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IPA: /nɔblɛs ɔbliʒ/)란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조근주의 廉恥(염치)를 모르는 사회 =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데 국민들이 어찌 법의 두려움을 알겠으며 나라가 온전할 리 있겠는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이 결국 아버지의 목을 날렸다. 외교부의 5급 통상 전문계약직 특별채용시험에 단독으로 합격했던 그녀다. 무단결근 후 엄마가 외교부에 전화를 하게 했던 그녀는 자신의 상사에게 '아빠한테 전화를 하라고 했더니 엄마가 했다'라고 했단다. 어찌 하다가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 유명환 장관의 사임을 청와대가 받아 들였단다.
공정(公正)한 사회 - '공정'은 사전에서 '공평하고 올바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정의(正義)'와 같은 말이다.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거나, 가장 최소 수혜를 받는 자가 최대 이익을 받을 수 있다거나 하는 말을 떠나서, 공평하고 올바를 사회가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과 '합당한 보상'이다.
만일 4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1등 - 1억원 상금, 2등 - 1만원 상금, 3등 - 화장실 청소, 4등 - 징역 5년.. 이라면 그 달리기 시합은
이미 정의를 생명으로 하는 스포츠 정신은 간데 없고, 오로지 반칙과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음식에 설사약 타기, 다리 걸기, 잡아 당기기 등..
이처럼 합당하지 않은 보상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시장이다. 소위 SKY를 나와야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언론마저 대학이야기만 나오면 오로지 SKY다.
그러면서 공정한 세상을 이야기한다. 자신들이 바로 SKY를 나왔기 때문일까?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꼴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이 중요한 세상이다.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 대학 동문을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어 준다.
공직자가 내정되면 그의 약력이 뜬다. 어김없이 지역과 학교가 지면에 나온다. 언론이 부추기는 것이다.
그 언론이 정의를 이야기한다. 한 번 일등하면 평생을 먹고 사는 세상이다. 그러한 불공정한 보상은 몰염치를 낳는다.
한 번 눈을 질끈 감으면, 평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몰염치는 사회에 전염된다. 눈이 하나인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눈 두개 가진 사람은 '장애인'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전제는 바로 '합당한 보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너무나 불균형한 빈부격차와 신분제도를 가진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바로 나 하나 잘되면 된다-는 몰염치 덕에 '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그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은 불만에 가득차게 되고, 결국 가진 자나 못가진 자나 함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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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한 조직의 책임자만 돼도 자신이 인사권자이고 자기 부하들이 점수를 매기는 시험에 자식이 응모하겠다고 하면 일단 만류하고 나서는 게 상식이다. 자녀가 합격했을 경우 그 시험의 공정성과 엄정함이 도마 위에 오르리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자신의 아들, 손자, 사위가 과거에 나오면 출제나 채점과 관련된 관직을 사양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백 년이 흐른 오늘 대한민국 장관이란 사람은 남의 아들 딸이 실업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딸을 특별 채용하겠다고 아래에서 올린 결재서류에 자기가 직접 서명을 했다.
한마디로 공직자로서의 '염치(廉恥)'가 없다. 염치란 자기 위치에 걸맞은 행동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고, 그에 어긋난 일을 하는 게 부끄러운 줄을 아는 마음이다.<span> </span>웬만한 조직의 책임자만 돼도 자신이 인사권자이고 자기 부하들이 점수를 매기는 시험에 자식이 응모하겠다고 하면 일단 만류하고 나서는 게 상식이다. 자녀가 합격했을 경우 그 시험의 공정성과 엄정함이 도마 위에 오르리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자신의 아들, 손자, 사위가 과거에 나오면 출제나 채점과 관련된 관직을 사양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백 년이 흐른 오늘 대한민국 장관이란 사람은 남의 아들 딸이 실업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딸을 특별 채용하겠다고 아래에서 올린 결재서류에 자기가 직접 서명을 했다. 한마디로 공직자로서의 '염치(廉恥)'가 없다. 염치란 자기 위치에 걸맞은 행동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고, 그에 어긋난 일을 하는 게 부끄러운 줄을 아는 마음이다. " - 조선일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는 - 그런 사람들을, 공직자들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을 정녕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