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의 부재 사태가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 해 160조원이 넘는 국세를 걷어 나라살림을 꾸리는 국세청장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 것은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역성장이 예상되고, 세수 목표 달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세청은 청장 부재에 따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또 국세청장의 장기 공백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미숙한 국정운영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12일 국세청에 따르면 한상률 청장이 지난 1월19일 그림 상납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4개월 가까이 허병익 차장의 청장 직무대행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는 국세청 출신 인사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고위 관료를 중심으로 국세청장 후보를 물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4개월째 적임자를 찾지 못한 채 국세청장 자리를 비워두는 인사 난맥상과 부실한 정부조직 운영의 실상을 드러냈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지난해 말 차장으로 승진한 허 청장 직무대행을 적절한 시기에 청장으로 승진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장 부재 여파로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 세무조사를 총괄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자리도 4개월째 공석이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청와대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서울청 조사2국장을 허 차장이 임명하기에 벅차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매년 2월 열리던 전국세무관서장 회의도 두 달 늦춰진 지난 4월에야 열렸다. 국세청의 한 해 세정 방향을 정하는 전국세무관서장 회의가 청장이 없는 상태에서 열린 것은 국세청 개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침체로 정부의 올해 세수목표 달성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민간소비 감소로 부가가치세가 크게 줄었고, 이달 말 확정신고가 마무리되는 소득세 징수도 목표치를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국세 징수실적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조3000억원 줄어 정부의 연간 세수감소 예상액을 넘어섰다.
최근 검찰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세무조사 무마 로비 수사 과정에서 국세청은 ‘청장 없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지난 6일 검찰이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했고, 당시 세무조사를 지휘했던 조홍희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전 서울청 조사4국장) 등도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서울청 조사국의 서류와 컴퓨터는 물론 관용차와 자가용 승용차의 내부도 샅샅이 뒤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청장이 있었으면 검찰에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국세청은 지난 11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업무지원을 위해 파견나간 직원 20명을 모두 복귀시키겠다고 검찰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가 검찰의 만류로 파견기간이 끝난 직원 3명만 복귀시켰다. 자칫 ‘권력기관 간 알력’으로 비화될 뻔했던 이런 움직임은 검찰에 대한 국세청 직원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익대 김유찬 교수는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올해 국세청장의 장기공백이 지속되면 세정의 효율적 운영이 불가능하고, 나라살림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의동기자 phil21@kyunghyang.com>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