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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실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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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가 기각 결정한 10-진정-0668000호 사건을 재진정했다!
    부추실 박흥식대표와 회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국회의장을 상대로 진정한 사건의 기각처분에 대해 재진정을 접수한후 시정하라는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국회가 부추실에서 1999년도부터 접수한 청원에 대해 계속 심사로 의결한 결과가 행정처분 대상이 아니라는 정무위원회의 답변과 국회사무처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에 대한 항의입니다. 우리모두가 힘을 합쳐서 국민의 권리를 찿아야합니다!! 부정부패가 너무 난무하고 국가기관은 억울한분들의 진정을 기각처리만 하고 여러 국가 기관으로 떠넘기기만 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십시요!! 부추실, 박흥식 상임대표와 이용선외 5명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2011년 12월 20일 오전 11시 30분경 방문하여 사건등에 대한 행정정보공개자료를 촉구한 후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7월 27일 결정한 10-진정-0668000호 사건에 대해 재진정(11-진정-0709000)한 후 농성에 돌입했다. 그 들은 이미 2011년 12월 13일자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각등 처분취소 청구의 소장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이 법치 기능을 상실한 부정부패에 대하여 국민들의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 성명서까지 준비한 것으로 밝혔습니다. 성 명 서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20,000여 전국의 회원은 대한민국이 법치 기능을 상실한 부정부패에 대하여 국민의식을 깨우치기 위하여 옥외 집회(시위·행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그러나, 대한민국은 모든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은 죄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청원과 진정으로 선처를 호소해야 한다.!대한민국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그러나 정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도 보조받을 수 없다.!이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없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없다.!그리고,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지 않다. 한번 사기와 강도를 당하면 찾을 수도 없고 회복할 수가 없다. 돈을 벌고 싶어도 사기꾼이 많아서 돈을 벌수가 없으며 일자리도 없다. 돈이 없으면 병에 걸려 굶어 죽어야 한다.!모든 국민은 언론 · 출판의 자유와 집회 · 결사의 자유도 없다. 모든 국가기관 앞에는 집회 허가를 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통신· 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법률로 지배를 하는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없으며, 저작자 · 발명가 ·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재산권도 보장받지 못한다.!따라서,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와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다!위와같은 헌법으로 국가를 부패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공직자 및 공무원들은 즉각 퇴진하기 바란다. 정의와 윤리도덕을 갖춘 청렴한 지도자가 입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20일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밝은세상뉴스,Facebook 참된지도자들의 모임, 특별수사청 법률개정을 위한 공권력피해자들의 모임www.buchusil.org / www.buchusil.com메일: man4707@naver.com / man4707@hanmail.net / man4707@kornet.net<문의처 : 02-586-8434, 6, 7 / 010-8811-9523>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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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예 부단장은 부국부동산 앞에서 억울한 사연을 취재하다!!
    김성예는 국가유공자의 부인으로서 생계가 어려워 1986년 5월경부터 과천시 별량동 제일상가 1층 소재에서 보증금 2,500만원, 월세금 50만원에 임차하여 제일식당을 운영하다가 건물주인이 명도를 요청하여 1990년 12월초경 명도해 주고 나서 새로운 점포를 얻기 위하여 1991년 3월초경 복덕방을 찾아 다니다가 평소 고객이었던 소외 이재신(부국부동산 대표)을 만나자 반가운 마음에서 2,500만원에 맞추어 점포를 구해달라고 의뢰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국부동산 대표 이재신은 같은 해 3월 28일경 김성예에게 식당하면서 고생하지 말고 자기가 돈을 키워줄 터이니 돈이 얼마나 있냐고 전화로 묻기에 김성예의 적금통장을 해약하면 1,500만원이 더 있다고 말하자, 이재신은 1991. 4. 2.경 경북 영주시에 신도시 개발하는 곳에 땅 200평이 평당 20만원씩 나왔는데 매수하라고 권유하기에 김성예는 장사를 해야 하니까, 2,000만원 밖에 투자할 수가 없다고 말하자, 이재신은 “나도 절반을 살테니 함께 사자고” 제의하므로 김성예는 그 말을 믿고서 이재신에게 땅 100평을 사달라고 2,000만원을 주었더니 1991. 4. 15.경 이재신은 등기비 30만원과 소개료 20만원을 받아 갔으며, 1991. 6.초경 경북 영주시 땅문서라고 하면서 김성예에게 주었으나, 본인은 한글도 몰라서 농속 깊이 놓아 두었다. 그런 후, 1991. 10. 11.경 이재신은 김성예에게 “동창 조성연이 2,500만원이 필요하다면서 월3부 이자로 1년만 빌려주라”고 말하여 김성예는 1,500만원 밖에 없다고 말했더니 나머지 돈은 자신이 보텔 테니 달라고 하여 당일 과천에 있는 “뉴코아 백화점 후문”에서 이재신에게 건네주었는데, 1991. 10. 16.경 이재신은 자신의 사무실로 김성예를 불러서 이재신 조성연을 소개하여 주었으며, 이재신은 그 자리에서 조성연이 1,500만원짜리 영수증을 작성하여 김성예에게 주었다. 그런후, 김성예는 이재신에게 조성연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자 1991. 10. 20.경 조성연 소유의 부동산(고성군 고성읍 신월리 362-3번지)에 채권보존으로 김성예와 자신의 명의로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하고, 등기부등본에 각 등기한 후 등기권리증을 김성예에게 주었다. 그런데, 이재신은 김성예에게 “조성연으로부터 이자가 자신의 명의의 통장에 66만원을 송금하면, 이자 45만원을 김성예에게 주었다는 증거를 나중에라도 조성연에게 보여주어야 하므로 김성예의 몫인 45만원짜리 영수증 1년분을 날짜는 기재하지 말고 이름과 도장을 찍어 달라”고 말을 하면서 문방구 영수증 12매를 내놓기에 김성예는 의심치 않고 이름을 적고 무인만 찍어주었다. 그러나, 이재신은 조성연으로부터 매월 66만원씩 이자를 받아서 김성예에게 45만원씩을 지급해야 함에도 조성연이 입금하지 않았다면서 이자를 안주기에 김성예는 1991. 11. 10.부터 1996. 4. 11.까지 한달에 적게는 세번 내지는 많게는 일곱번을 찾아가서 이자를 달라고 하면, 이재신은 내 돈으로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2만원내지 3만원과 5만원을 줄때마다, 빵이나 과일을 사오라고 하므로 김성예는 5천원내지 1만원 상당을 사례까지 했다. 그 기간에 김성예가 이재신으로부터 받은 이자는 300만원정도 뿐인데도 김성예가 침술을 배운 것을 알고부터는 이재신이 김성예에게 자주 침을 놔달라고 전화로 불러서 이재신의 사무실에 가서 침을 놔주기까지 하였다. 1995. 4.초순경 이재신의사무실에 방문했던 별양동 동장인 민충기씨를알게 되었는데,김성예가 그에게 십여 차례 침술한 사실이 있고, 이재신에게 이자를 받는과정을 보아서 잘 알고 있었다. 한편, 이재신은 약정한 이자도 잘 주지 않아 수시로 이재신에게 원금을 돌려 달라고 항의하자 (빌려준 돈을 갚을 테니 근저당권설정을 해지하도록 인감증명 2통과 도장 및 모든 서류)를 가지고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서 1996. 4. 26.경 이재신의 사무실에 갔더니 이재신은 등기권리증과 서류들을 모두 회수하고 해지하는 서류에 도장까지 찍고 인감증명서 2통을 김성예로부터 받은 후 김성예에게 “조성연이 중국에 가서 오지를 않아 본인의 돈으로 갚아주는 것인데 1,150만원만 받으라”고 강요!! “조성연이 중국에서 나오지 않을 경우는 근저당을 설정한 땅을 팔아야 하는데 팔아봐야 몇 푼 되지도 않는 땅이다”라는 말을 함으로, 중국에서 나오지 않으면 돈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을 믿고 과천에서 제일식당을 할 때부터 알고지내는 “과천교회”의 이준균 집사님께 전화로 상의했더니 우선 받아두라는 말을 함으로써 이재신이 주는 1,150원만 받았다. 그런데, 이재신이(1991. 11. 11.부터 1996. 6. 3)사이에 이자를 매달 66만원씩 받은 사실을 2003. 11. 5.자로 부당이득금 청구사건에서 통장 사본을 제출하여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결국 이재신은 통장으로 받은 이자로 원금(1,150만원)을 준것이다!! 또한 이재신은 1996. 4. 26.자로 김성예 명의의 근저당권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하여 편취해 간 다음에 공소시효 7년이 지난 2005. 3. 3.자로 위 부동산을 매매하여 엄청난 부동산의 시세 차액 내지는 고액의 이자를 챙기는 악덕 부동산중개업자다! 위와 같은 사실은 이준균 집사가 증언하였다. 그런데 1996. 6.초경 처음에 말했던 투자땅 (영주시 가흥동 산45번지)의땅 소유자인 이용미로부터 전화가 왔는데,“영주시 땅을 매수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평당 얼마에 샀느냐”라고 묻는 말에 김성예가 평당 20만원에 샀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땅 200평을 평당 9만원에 팔았다는 말을 하면서 서로 놀라면서 이재신은 악덕 중개업자라는 말을 하였고,이런말을 하는 걸 고맙게 생각하라고 했다!! 이에 김성예는 이재신에게 따지자, 이재신은 이용미와 통화한 사실을 알고는 김성예에게 땅값을 물어 줄 터이니 모든 땅 문서를 가지고 나오라는 전화를 하여, 김성예가 서류를 가지고 이재신에게 갔더니 문서를 보자고 하여 주었는데, 그 문서를 뺏어서 캐비넷 안에 넣은 후 “이용미에게 이전 서류를 모두 받아와야 땅값을 반환하겠다”라는 말을 하므로 땅값도 못 받고 문서만 빼앗겼다. 그 후 1996. 6. 18.경 김성예는 이용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촉구하는 최고서를 발송한 후, 변호사를 선임해서 1996. 6. 25.경 소외 이재신과 이용미를 상대로 사기혐의로 고소하였으나, 이재신만 사기죄가 인정되어 불구속으로 기소되었는데,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중 1997. 1. 30.자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또한, 1996. 7. 9.자로 이재신과 이용미를 상대로 수원지방법원에 매매대금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법정화해 조서로) 김성예는 피고 이용미로부터 1,800만원과 지연이자를 반환받았다. 그러나, 이재신에 대하여는 땅 값으로 지불한 2,000만원 중에서 이용미로부터 받은 1,800만원을 공제한 그 차액금 200만원과 등기비 30만원과 소개료 20만원에 대한 반환 청구에서는 (1991. 10. 20.경 이재신이 조성연에게 이자를 받아서 김성예에게 지급했다는 영수증으로 사용하겠다면서 김성예로부터 받았던 백지 영수증12장중에서 한 장 을 “금액 200만원”으로, 영수한 날짜를 “1991년 4월 2일”로 위조하여 위 매매대금반환 사건에 제출)하여 김성예의 청구를 기각하여서 항소를 하였다. 이재신의 위와 같은 사기행위로 인해서 1997. 1. 30.자로 발생된 피해금은 “토지매매대금 반환에서 못 받은 땅값 200만원과 등기비 30만원, 소개료 20만원, 지연이자 1,112,500원과 변호사비 400만원 및 1991. 10. 11.경 이재신을 통해서 이재신 조성연에게 대여한 1,500만원의 1996. 4. 26.까지 못 받은 이자금 54개월16일분의 2,454만원 중에서 그 간에 구걸하여 받은 이자금 300만원과 당시 원금조로 받은 1,150만원을 공제하면 총 피해금은 32,652,500원에 달한다. 2. 소외 이재신의 처, 임인숙의 사기혐의에 관하여 그런데, 이재신은 부동산매매에 대한 사기혐의로 구속되자, 항소를 제기하여 수원지방법원 사건에서 항소심재판을 받던 중 집행유예 선고를 받기 위해서 1997. 3. 15.자로 허위 사실로 김성예에게 500만원을 보상조로 공탁하였고, 법원에서는 김성예에게 공탁금을 찾아가라는 등기가 왔으나, 김성예는 이재신로부터 손해를 입은 금액이 많아서 이를 따지기 위해서 1997. 3. 24.경 이재신 사무실에 가서 만나려고 찾았더니 이재신의 사무실 직원이 이재신은 외국에 나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을 하기에 김성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공탁금 500만원을 찾았다. 그러나, 1997. 3. 25. 오후 7시경 이재신의 처(임인숙)가 찾아와서는 (“저 아시죠? 공탁금 찾으셨죠? 공탁금 찾고서 합의를 안 해주면 법적으로 크게 걸리니 합의를 해 주셔야죠”) 라고 말을 함으로 김성예는 (“당신 신랑 외국 갔다며, 외국에 간 사람과 어떻게 합의를 하느냐, 본인더러 오라고 해요”)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자기 신랑이 수원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다면서 남편 대신 이렇게 용서를 빌테니까, 합의를 해 달라고 울면서 사정하기에 김성예는 당신의 신랑 때문에 피해가 많아서 합의를 해줄 수 없다고 거절하자,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 다음날 1997. 3. 26. 오전 10시경 다시 온 이재신의 처, 임인숙은 “아주머니는 법 없이도 사실 분이고 저는 아주머니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호강하면서 산 여자도 아니고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았으니 자식처럼 생각하고 살려달라”고 사정하기에 김성예는 당신의 남편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 식품가게를 해서 먹고 사는데 수원법원까지 갈 시간도 없고 합의할 생각도 없다고 말하자, 임인숙은 “오늘 장사를 못하는 보상으로 100만원을 드릴 테니 빨리 수원 가서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실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남편에게 입은 피해는 합의서를 제출한 후에 정산을 해서 모두 주겠다”고 말하기에, 김성예는 “당신 남편이 친구 조성연에게 돈을 빌려주라고 해서 1,500만원을 빌려 주었는데, 여기서도 당신 남편은 조성연에게 이자를 함께 받아서 김성예의 묷을 송금하겠으니 백지 영수증 12장을 써 달라고 강요하여 1년분을 써주었는데도 이자를 안주어 손해를 주고서 그 영수증을 이자에는 사용하지 않고서 매매대금반환 소송에서 200만원짜리 영수증으로 1장을 써먹는 바람에 내가 패소를 하였으니 그 백지 영수증 11매를 돌려주면 합의해 주겠다”고 말했더니 임인숙은 “남편이 구치소에 구속되어 있어서 영수증을 어디에 두었는지 물어서 찾아 주겠다”는 약속을 거듭 하기에, 임인숙과 함께 수원에 가서 합의서와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해 주었더니 임인숙은 당일 주기로 했던 100만원을 70만원만 주면서 내일 만나서 정산하여 모두 끝내자고 하면서 합의서를 써 주면서 김성예에게는 영수증을 써달라고 하여 써 주었다. 다음날, 김성예는 아침부터 임인숙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오전과 오후에 이재신의 사무실에 전화하여 임인숙을 찾았더니 직원이 없다고 하여 그냥 전화를 끊었으며, 오후 4시경 외환은행에 입금확인을 하였더니, 당일 임인숙은 1997. 3. 27. 13:48경 30만원만 송금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1997. 3. 28. 오전에 김성예는 임인숙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오전 11시경 이재신의 사무실에 전화하여 임임숙을 찾았더니 직원이 받아서 그냥 끊었는데, 오후 2시경에 전화를 두번 하자 직원은 임인숙에게 전할 말을 잘 전해줄테니 말을 하라고 해서 김성예는 “3일전에 합의를 잘해 줬는데 돌려주기로 약속했던 백지 영수증 11매를 안주면 사문서위조로 법에 고소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전해 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자, 그 다음날 1997. 3. 29. 오전 11시경 임인숙은 김성예가 그 당시 용산 서빙고동에서 운영하던 행운식품 점포로 와서는 “어제 직원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들었는데 얼마를 드리면 합의를 해주겠냐”고 묻기에, 김성예는 “백지 영수증 11장을 가지고 왔는냐”고 되물으니, 임인숙이 “영수증을 집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남편이 형사재판 및 매매대금반환 소송에서 사용한 영수증 사본(갑제 10호증의 2)을 가지고 왔는데, 그 사본에 ‘사문서 위조 발생시에는 이재신의 처 임인숙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문구를 써 줄테니 합의를 하자”고 말하면서 “피해금 정산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부동산 건은 200만원만 받고 대여금 건은 700만원 밖에 없으니 그 돈만 받으라”고 사정하므로, 김성예는 “백지 영수증 11장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합의를 하느냐”고 임인숙에게 말하는데, 계속해서 김성예가 당시 운영하던 식품점에 물건을 사러 손님들이 들어오는 때문에 미루던 중 오후 4시경 과천에서 친하게 지내던 강복균 할머니가 와서 그 광경을 보고는 “합의하는 것은 쌍방이 합의서에 각 서명한 후 하나씩 가져야 한다”면서 “200만원짜리” 영수증을 직접 복사까지 해다 주었으며, 또한 인천에서 사는 친구인 최순희가 어제부터 놀러와서 있던 관계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임인숙의 말을 믿고서 김성예는 글을 모르니까, 임인숙에게 합의서를 쓰라고 말했더니 임인숙이 “받아야 할 내용을 써 왔으니 이를 보고서 직접 써달라”는 말을 하기에 김성예는 이재신에 관한 모든 것을 끝내기로 마음먹고서 임인숙이 써 온 대로 200만원짜리 영수증과 700만원짜리 영수증 및 합의서를 써주고 돈을 받았으며, 백지 영수증회수 건은 그 영수증 사본에 임인숙의 각서를 받고서 합의(合意)를 끝내자, 임인숙은 고맙다는 절을 10번도 더한 후 돌아갔으며, 이로 인하여 이재신은 1997. 4. 3.경 수원지방법원에서 징역8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고, 수원구치소에서 출감하였다. 그런데 1997. 3. 1.경 임인숙은 신월녀라는 여자와함께 김성예의 행운식품점으로 갑자기 찾아와서는 (“내가 여기 왜 온줄 알아? 당신 얼굴보러 왔는데 900만원 내놓으라고 말하러 왔어?안 내 놓으면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협박했으며, 임인숙은 “땅 주인 이용미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우리 남편이 며칠 후에 나오는데 너 그 돈 안내놓고 배길거 같아? 우리 신랑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만두지 않을 거야? 900만원을 내 놓으면 봐주겠어”라고 협박했으며, 또한 신월녀는 “너 변호사 살 돈 있냐? 너 돈 좀 쓸텐데? 너 그 돈 안쓰곤 힘들거야 좋게 말할 때 내놔”라고 공갈하면서 돌아갔는데, 이재신이 출감한 다음날에도 임인숙은 김성예에게 전화하여 “돈 900만원을 내주라 그렇지 않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겠다” 라는 협박까지 하였다. 그런 후, 이재신은 처, 임인숙을 교사하여 1997. 3. 26.부터 1997. 3. 29.까지 김성예와 임인숙 간에 합의(合意)한 모든 것을 파기하고서 김성예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최순자와 김금자 라는 여자까지 교사해서 김성예의 식품가게에 보내어 불법 도청까지 해 간 뒤 1997년 5월 1일자로 허위 사실의 고소장을 서울지방검찰청에 접수하였으며, 서울지방검찰청에서는 1997. 5. 8.자로 용산경찰서에 이송했으며, 용산경찰서에서는 1997. 6. 13.경 수사기록목록 과 같이 피해자인 김성예를 기소함이 옳다는 의견서로 송치를 하였는데, 서울지방검찰청에서는 1997. 8. 5.자로 김성예가 임인숙에게 1,000만원을 달라는 말을 전화로 전혀 아니했는데도 불구하고, 허위 사실의 공소장을 작성하여 기소함으로써 피해자인 김성예를 서울지방법원 에서 1998. 5. 28.자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하도록 교사 및 무고하므로써 공갈죄로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당시 공갈사건에서 국선변호사는 공판에서 판사가 묻는 말에 생략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므로서 결국에는 벌금형으로 죄인이 되었다. 3.부당이득금 2,600만원 편취혐의에 관하여 그 후, 이재신과 임인숙이 공모하여 1999. 1. 15.경 김성예를 상대로 김성예의 부동산을 가압류를 한 다음에 위 사항에서 김성예가 합의금으로 받은 900만원에 대하여 부당이득금반환 명목으로 지급명령신청을 서울지방법원에 접수하여 김성예에게 통지하므로 김성예는 1998. 12. 23.경 이의신청을 제기하여 정식재판이 재개되었다. 이에, 김성예는 “토지 매매대금반환 및 대여금 원금과 이자에 대한 합의금을 받은 것임”으로 답변하고, 또한 법무사 정금범을 대리인으로 지정하여 민․형사의 사건에 관한 문서 등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위임을 하였음에도 이재신의 소송대리인 장석화 변호사는 정금범 법무사에게 김성예에 대한 서류들을 제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여 방해를 했으며, 김성예가 작성하지도 않은 부동산 매매대금반환 200만원을 받았다는 “1991.4. 2.자 영수증을 법원에 제출하여 사문서위조 및 동 행사하고, 700만원짜리 영수증은 대여금 1,500만원에 대한 원금 및 이자로 받은 합의금에 대하여 공갈금으로 변론하므로서 사기소송으로 1999. 5. 6.자로 승소하였다. 김성예는 변호사도 없이 1999. 5. 26.자로 항소한 후에도 이재신의 소송대리인은 허위 변론 항소심에서도 항소기각을 당하자,이재신과 임인숙은 2004. 2. 26.자로 집행문 을 교부받아서 김성예의 부동산에 강제경매를 신청하였는데, 김성예는 이를 막지 못하면 피해가 많이 발생하겠기에 어쩔수가 없어서 2004. 4. 27.경 이재신의 소송대리인 사무실에 가서 금 2,600만원을 지급하게 되었다. 4.본건 대여금 소송에서 이재신의 위증혐의에 관하여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서 1997. 3. 26.부터 1997. 3. 29.까지 사이에 이재신의 처 임인숙과 합의하고 받은 200만원은 부동산 매매대금에서 못 받은 돈을 받은 것이고, 700만원은 김성예가 이재신을 통해서 이재신 조성연에게 대여한 1,500만원에 대한 원금 1,150만원만 받고 못 받은 원금 과 이자로 받았던 것이 명백한 것이므로 이재신과 임인숙을 상대로 2003. 9. 8.경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의 소(2003가단 54173호)를 각 제기하였다. 또한, 조성연을 상대로 2003. 9. 15.경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여금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던 것인데,이재신의 소송대리인 장석화 변호사는 부당이득금 사건에서 이재신이 부동산의 사기로 구속된 사건에서 사용했던 “200만원짜리 영수증” 등 위조한 문서들을 가지고 김성예를 공갈죄로 고소해서 처벌받은 판결문을 제출함으로써 김성예가 변호사도 없이 제기한 부당이득금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기에 김성예는 항소(서울남부지방법원 2004나 4114호)를 하여 그 진실을 밝혀 달라는 변론을 하였는데도 모두 기각 당했다. 이렇게 법두모르고 글도모르고 장사만하던분을 부동산투기와 이자받는걸로 유도하면서 있는 돈을 갈취한 부동산업자와 그변호를맡았던 (서류 위조)한 부분을 계속 지켜봐야겠다!! 장석화변호사는 국회의원을 두번 한 변호사라고한다!! 김성예님은 이걸로 인해서 재산과 가족의고통에 눈물지으신다!!
    201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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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립한 땅을 동업으로 매입했는데 동업자는 혼자서 삿다고 한다!
    이 사건의 피해자 이용선(남, 75세)씨는 현재 지체장애인 2급자로서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대한법률구조공단 정혜진 변호사와 항소심은 임태선 변호사들의 변론비리(행정소송법 제19조의 규정을 행정심판법 제19조의 단서로 진술하는 방식)로 패소를 하였다. 이용선씨 사건은 이렇게 발생되었다. 지난 1975년 10월경 파주군수가 광탄면에 시찰나왔다가 창만리와 방축리 지역에 쓰레기 떠미가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한 후, 광탄면장에게 따귀까지 때리며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일때를 매립하라는 지시가 내려지자, 당시 면장은 이용선씨에게 쓰레기 떠미를 매립하지 않으면, 농지작업을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창만리 312-2번지와 창만리 564-1번지의 하천부지를 매립하였다. 그런데, 이용선씨가 국가로부터 매립허가 받은 땅의 매립이 1986년도에 끝나자 일부의 땅은 농사를 짓고, 남는 땅에 골재를 적재하였더니 당시 박동수 면장은 이장에게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말하여 방축2리 허종무에게 갔더니 돈 3백만원을 요구해서 돈을 주지 않았더니 나중에 찾아와서는 창만리 312-2번지가 사유지이기 때문에 땅을 매수해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에 등기부등본을 확인하여 보니 허엽씨의 개인명의로 등기된 사실을 알게되어서 1988년 9월초 허엽씨에게 토지사용확인서와 인감증명을 첨부하여 받았다. 그런데, 허종무 이장은 이씨가가 매립한 허엽씨의 땅의 일부가 91년도에 도로로 편입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허병문, 허송무와 공모한 후 1988년 9월경 허병문과 함께 허엽에게 찾아가서 창만리 312-2번지 땅을 넘겨주지 않으면 좋지않다며 협박하면서 신체에 대해 어떤한 위해를 입힐 것 처럼 태도를 보여 겁을 먹게한 다음 허엽씨를 광탄면 사무소로 유인하여 그로부터 위 땅에 대한 소유권 이전용 인감증명을 발급받아 그들의 집안 친척인 소외 허송무 앞으로 1988년 11월 12일경 토지매매로 소유권을 이전하여 토지를 갈취였다. 그런후, 이용선에게 땅을 매립한 점유자는 정부명의의 땅은 불하를 받을 수 있지만, 이씨가 매립한 땅은 사유지인 때문에 허병문(신탁자 허송무)에게 땅을 매수하기로 마음먹고, 1990년 5월부터 허병문과 허종무를 상대로 협의한 결과 평당 12,000원으로 합의되어 토지 4,028평에 토지대금 4,800만원으로 정하고, 이용선씨가 매립한 비용은 2,400만원에 합의되어 1990년 8월 8일 광탄면 신산1리 75번지에서 중기사업을 하는 우완호 사무실에서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다. 그런데, 이씨는 우완호의 소개로 알게된 소외 김광주와 함께 자신이 매립한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하기로 약속하여 위 날자에 계약을 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김광주는 단독으로 계약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에 대하여 계약서를 작성한 우완호씨는 “평당 6,000원으로 결정하였다는 거짓말을 하므로써 김광주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그 후 파주시 경찰서에 고소하여 조서를 받았으나, 그 때는 허병문이 이용선에게 매수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우완호의 “사실확인서”에 의하면, “이용선과 우완호는 일 한건 얻으려고 1990. 8. 8. 경기 파주시 광탄면 창만리 312-2번지 전 4,028평의 소유자 허송무를 매도인으로 하고 이용선 외 1명을 매수인으로 한 부동산매매계약서 2매만 작성하여 주었고, 그 후 이용선씨는 1991. 3. 5.경 교통사고를 당하여 수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2급 장애인이 된 사실을 확인합니다. 단, 매매자는 허병문이 등기권리증과 허송무의 인감증명 1통을 제시하여 명의신한 허병문의 대리인으로 매매날인 하였습니다.” 라는 내용인데도 이씨는 우완호가 부동산매매계약서를 2매만 작성하여 허병문과 김광주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이씨는 우완호의 소개로 알게된 김광주와 공동으로 부동산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김광주는 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이씨가 보관하고있는 인감증명서 1매와 계약금 영수증 1매를 보자고 하여 주었는데 이를 반환하지 않던중인 1991년 3월 5일경 원고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검정색 승용차가 옆으로 접근하여 오토바이를 충돌해서 이씨는 머리를 가로수에 박아 두개골이 골절되어 의식불명되자, 김광주와 허병문, 허송무, 허종무, 우완호 등은 위 토지가 평당 6,000원씩 4,028평을 매매대금 2,400만원에 단독 계약한 것이라고 공모한 후 허위사실로 부동산매매계약서를 1990년 6월 13일 작성하여 2001년 6월 15일 이씨가 매립한 땅을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므로써, 이씨는 배임등 사기로 당시 약 2억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는데도 경찰, 검찰, 판사 및 변호사 등은 진실을 밝혀주지 않고 있는 사건이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사기소송을 한 변호사들을 고발한 상태에 있으나, 징계조치를 아니 할 경우는 부추실 부정부패고발센터에서 고발한다는 것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밝은세상뉴스기자 강동진 dongjin9164@hanmail.net)
    20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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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시장은 부패한 서울시 공무원을 발본색원하여 해임하라!
    부추실 회원인 정양례(당 85세)씨는 2011년 12월 1일 오후2시경 부추실의 박흥식 상임대표가 작성한 “사건2011누37734호 서초동산153-1,2내지6번지 환지처분무효확인”의 추완항소 이유를 제출하기 위해 부추실 상임고문이며, 전 국회의원 박영록 의원과 부추실 박흥식 대표, 김성예, 이미영, 강동진 등은 서초동에 있는 서울고등법원(행정)에 방문하여 접수했다. 사건의 개요는 정양례씨는 작고한 남편 박신옥씨와 함께 1969년 3월경에 서울시 강남구 서초동 산151-1, 산152-1, 산153-1번지(임야 8,900평)를 포함한 임야 약27,058.82평을 ‘목천상씨함안공파종중’의 문중으로부터 매입하였으나, 당시 무식하여 등기이전을 아니한채 가옥을 짓고, 은행나무 300그루 등을 심으며 가족들과 20년 이상 살았다. 그런데, 서초구청 공무원 김수한(현 구의원)은 당시 정양례씨가 무식하여 등기를 아니하고 살고 있는 것을 인지한 후, 토지사기단들과 공모하여 정씨의 땅을 강탈하기 위하여 서울시에서 공고한 영동지구 1,2 구역에 포함시켜 환지확정처분을 한 것으로 만들어 땅을 국(체신부)와 신동아건설에 팔아먹고 또한 서울시에서 지급하는 보상금을 횡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정씨는 서초구청의 김수한 등은 파렴치한보다도 더한 칼만 안들은 강도 짓을 수차례 한 주범이므로 용서할 수 없는자, 라고 성토했다. 그 사연은 수차례 강제철거를 하면서도 사전에 계고장을 통보하지도 않았을 뿐만아니라, 강제로 철거원 약 150여명을 투입하여 마구잡이식으로 철거하면서 가재도구를 비롯한 살림살이 및 금패물과 토지를 매입한 서류와 족보까지 몽땅 강탈하여 가서 증거를 인멸한 후, 더 이상 살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설치하고, 토지사기단들과 공모하여 서초동 산153-1번지(임야 8,900평)를 27개로 분할하여 팔아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 도로로 편입된 토지에 대하여 서울시로부터 보상금을 횡령하고자 1995. 12. 18 정양례씨의 도장을 몰래 새겨 인감계를 위조한 후 다른 사람의 지문을 찍고 인감증명을 발급한 다음에 2004. 5. 4. 정양례씨가 동사무소에 방문하자 지문을 채취하기 위하여 강제로 오른팔을 비틀어 전치 3주 이상의 (어깨관절의 염좌, 긴장과 어깨의 회전근개의 힘줄손상)의 손상을 가해하였음에도 치료조차 아니하여 결국에는 2011. 4. 20.경 인천에 있는 바로병원에서 수술을 하므로써 무려 12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게한 것이다. 정씨는 방배경찰서, 서초경찰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에 십여차례 고소를 하였으나, 매번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불기소 처분을 하므로써 더 이상 검찰과 변호사 등을 통해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중에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전개하던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의 김성예 시민감시단 부단장을 알게되자, 위 억울한 사건을 부추실 부정부패고발센터에 진정하였고, 부추실 고발센터에서 조사한 결과는 우리나라 관료들의 총체적 부정부패행위로 인식한 후,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 김영옥과 위원장 김영란을 감사원에 고발하였으나 감사원장 양건은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의 직무책임을 면제하기 위하여 본 사건을 국민권익위원회로 이송한 상태다. 또, 부추실은 링컨로펌 안태훈 변호사가 1심에서 부실변론으로 각하된 판결을 정양례씨에게 전달조차 아니하여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 부추실 박대표는 서울행정법원에 추완항소장을 제출한 결과 추완항소를 받아주어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의 준비명령에 의하여 본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것이다. 따라서, 정씨는 앞으로 진행되는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의 법정에서 어떻게 대응하여 43년간의 억울함에 대해 밝힐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밝은세상뉴스 시민기자 이채문 lcm73@hanmail.net
    20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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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양길모 기자 =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최상열)는 1일 만취한 부하 직원을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로 기소된 권익위원회 고위간부 박모(55)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및 신상정보공개 3년을 선고했다.박씨는 지난 5월3일 오후 9시40분께 여직원 A씨와 술을 마신 뒤 만취한 A씨를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로 데려가 강제로 성폭행해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기소됐다.1심 재판부는 "중견공무원으로서 만취상태의 부하직원을 성폭행하고 호텔에 그냥 두고 나온 점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dios102@newsis.com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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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상대로 승소한 공개거부처분취소!
    김성예씨는!! 국가유공자의 처로서 두 아들의 교육비와 생계유지를 위하여용산구(서빙고199-7호)에서 행운식품을 운영점포 (약 6평)의주인은 (성래세와 처, 정복란) 입니다!! '96년 7월부터 8년동안 한번도 임대료(보증금 300만원에 월45만원)을 밀리지 않았으나, 영수증을 써주지 않아서 자주 다투었습니다. 그 후 재계약(보증금 800만원에 75만원)을 하면서 성래세는 임대료를 자신의 처, 정복란 명의의 통장으로 넣으라고 강요하여 매달 현금으로 송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경기 관계로 장사가 않되서 처음달은 5만원을 깍아 주었으나, 계속 장사가 않되서 결국은 보증금을 빼달라고 요구하자, 점포를 복덕방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원으로내 놓으라고 말해서 점포를 내놓아서 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섰는데 바로 재계약을 안해주다가 점포가 나가지 않자, 결국에는 월세를 55만원으로 내려 주겠다고 약속하여 7개월 동안 송금을 하였는데도 정복란은 어느날 갑자기 돈을 필요하다면서 월세 75만원을 현금으로 받아간 사실이 있었는데, 그 월세도 받지 않았으며!! 그리고 임대료를 55만원으로 깍아 준 바 없다면서 밀린 월세 220만원(75만원+20만원씩 7개월분+5만원도깍아주지 않았음)을 않냈다면서 계약기간 만료 3일전에 내용증명을 보내어 명도를 하라는 통보를 하였다!! 그런후 서부지방법원에 사기소송으로 명도소송을 제기하자, 조병구 판사는 사기소송을 은폐하기 위하여 1회 출석으로 김성예(피고)에게 변론할 기회도 주지 않고, 피고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자" 한마디로 거절한 후ㅡ입다물어, 한번만 더 입벌리면 퇴장시켜버린다면서 말도 못하게 변론을 종결한 후, 선고기일에서 건물을 명도하라는 판결선고를 했다. 그리고, 2004년 9월 8일 집달관 및 9명이 가게에 들이 닥쳐, 김성예씨를 2명이 잡아 눌러 실신시켜 놓고서 모든 식품들과 살림살이를 모두 점포 밖으로 내 팽겨 친 후 자물쇠를 채우고 명도소송을 끝냈다!! 그런데 명도한 집기등을 인도에 쌓아논 것을 용산구청에서 계고통지도 없이 도둑질로 실어 갔다. 그 물건을 현재까지 용산구청이 일방적으로 강탈하여 가져가서 아직두 보관!!이제는 책임을 못진다고 한다!! 위와 같은 증거를 제시하여 고소를 했는데도 용산경찰서와 서부지방검찰청은 날짜없는 75만원 영수증과 55만원씩 7번을 송금한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부당이득을 취한 성래세와 정복란을 면죄부를 주는 수사를 하여 무혐의 처분을 하였다!! 그래서 수사기록을 복사하여 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하였더니~!!안해주어서 결국에는 변호사두 없이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박흥식대표)의 노력한 결과로 정보공개를 거부한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음으로써 서부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이 것은 처음있는 사건으로써 검사장을 이긴 첫사례 라고 한다!! 수사기록에 대한 복사를 안해주어서 재판에서도 억울하게 패소한 것인데~~!! 수사기록을 정보공개 및 복사를 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어져야 겠다!! 또한~~!!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청구하여 나오는 금액은~!! 누구의 돈인지 앞으로 따저 볼만한 것이다!! 수사가록을 거부한 검사의 봉급에서 지급하는지 말이다!! 국가배상법에 의하여 누구인가는 변상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따져볼만한 일이다!! 잘못한 검사가 내는 것인지 아닌지를....!! 국민의 세금은 안돼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소재를 물어야 한다!그래야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밝은세상뉴스 강동진기자 dongjin9164@hanmail.net)
    20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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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공무원을 교사한 사람들은 반드시~처벌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근대사는 참 굴곡이 많다! 일본수탈로 나라는 망해가는데... 국민은 제대로 공부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전쟁!! 그 가운데~또!! 개발과 성장속에 부를 쌓아가는 과정중에 법두 모르고 글도 모르는 가운데~!!참 억울한 사건이 많은 것 같다. 여기 한분이 계시다!! 내가 보기엔 이 시대의 과정을 보는 듯하다! 1969년 3월13일 상씨문중에게 (서울시서초구 서초동 153-1번지와 153-2~6번지)땅을 산 정양례님과 남편(작고)은 잘알지 못하여 제때 등기를 하지 않아 인감시효를 넘기고~!! 다시등기를 하고자 땅을 매도한 상씨를 찿으려 하나 찿지못하고~!! 땅에 집과 유실수 등을 심고 20년 넘게 살았다!! 1985년!! 12월 28일 땅과 집이 구획정리에 들어가면서 (산153-1은 구획번호 817 ) 환지면적(권리면적) 2,361 평으로 지정~!! 서초동은 방배동으로 변경!! (산153-2~6)은 어떻게 분할됐는지 통보조차 해주지 않아 지금도 몇번지 인지 모르신다고 한다! 환지됀 땅에 도로가 생기고 보상을 하기 위해 구청 관리과에서 소유주를 찿다가 소유주가 없고 무허가 집인걸 알고는 그 당시 담당관 김수한(전,건설관리계장,현 양재동장)은 욕심이 생겨 땅은 서초구청 땅으로 만들기 위해 인감도 몰래 새겨 개인~인감발급 부정을 저질러버린다!! 이에 경찰과 검찰에 고발과 고소해도 무산~!! 재판 자체를 못했다고 한다!! 또~김수한과 손관호(성동구 철거반원-자살사망)은 계고통지도 없이 1991년 10월초 집을 헐어버리고 다시움막을 지으니~!! 회유 "내가봐 줄테니 집을 잘 짓고 살라"고 해서 1억2천 만원 들여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몇 개월후 1994년~또 집을 무참히 허는 일을 하였다!! 또..이대로 가면 국가 소유가 되니 억울하지 않느냐 면서~!!변호사(이규옥)을 소개해주고 재판비용을 댈테니 승소하면 땅의 3분의1을 달라해서 어쩔수 없이 응한 후 어렵게 빚을 얻어 소송비용 500만원을 주었으나~!!정식명의의 등기는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변호사를 낀 사기를 한 것이다!! 공무원이~!! 지금은 골프장이었고 또 다시 주차 임대를 하는 땅이~서초구청관할이라고 하더니 막상가서 물어보면 또 서초구청관할이 아닌 개인이 관리한다!! 라는 상충됀 답변만 하는 서초구청!! 지금의 주차장 땅에서 계속 밀려오고 신동아 쪽 재개발로( 도로내면서 아파트지으면서) ***참고로~도로낼 때도 정양례님 한테 통보두 보상두 안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kt 건물자리로 밀린 정양례님은 1995년11월 집철거와 가재도구, 패물, 땅 매입서류, 족보등 몽땅 화물차에 싣고 떠나 버려서 모든걸 잃어버리셨다!! 그리고 땅에 못들어 가게 철망을 치고~20년 넘게 키운 은행나무등 유실수도 팔거나 태어버렸다!! 대항조차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 당시 철거민들 무참히 내쫓기고 용역깡패들 설친 건 알고들 잇으실꺼다!! 저항하다 포크레인에 아이가 사망한 것두 난 기억한다!! 또 주변에서 보상금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김수한에게 가서 물어도 모른다고만 하고~!! 김수한와 손관호를 서초경찰서에 고소해도 하루만에 풀려나고~!!법으로도 안돼는 것을~당함!! 이에 손관호는 "지금까지의 일이 탄로나면 (10~15년) 징역살아야 하니 무섭다면서 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서초경찰서 담당형사 최연순). 공무원과 용역깡패에게 당하고도 또 이웃 주민도 정양례님을 사기친다!! 이웃에 정계순은 사정을 알고 접근을 시도한 후 20년이상알고 지내는 변호사 박종범을 소개하여 빨리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소송의뢰비(900만원)을 대는 대신에 승소하면 (1001-1)번지 25평을 양도해라 ~등기경비(취득세, 공과금 잡비일체)는 담당해라 한다~!! 만약 패소하면 1000만원을 즉시 반환한다는 각서로 공증을 요구 1993년 3월 24일 공증을 하셨다!! 정계순이 잘아는 박종범 변호사는 수임한 후 인감도장을 요구한 후~놓구 가라구 하엿고 다음날 잃어버렸다며 돌려주지않고 !!한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찾아 갔더니 재판이 밀렷다고만 햇다!!하면서 빼기만하였다!! 법을 잘아는 변호사가 소송수임 4개월만에 돌연 사임..의뢰비(500만원)도 미반환 소송서류도 돌려주지 않아(변호사협회에 가서 알리겟다) 큰소리 치고 서류도 가져옴!! 또 패소하면 정계순은 1000만원 즉시 반환하라는 요구두 하지 않는 이상한 일은 뭔가를 챙긴 증거라고 보신다구 하신다!! 1998년 2월12일 정계순이 또 찿아와 "서초구 방배동 1001-7의 대지를(50%)준다는 공증을 하면 재판에 이길수 있게 한다는 말로 또 공증을 하였으나 9년이 지난 2007년 5월까지 무소식! 또 이때 손관호도 자살하는 이상한 일도 겹침!! 또 고선재(다시 방배1동 동장) 양대영(방배1동 공무원)은 1995년 12월 18일 인감증명서도 새로운도장으로 찍어서 이상해서 알아볼려고 하면 확인거부~~!! 다른 동사무소가도 방배동으로 가게 미리 조취를 함!! 2004년 고선재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때...(인감등록 원부)가 잘 안보인 다구 억지로 지문채취중 완강히 거부~!손목 비틀고 밀어서 뒤로 넘어감!! 상해에 보상무..경찰고소 해두 무마 ..직무유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공무원의 부정과 철거용역의 폭행!! 그리고 현장 답사를 하면서 느낀 건~!! 상문 문중하고도 무관하지 않은 거 같다!! 땅 살 당시는 학교가 없었으나~!! 상문고등학교 설립하고 이사장이 밀려 났다고도 하고~~!! 분쟁두잇었다하시니~!! (도대체 5~6필지의 그 많은땅은 어디로 간 것인가??) 살고 있으셨다던 주차장과 kt 자리로만은 그 필지에 모자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름 없는 덩그러니 무덤만 있던 곳은 문화제로 인정됀 것!! 개인이 몰라서 법으로 밀리는 건 개인 잘못이지만~~!! 20년 넘게 살았던 곳은 실거주로 인정이 돼어서 땅소유권주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것두 무시~!!공권력으로 행정으로 밀어버린 서초구청의 부정 공무원들은 벌을 받아야 하고~ 그래야 국민이 믿는 공무원이 돼고~!! 어려운 사람 등쳐 먹었던 이들도 응징의 댓가를 받아야 이 나라가 설수있다고 본다!! 첨으로 이런 개인적인 일 접하면서~!! 나두 당할수 있다!! 이런일은 일어 나선 안됀다고느낀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히 적용돼야 한다고도 느낀다!! 그래서 부정부패척결!! 추가로) 법원재판에서도 살지않았다고 판결났는데~항공사진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참 좋은 세상이 됐다! 숨길래야 숨길수 없을 테니~~!! 억울한 분이 웃는 날을 바란다!! 인터뷰...현장 답사..서초구청 면담 동영상도 참조 하십시요!!
    201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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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재단 10년 동안 1000억원에 달하는 기부금 모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불법모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허철호)는 박 시장과 아름다운재단을 기부금품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인터넷 민족신문 김기백 대표를 지난 9일 불러 조사했다고 10일 밝혔다.검찰은 김 대표의 진술 등을 검토한 뒤 우선 재단 관계자를 소환해 사실관계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다만 "수사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김 대표는 지난달 13일 "아름다운재단이 10년 동안 1000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모집했음에도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에 기부금 액수를 신고한 것은 단 세 차례 뿐"이라며 박 시장과 재단을 고발했다.기부금품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상 모금액이 10억원 이상일 경우 행정안전부에, 10억원 미만 1000만원 이상일 때는 서울시에 모금 사실을 등록해야 한다.검찰은 이 사건을 곧장 현 수사팀에 배당했다가 '표적수사' 논란이 일자 "배당만 했을 뿐 어떤 수사도 한 적이 없다"며 선거 이후로 수사를 미룬 바 있다. 한편 김 대표는 최근 재단에 내용증명을 보내 "모든 금전 출납과 재정-재산 현황 및 사용처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불응시 국민감사를 청구하겠다"고 경고했다.또한 "공개된 자료가 별다른 탈법-불법이나 하자가 없는 것으로 공인된다면 즉시 사과하는 것은 물론, 재단 또는 시청 앞에 거적을 깔고라도 석고대죄를 드릴 용의까지 있다"고 밝혔다. kim9416@newsis.com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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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10월 상달 초사흘에 대통령이 국가최대행사로 거행해야!
    원구단 개천 천제 선의식 var uaLower = navigator.userAgent.toLowerCase(); var isIOS = (uaLower.indexOf("iphone")!=-1 || uaLower.indexOf("ipod")!=-1 || uaLower.indexOf("ipad")!=-1) && (uaLower.indexOf("applewebkit")!=-1); if (isIOS) { document.getElementById('flvqqBpZFDUqgk$').innerHTML = '' void((typeof(AllBGMStop) == 'function')?AllBGMStop():'');} else { var obj = new Object(); obj.type = 'application/x-shockwave-flash'; obj.classid = '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obj.codebase = '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23,0'; obj.width = '502px'; obj.height = '405px'; obj.id = 'qqBpZFDUqgk$'; obj.name = 'qqBpZFDUqgk$'; obj.swLiveConnect = 'true'; var param = null; if (((navigator.userAgent.toLowerCase().indexOf("msie") != -1) && (navigator.userAgent.toLowerCase().indexOf("opera") == -1))) { obj.wmode = 'transparent'; param = [ ['allowScriptAccess','always'], ['movie','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qqBpZFDUqgk$&loc=blog&stateCall=true'],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qqBpZFDUqgk$&loc=blog&stateCall=true'], ['pluginspage','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 ['quality','high'], ['name','qqBpZFDUqgk$'], ['id','qqBpZFDUqgk$'], ['loop','false'], ['menu','false'], ['allowFullScreen','true'], ['swLiveConnect','true'] ]; }else{ param = [ ['allowScriptAccess','always'], ['movie','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qqBpZFDUqgk$&loc=blog&stateCall=true'],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qqBpZFDUqgk$&loc=blog&stateCall=true'], ['pluginspage','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 ['quality','high'], ['name','qqBpZFDUqgk$'], ['id','qqBpZFDUqgk$'], ['loop','false'], ['menu','false'], ['allowFullScreen','true'], ['swLiveConnect','true'] ]; } obj.param = param; daumEmbed(obj,'flvqqBpZFDUqgk$'); } 천제와 원구단 (경과보고) var uaLower = navigator.userAgent.toLowerCase(); var isIOS = (uaLower.indexOf("iphone")!=-1 || uaLower.indexOf("ipod")!=-1 || uaLower.indexOf("ipad")!=-1) && (uaLower.indexOf("applewebkit")!=-1); if (isIOS) { document.getElementById('flv9kXJDf_3QDY$').innerHTML = '' void((typeof(AllBGMStop) == 'function')?AllBGMStop():'');} else { var obj = new Object(); obj.type = 'application/x-shockwave-flash'; obj.classid = '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obj.codebase = '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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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j.param = param; daumEmbed(obj,'flv9kXJDf_3QDY$'); } 환구단 (圜 丘 壇) Hwangudan (Alter) 지정번호 : 사적 제157호 / 시대 : 1897년(광무원년)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87-1번지 환구단 (圜丘壇)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황단(圜壇), 또는 원구단이라고 합니다. 조선후기(고종 1852~1919)에는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이 있었으나, 고종이 1897년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국의 예법에 맞추어 환구단을 건설하였으며 1897년(광무원년) 10월에 완공된 환구단은 당시 왕실 최고의 도편수 였던 심의석(沈宜碩 1854~1924)이 설계하였습니다. 환구단은 제사를 지내는 3층의 원형재단과 하늘 신의 위패를 모시는 3층 팔각 건물 황궁우(皇穹宇), 돌로 만든 북(石器)과 문등으로 되어 있는데 그 형상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칙에 따라, 하늘의 제를 올리는 곳은 둥근의미의 원구단이라 하였습니다. 고려사의 기록에는 공민왕 19년 (서기 1370년)에 원구에서 제를 지낸 기록이 남아 있으며(卷四十二 世家 卷第四十二 - “丙辰 王親祀圓丘”), 고려말 우왕11년때 명의압박과 친명정책으로 인한 제후국의 예로 천제를 폐지하게 되었는데, 조선초에는 임시적으로 가뭄이 극심할 때 천제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세조를 끝으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가 일어났고, 개화세력에 의한 자주독립에 대한 의견에 따라, 실질적인 상국인 청나라와 정신적인 상국인 명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897년 2월 고종의 환궁으로 인하여 각종상소와 더불어 제국의 설립이 급진전하자, 고종 황제는 1897년 9월 21일 원구단을 설립하기로 확정하였으며, 1897년 10월 12일 원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즉위식을 갖고 하늘과 땅에 황제가 되었음을 알리는 제(告天地祭)를 올렸습니다. 그 후 1899년 황궁우(皇穹宇)를 축조하여 황천상제(皇天上帝)이하 신위판(神位版)을 봉안(奉安)하고, 1892년 고종즉위 40주년을 맞아 성덕을 기리기 위해 석고단(石鼓壇)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1913년 일제는 원구단을 허물고 조선총독부의 경성철도 호텔을 건립하고 조선의 민족정기 말살을 시도하기 시작하였으나,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된 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8년 경성철도 호텔을 철거하고, 지금의 조선호텔을 건설한 후 천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던 것을 2003년 음력 10월 3일부터 (사)범민족화합통일운동본부의 박영록 총재께서 현재에 이르기 까지 단군 성조께서 단기 4344년 전에 나라를 세운날인 개천절을 복원하시고자 “바른개천절 복원위원회”를 설립하신 후 9년째, 가진 고생을 몸소 겪으시면서 매년 음력 10월 3일 원구단에 천제를 지내오셨습니다. 오늘 단기 4344년 10월 29일(음력 10월 3일) 개천절 행사인 천제를 준비하여 주신 남산제례 봉행위원회 신복동 원장과 신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또한 원구단 행사를 빛내주시기 위해 참여하여 주신 최상식 중구청장님과 애국단체 대표님 및 내, 외빈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경과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참 조 대사(大祀-큰제사)에 대한 시대별 명시. 고려 高麗史 禮志 - 원구, 방택, 사직, 태묘, 별묘, 제릉, 경령전 조선 國朝 五禮儀 - 사직, 종묘, 영녕전 대한제국 大韓禮典 - 원구단, 종묘, 영녕전, 사직단, 대보단 (대한제국에서 발행된 大韓禮典에서 원구단의 천제는 동짓날에 치러야한다고 명시함.) 대 회 사 (박영록 총재) var uaLower = navigator.userAgent.toLower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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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j.param = param; daumEmbed(obj,'flvgylqwGqTUks$'); } 오늘 한민족 최대의 경축일인 4344년 개천절을 맞이하여 이곳 원구단에서 개천 축제가 열리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개천절은 단군역사이래 역대 왕께서 친히 제주가 되어 시월 상달 초사흘에 천제를 올리고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지상낙원 건설을 맹약하고 실천해 온 우리 민족 최대의 국가행사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본에 강제 합병되면서 36년 동안 강제 폐지당해 오다가 조국 광복과 함께 다시 부활되면서 제헌 국회는 국조단군의 개천개국의 건국정신인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통치이념을 우리 민족의 교육이념으로 제정하고 단기 연호사용과 개천절을 국가 최대의 경축일로 제정 공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얼님께서 만백성을 교화하시고 나라를 여시어 만유를 다스리는 홍익인간의 법통을 세우신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이날을 맞이하여 8천만 민족은 한얼님의 천자천손인 우리 한민족이 한 뿌리 한형제자매임을 되새기고, 나아가 미래를 어떻게 개척해나갈 것인가를 다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높고 깊으신 한얼님의 뜻을 받들어 사회의 윤리질서를 바로잡고 국권을 튼튼히 하여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루어 당당히 세계에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건설합시다. 전쟁이 없는 상생과 평화의 세계를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가며 오대양 육대주가 한 집안처럼 오색인종이 한 형제같이 살아가는 도덕문명국가를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나다. 단기4344년 10월 3일(음력) 사단법인 범민족 화합통일 운동본부 총재 박 영 록
    20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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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인터뷰]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제가 좀 낯을 가려서요….” 8월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집무실에서 만난 김영란(55)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낯가림이 심했다.법관 경력 30년에 대법관을 지내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까지 거친 화려한 이력의 그였지만 이날 오전 출근길에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러 종로의 투표소를 찾았다가 김황식 국무총리와 취재 중인 기자들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낮에 다시 가서 ‘살짝’ 투표를 하고 왔다는 김 위원장은 “언론에 나가는 걸 좀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김 위원장은 지난 1월4일 부임 이후 언론과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한 일이 없다. “업무 파악이 먼저…”라고 이유를 댔지만 실은 수줍은 성격 때문일 것이란 짐작이 간다. 그런 김 위원장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결단’한 것은 현안을 좀 선전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이번에 권익위에 주요한 현안이 있는데 그 취지와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려야겠습니다.”명함을 주고받기 무섭게 김 위원장은 일체의 덕담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본론부터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현안이 ‘공익신고자보호법’인데요, 이거 굉장히 중요한 법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검토한 사안이구요. 그 뒤로 현정부의 핵심 정책과제가 됐죠. 100대 국정과제에도 들어가 있었는데, 법이 통과된 것은 지난 2월이구요, 9월30일부터 본격 시행됩니다.”낯을 가린다는 김 위원장의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대한 설명이 막힘없이 이어졌다. “이 법은 조직 내 부패나 비리를 신고한 사람을 보호하고 보상하기 위한 겁니다. 민간 부문, 특히 기업이 불법행위나 비윤리적 행위를 통해 공익을 침해하는 것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내부 신고자를 보호하자는 거죠. 조직에서 징계를 당하면 이를 무효화시키구요,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는 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하도록 했습니다. 지금까지 공적 영역에서 이뤄졌던 것을 민간 영역으로까지 확대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어요.”김 위원장은 얼마전 이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기했던 ‘공생발전’이란 화두를 꺼냈다. “동반성장이니 윤리경영 같은 말이 나오잖습니까…실은 유엔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윤리경영’을 화두로 삼아왔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골자로 하는 윤리경영 없이는 우리 사회가 유지 발전될 수 없다는 거죠. 윤리경영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우리도 그런 문화와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도태되고 맙니다. 기업이 자발적 동기를 갖도록 하는 게 정말 필요합니다.”― 이 대통령은 ‘탐욕경영’이란 극한 표현을 써가면서 ‘윤리경영’을 촉구했습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지금까지는 기업이 최대 이윤을 추구하면 파이가 커져 사람들이 더불어 먹고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이젠 그 논리가 벽에 봉착한 거죠. 최대 이윤 추구를 넘어, 기업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또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겁니다.”― 기업이 바뀌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뜻이군요.“우리 사회는 물론 기업 자체의 영속성을 위해서도 그러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수해 때 돈을 내놓거나 복지시설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문화와 제도를 바꿔나가기 위해 기업이 뛰어들어야 합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다리 역할을 할 걸로 믿습니다. 법이 시행되면 이는 대통령의 공생발전 국정 방향을 구체화하는 첫 사례가 되지 않을까요.”국제투명성기구(TI)가 해마다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한국은 민간 분야에서 아시아 16개국 중 꼴찌다. 이는 아무래도 기업의 부패나 부조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말했다. “공적 영역에서만 부패 예방을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어요. 민간 부문이 같이 가지 않으면 말이죠.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거라고 봅니다.”― 취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실정법을 넘어 정서법이란 게 있습니다. 조직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사람을 아무리 법으로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조직에서는 왕따가 될 텐데요.“금전적으로 보호해주고 정신적인 피해를 볼 경우 의료비용까지도 다 보상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내부 정서를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내부 고발을 결심하는 경우라면 이미 그만한 외풍을 견딜 만한 강한 사람일 것입니다.”―이 대통령이 천명한 공생발전이 곧 권익위의 화두이기도 하군요. 그런데 공생발전이란 말이 좀 어렵습니다. 위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쉽게 풀어주시죠.“공생발전은 시대정신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윤리경영이라는 건 이미 국제적 흐름이고 대세입니다. 유엔이 주도하는 사회적 책임지표랄까, ‘ISO26000’ 같은 것도 그렇구요…. 대통령도 지난해 말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반부패 협력을 끌어냈잖아요. 거기에 민간과 공공 부문의 반부패 관련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게 다 공생발전과 연결되는 겁니다. 2009년의 친서민정책과 2010년의 공정사회 등 지금까지 해온 것을 이번에 대통령이 새로운 ‘내레이션’으로 풀어낸 거죠. 정책적 의지는 죽 있어 온 겁니다.”―공생발전은 권익위 차원에서는 반부패로 연결되는 거네요.“네. 저는 국제사회가 그동안 추진해온 반부패와 관련된 여러 움직임과 노력, 일련의 흐름을 ‘반부패 라운드’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스스로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가야죠. 우리 기업들이 반부패라운드에 맞춰 시스템과 경영 방침을 바꿔야 합니다.”―공생, 영어로는 ‘Ecosystemic’인데, 내년 총선이나 대선용으로는 좀 어려운 측면이….“그게 좀 아쉬워요. 국민에게 다가갈 때엔 좀 쉬워야 하는데, 그죠.”정치 얘기가 나오자 김 위원장이 말을 돌렸다. “지금 정부 내에 공정사회론이나 공생발전론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이건 잘못된 겁니다. 청와대에서 정부와 기업의 체질을 바꾸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G20 때 ‘반부패 행동계획’을 채택했잖아요. 그게 전부 연결돼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이를 부정하면 대통령의 경축사를 부정하는 거죠.”김 위원장은 1981년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뒤 지난해 퇴임할 때까지 30년 동안 법원을 떠난 일이 없다. 하지만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된 지 두 달 만에 권익위원장직을 맡게 됐다. 상당히 빠른 변신으로 보인다.“저도 저를 시키신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저를 모르잖아요. 행정을 해 본 일도 없고, 판결밖에 (한 일이) 없는데…. (위원장직을) 끝낼 때 알게 되겠죠. 다만 저를 시킨 건 반부패와 관련한 정책적 기조가 있는데, 그걸 잘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위원장님은 법조에 계실 때부터 사회적 소수, 마이너리티들을 배려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곳에 온 것도 그것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네요.“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대통령이 왜 저를 이 자리에 임명했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제가 해석하기로는…대통령이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사회 이런 걸 일관되게 주장해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 같습니다. 공정사회 이념에 맞는다…이렇게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하. 그래서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맞게 우리 위원회를 잘 해 나가자고 생각하고 있어요.”―권익위라는 이름이 국민에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반부패위원회 같은 좀 더 생생하고 구체적인 이름도 있는데 네이밍이 좀….“고충민원처리, 반부패, 행정심판 등 3개 기관의 기능을 합치면서 좀 더 큰 패러다임에서 국민권익을 보호한다고 해서 나온 거 아닐까요. 혹자는 위원회의 성격이 모호해졌다거나 반부패 의지가 상실된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또 그런 인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와서 느낀 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사실 반부패 감시 기능이라면 국무총리실에도 있고 감사원에도 있고 검찰 등 사정기관에도 있다. 또 행정 각부와 공공기관들은 자체적으로 비리와 부패를 적발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감사기구를 두고 있다. 국회에도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같은 감시 시스템이 있다. 그렇다면 권익위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중이 제 머리 못 깎잖아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거든요.” 김 위원장에 따르면 권익위원회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 시작된 ‘옴부즈맨기관’과 닮았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한국적 기관이다. 아시아권에서는 공적 영역에서 독자적인 옴부즈맨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기관에 걸쳐 있는 민원을 해결해주는 이런 기관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여러 기관의 이해가 얽혀 있어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이 많습니다. 이를 해결해주는 겁니다. A 기관에는 이걸 요구하고, B 또는 C 기관에는 저걸 요구하고, 국민에게도 조금씩 양보를 받아내 타협점을 찾아내도록 하는 거예요. 이해 관련자들이 조금씩 물러서는 명분을 주는 거죠. 우리나라만의 독특하고도 세계적인 모델입니다.”권익위는 월드뱅크의 요청에 따라 아프리카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거버넌스를 통한 반부패척결전략’을 소개한 일이 있다. 김 위원장은 “저희가 반부패 정책이나 예방 정책을 만들고 교육하고 통계자료를 분석 수립하고 민원 처리 방식을 컨설팅해주는 이런 것들을 공적 영역에서의 세계적인 ‘반부패 운동 모델’로 개발하겠다는 꿈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행정기관 통합의 독특한 모델인 권익위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한국의 기업인, 정치인, 관료들의 수준을 각각 평가해주시죠.“글로벌 영역을 개척한 건 역시 기업과 기업인들이죠. 그들의 기여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에 경제관료들의 힘이 보태졌구요. 앞으로 지속경영과 글로벌 스탠더드만 갖춰진다면 더 좋겠지만요. 정치인은… 국회에 가 보니 실력 있는 국회의원도 많더라구요. 정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전문성을 확보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또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공무원들이나 행정관료들이 열심히 일하고 생각이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부패지수가 왜 개선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김 위원장은 부패의 개념 자체가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뇌물을 주고받는 것으로 정의됐지만, 지금은 ‘인적 네트워크에서의 소속감 박탈’로 그 범위를 넓혀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고로 인한 청탁과 이권이라는 고리를 끊으면 한국의 반부패지수는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김 위원장은 강조했다.김 위원장은 지난 1월 부임해서 이제 8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자 “이제 시작”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와서 공부하고 배우느라 3개월을 보냈습니다. 직원들을 융합시키는 일, 어떻게 하면 위원회에 애정을 갖고 끌어가도록 할까 등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위원회의 방향과 이념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찾아내는 데도 시간을 많이 투자했습니다. 이제 시작한 것 같은데, 아직 점수를 매길 때가 아닙니다.”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그는 8년이란 기수의 차를 넘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40대 대법관직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그를 ‘진보 코드’로 분류하기도 했다. 반부패를 주요 사명으로 하는 권익위원장에 임명된 것이 그런 성향과 관련이 있을까.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이념적 토폴리지를 보수와 진보 둘 중 하나를 택하기를 꺼렸다. 보혁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못하는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다만….“다만 여성 문제만큼은 저는 진보입니다. 진보가 필요합니다. 진보적 이념 없이 (여성의 지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어요. 진보가 필요 없다면 요즘 여성들은 조선시대 여자들처럼 사회활동을 못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사안에 따라 진보가 될 수도, 보수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김 위원장은 민주주의란 다수를 따르는 제도이며 누군가가 소수자를 사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사법부가 바로 이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국회의원은 자신을 대표로 뽑아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면 되지만 사법부는 자신의 대표자를 낼 수 없는 집단을 위해 목소리를 내줘야 합니다. 소수를 대변하는 것도 사법부의 일인 거죠. 이게 제가 사법부에서 진보로 평가된 이유입니다.”김 위원장은 다수자는 소수자 입장에서 간과한 게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게 실은 전체 다수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말과 함께. 그는 미국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얼 워런의 말을 인용했다. ‘법률의 해석은 다수자가 현재 상태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다수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저는 단지 우리 사회의 발전 수준에 따라 목소리를 낸 것 뿐인데요. 그냥 법치주의에 충실하게,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뿐인데요. 하하하.”―호주제 폐지에 앞장서셨는데, 엄마의 성(姓)을 따라가는 것을 완전히 허용하는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그게 세계적 추세니까요. 그렇게 바뀌어도 대부분은 해오던 대로 아버지 성을 따라가지 않을까요.”―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지금의 이용훈 체제와는 이념적 지형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대법원장 한 분이 바뀐다고 해서 사법부가 크게 바뀌고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법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겁니다. 결국은 한계선상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문제 아니겠어요.”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
    20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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