co.kr
200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