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심판 이전인 2003년 5월 이씨는 비밀리에 상경해 부패방지위원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고성군수의 비리를 증언한 군수의 측근과 함께 부패방지위원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씨는 담당자들로부터 “기다리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2주 후 조사관들은 고성에서 이씨를 다시 만났다. 고성군수의 비리 의혹을 조사하겠다던 부방위 직원과 검찰 조사관은 그러나 “추후에 꼭 조사할 테니 기다리라”며 이씨가 건네 준 관련 자료들을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지난 해 5월 부방위에 철저한 조사를 다시 한 번 요구했지만 부방위는 여전히 팔짱만 낄 뿐이었다. 심지어 춘천으로 지방순회홍보강연을 온 부방위 접수과장이 이씨의 사연을 듣고 “개인적으로 조사해 결과를 통보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춘천에서 강연을 했던 부방위 과장이 ‘부방위의 명예를 걸고 고성군수 비리 의혹을 밝혀내겠다’고 말해 주민들로부터 박수까지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감감 무소식이더군요. “
이와 관련 부패방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사건을 맡았던 담당자가 파견 기간이 끝나 본래 소속인 경찰청으로 돌아간 상태”라며 “이씨의 고발 내용에 대해 설명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담당자도 현재는 부방위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 부방위의 일처리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없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민원인들의 신고 내용을 모두 타당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강원도청으로 감사가 이관됐다면 담당자가 부패방지법령에 따라 적합하게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방위는 조사권이 없고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어차피 다른 기관이 조사하도록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방위의 입장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이씨는 “검찰 쪽 수사관까지 동행해 군정을 감찰하러 왔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는지 석연치 않다”며 “부방위가 적극적으로 사안을 검토한 뒤 감사원이나 검찰이 철저히 수사하도록 했다면 강원도청과 고성군청의 ‘짜고 치는 고스톱’에 의해 민원인이 패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방위 인적 구성에 문제있다”
“공익제보자 편에 서지 않고 법리적 해석만 “
“공익제보자 편에 서지 않고 법리적 해석만 “
"인적구성도 문제, 공익제보자 활용 안 하나"
이문옥 전 감사관. 공익제보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을 부방위 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민주노동당 부패추방운동본부 임진수 국장은 “부방위 구성원들이 대부분 감사원이나 검찰의 파견 직원들이기 때문에 기존 조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익제보자 편에 서야 할 부방위가 법리적, 관료적인 법 해석만을 고집하며 공익제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검찰 출신인 부패방지위원장을 비롯해 실국장급과 실무 조사관들은 대부분 검찰과 감사원 출신이다. 부방위가 부패 신고 접수 처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보다는 검찰이나 감사원 등 출신 기관에 신고 접수를 떠넘기거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면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공익제보자들의 불만이다.
정치권의 압력으로 재벌이 소유한 비업무용 부동산 실태 조사가 무산된 사실을 고발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은 “당시 나를 ‘왕따’시키고 파면하는데 앞장섰던 사람들 가운데도 부패방지위원회에 가 있는 사람이 있다”며 부방위의 인적 구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씨는 또 “부방위에 파견된 공무원들은 잠시 머물다 간다는 생각을 할 뿐 직무에 대한 책임감이 덜하다”면서 “절박한 심정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공익제보자들 입장에서 부방위의 자세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경찰, 검찰 인사 파견 배제하라”
"공익제보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 활용할 수도 ”
"공익제보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 활용할 수도 ”
임진수 국장은 “공익제보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을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 국장은 “검찰이나 감사원 등 기존 조직의 관료들을 주축으로 변호사, 시민단체 사람 한 두 명을 구색으로 끼워넣는 정도로 위원회가 구성되고 있다”며 “공익제보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사람들을 선별해 교육 위원 등으로 활용해야 실질적인 공익제보자 보호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입법예고안에서도 개선 미약한 내부고발자 보호 프로그램
안산시장의 비리를 고발했지만 김봉구씨에게 돌아온 보상은 없었다. |
반부패국민연대 김거성 사무총장은 “공익제보자에게 상급자가 보복인사를 했을 경우 현재는 징역 1년 이하,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그치고 있어 실효성이 적다”며 “최소한 징역 2년 이하 과태료 2000만원 이하로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방위의 과태료 처분을 따르지 않더라도 별다른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보복인사 방지 효과가 미약한 이유다. 부방위는 종합운동장 설계 공사 의혹을 폭로한 김봉구씨를 보복 인사한 안산시장에게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안산시장이 재판에서 패소하기 전까지는 과태료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김씨가 고발한 안산시장이 재판에 져 뇌물로 받은 2000만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지만 지난 8년간의 싸움에서 김씨가 받은 포상금은 한 푼도 없었다.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부방위가 지난해 사용한 예산 152억원 가운데 신고자 포상금에 쓴 액수는 0.7%인 1억 400만원에 불과했다. 올해 예산 180억원 가운데 신고자 포상에 배정한 금액도 4억 3000만원 정도다. 공익제보자의 신분 보장과 포상 등이 부방위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임을 감안하면 결코 많지 않은 액수다.
공익제보자의 보호 범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부패방지법 개정안에는 ‘부방위나 소속, 상급 기관에 신고한 자’로 보호 범위를 국한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는 언론 등 외부 기관에 제보를 하는 경우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 이재근 간사는 “현실적으로 소속 기관이나 상급기관 등에 제보할 경우 조직 내 ‘왕따’는 물론이고 부패 관련 조사, 처리 등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언론이나 외부 단체에 제보하는 경우에도 공익제보자로 보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고발자 보호막 강화되면 관련 증거는 자연스럽게 확보될 수 있어”
제4차 반부패기관협의회 [사진=연합뉴스] |
임진수 국장은 “입법 예고안의 내용은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너무 약한데도 불구하고 부방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공수처에만 몰려 있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공익제보자만 제대로 보호된다면 강력한 조사권한이 없다 하더라도 증거는 자연스럽게 확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임 국장은 “공익제보자들이 내부 비리를 고발할 때 필연적으로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한다”며 “공익제보를 했을 때는 명예훼손죄나 비밀누설죄는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 불가피하게 조직적인 비리에 연루된 경우에도 정상을 참작하는 등 공익제보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부방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조사권이 없어 부방위의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랐던 게 사실”이라며 “국회에 부패방지법 개정안이 상정된 만큼 새 법안에 따라 부방위가 조사권을 갖게 되고 인력이 확충되면 공직자의 부패 의혹들을 적극적으로 파헤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 조치도 더 강화됐다”며 “제보자의 고발 내용이 공익에 기여한 부분이 입증되는 대로 신속하게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