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 뉴스' 꿈꾸는 정부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기관과 더불어 제 4의 권력이다
지난 4월 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농지취득 과정에서 허위로 위임장을 작성,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것이 국민일보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화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기사가 누락된 배후에는 이동관 대변인 ‘본인’이 있었다. 그가 직접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봐 주면 은혜를 갚겠다’ 했단다. 이 뿐만 아니다. 언론은 ‘대변인이 엠바고(보도유예)를 지나치게 남발한다’고 비판해왔다. 대변인이 잦은 보도 유예와 비실명요구 등으로 언론보도를 조정하려 드는 것. 이 모습이야 말로 현 정부가 언론을 바라보는 시선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일 것이다.
왜 언론은 제 4의 권력인가. 우리는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기관과 더불어 제 4의 권력이라 부른다. 언론이 가진 이 수식어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보도’(알림)의 역할을 넘어선다. 언론은 사건들의 ‘진실’을 보도해야 하며 ‘본질’을 보도해야 한다. 그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대변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야 하며, 사회 여러 분야의 감시자를 자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언론은 제 4의 권력이란 수식어를 달기엔 그야말로 ‘지못미’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하기엔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높다. 2008년은 언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보려는 정부의 욕심이 민망할 정도로 드러난 한 해 였다. 아마도 시작은 YTN의 낙하산 인사였을 것이다. 물론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방송통신위 위원장 임명을 그 시점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언론계와 학계 등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최시중은 이명박 후보 진영의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6인회’의 좌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코드 ‘강부자’, ‘고소영’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의 방통위원장 임명을 포기하지 못 한 이유는 자명하다.
본격적으로 정부의 야욕이 드러난 사건은 YTN 신임 사장 취임 사건(‘낙하산 인사’)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자신의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를 YTN의 사장으로 앉혔다. 이날 YTN 주주총회는 노조간부들의 출입을 봉쇄한 채 이뤄졌고, YTN 이사회에서는 모든 절차를 단 6분 만에 마무리 짓는 ‘날치기’의 전형을 보여줬다. 절차를 무시한, 전형적인 코드 인사에 YTN의 기자들은 사장 출근 저지 및 인사불복종 투쟁을 진행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구 사장은 전․현직 노조위원장 및 노조원 6명을 해고, 총 33명의 직원에게 정직, 감봉, 경고 조치는 중징계를 내렸다. 더불어 YTN의 간판 프로그램 ‘돌발영상’도 폐지시켰다. 이른바 ‘YTN사태’라 불리는 이 사건은 지난 5공 이후 최대의 언론인 해고 사건이다. 모 일간지에서는 사설을 통해 ‘언론에서는 역사의 시계가 뒤로 돌고 있다, 현 정부가 70~80년대 언론 탄압을 보였던 유신정권의 후계자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YTN뿐만이 아니다. KBS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KBS의 정연주 사장을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해임시켰다. 그러나 이미 최시중 방통위원장 임명과 YTN사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정부의 꿍꿍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새로 취임한 이병순 사장은 ‘그의 임무를 다하고자’ 취임 첫날인 8월 27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비판받아온 일부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단박 인터뷰’ ‘미디어 포커스’ ‘시사 투나잇’ 등의 프로그램은 가을 개편을 기점으로 폐지되고, 새로운 시사프로그램 ‘시사360’이 편성되었다. ‘시사 360’은 첫 회 ‘미네르바 신드롬, 왜?’편에서 ‘미네르바가 근거 없는 비판으로 경제 불안을 조장한다’는 정부 쪽 주장을 주요하게 전해 YTN, KBS 사태가 단순히 사장이 바뀌는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누구도 다시 땡전 뉴스를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공영방송이 정책홍보방송으로 이용되었던 지난 80년대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뿐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를 감시하고, 질책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어떻게 언론을 길들이느냐가 정부의 관심사여서는 곤란하다. 새해에는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정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