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급 150여명과 6시간 도시락 워크숍
"현장 살피며 정책 추진…나 말고 국민보고 일해라" 느슨한 공직사회에 경고
"혁신의 최대 敵은 과거방식…제천·밀양 참사 되풀이않게 새방식으로 국민안전 진단을"
文정부 장차관 밀양 희생자 추모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문 대통령,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장차관이 다 함께 바라봐야 할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라며 "문재인정부라는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모든 부처 장차관이 처음 참석하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국민은 '어느 부처가 잘한다, 못한다'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잘한다, 못한다'고 평가한다"며 "모두가 한 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부처 간에 충분히 소통하고 협의하면서 일을 추진하는 자세를 가져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가상화폐 대책, 최저임금 인상, 청년 일자리 등 최근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공직사회의 안일한 업무 행태에 대해 강도 높은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문재인정부 집권 2년 차를 맞았지만 국민이 새 정부의 정책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부터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며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혁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동, 무사안일, 탁상행정 등 부정적인 수식어가 더 이상 따라붙지 않도록 각 부처와 소속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되어 과감하게 정부 혁신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이처럼 부처 장차관이 청와대에 집합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질책성 발언이 계속되면서 "대통령이 내각 군기 잡기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왔다. 6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워크숍은 저녁시간을 넘겨 진행돼, 참석자들은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며 발표와 토론을 계속했다. 이번 워크숍이 문 대통령의 내각 다잡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문 대통령은 이날 특히 현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중요한 정책이 집행되기 전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청취해야 하는데, 최근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이런 과정이 미흡했다는 문제인식에서다. 또 남북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문재인정부 주요 지지층인 2030세대가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한 자성으로도 읽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단일팀에 당연히 동의해줄 것이라 예단하면서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생략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모든 정책은 수요자인 국민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정책의 당위와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가 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 수요자가 외면하는 정책 공급자 중심의 사고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문 대통령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 부처 내부와 관련 부처, 이해관계자 그룹, 기업이든, 노조든, 지역주민이든 꼼꼼하게 입장을 챙겨주기 바란다"며 "다수가 찬성해도 반대하는 소수가 강경하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하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올림픽을 위해 좋다고 생각했는데, 선수들의 입장을 미처 사전에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 곳곳에선 곧 집권 10개월 차에 접어드는 시점인데도 국민이 새 정부의 정책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배어났다. 일례로 소득분배 효과를 노리고 추진한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시행 이후 정부 예상을 벗어난 부작용이 나타난 상황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 오른 여파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물론 식당 종업원, 아파트 경비원 등 정책 수혜자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현장을 모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3조원 규모로 마련된 일자리안정자금의 경우 홍보 부족으로 시행 한 달여가 지난 이달 26일 현재 신청률이 0.76%에 불과하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운 상황에서 청년실업 문제 해법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점도 문 대통령을 초조하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제천 화재 참사에 이어 밀양 병원 화재 참사까지 대형 사건이 연이어지고 있는 점도 문 대통령이 작심하고 장차관들을 질타한 배경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혁신의 가장 큰 적은 과거에 해왔던 방식, 또는 선례 같다"며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는 과거에 해왔던 방식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밀양 화재 이후 국가안전대진단을 한다고 했다"며 "과거 방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방식으로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최근 느슨한 공직사회 분위기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질책성 경고는 부쩍 잦아지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부처 간 협의와 입장 조율에 들어가기 전 각 부처 입장이 먼저 공개돼 정부부처 간 엇박자나 혼선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최근 가상화폐 대책을 두고 빚어진 정책 혼선을 지적했다. 또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점검회의에서 일자리 정책 관련 부처 장관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이 더디다"면서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분발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구구조 변화로 더욱 어려워질 청년 일자리 문제에 대해 향후 3~4년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정부 각 부처에 그런 의지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그런 의지를 공유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강계만 기자 / 오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