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씨받이와 심청
오늘 한 주요 일간지에는 처참한 북한의 경제난을 반영하는 서글픈 기사가 실렸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채우느라 빛을 진 한 북한가족의 젊은 여성이, 우리 기준으로 보면 그리 큰 돈(중국돈 350위안, 한국돈 4만6천원)도 아니지만, 자기의 꽃다운 몸을 팔아서 이 빚을 갚아야 하는 현대판 북한집단전체주의 수용소 노래를 보는 것이다.
북한의 서민 한 가족이 꿔다먹은 강냉이, 콩, 쌀 같은 곡식 빚이 300kg인데 이에 해당하는 돈이라 한다.
소위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진 현대판 심청을 보는 느낌이라는 기사다. ·
이제 겨우 20대 중반의 여인이 인신매매 브로커에서 몸을 팔아서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북한의 가족이 밥을 먹기 위해서 진 부채를 갚는 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이 기사를 보면서 이러한 우리의 북녘 동포들에게 무슨 특별한 이념이 필요하고 무슨 정치제도가 필요한지도 실증적인 잣대로 한 번은 짚어 볼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가 별로 잘 살지 못하는 중국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압록강, 백두산을 경계로 한 중국과의 국경지대에선 중국의 노총각들에게 몸을 팔아서 씨받이 역할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서글픈 한민족의 역사를 우리가 바로 목전에서 생생하게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언론에 보도된 한 사진은 더 처참한 광경을 담고 있다. 두만 강변에서 발견한 30대 북한여성의 시신이 현대판 나찌의 유대인 학살 현장을 보는 느낌이다.
이들에게야 말로 내실 있는 실용주의노선의 확대로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가장 기초적인 우리 민족의 과제가 걸려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각종 성인병을 걱정하면서 살빼기 등에 대한 고민으로 풍부한 자본주의 혜택을 걱정하는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도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일요일 오후 6시부턴 요즘 다른 일을 제켜두고 과거 주요방송매체를 통해서 방영된 김훈의 「칼의 노래」를 극화한 ‘불멸의 이순신’이란 대하사극을 보는 것이 큰 일로 자리 잡았다.
지지난 주부터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고 전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선조의 무능한 군주로서의 초라한 입지와 이순신의 애국충정(愛國忠情)이 크게 대비되면서 충신(忠臣)의 길이 무엇이고 성군(聖君)의 길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실드라마이기에, 지금과 같은 난세(亂世)에 나라사랑의 마음을 키우는 중요한 역사물이란 생각을 지울 길이 없는 것이다.
필자가 지금 이 순간에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왜가 만든 전란으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명을 연장하던 그 시절에도 왜군의 짐승 같은 전쟁 병으로 죽어나가는 백성과는 별개로 피난 길까지 떠났던 조정에선 일부 정치적 기득권을 위해 권력투쟁에 골몰하던 우리의 권력투쟁사를 생각하면서, 지금 북한의 굶주린 백성을 뒤로하고 북한의 독재정권이 억지로 생명연장을 위해서 반민족적 악수(惡手)를 두는 안타까운 모습과 연계가 되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변혁이 수반되지 않는 남북관계에서 많은 한계를 느끼는 것이다.
나라 잃고 배고파하는 백성들이 우리들의 눈 앞 에서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들에게 인격까지 팔면서 핍박받는 인간이하의 안타까운 광경을 보여도, 지금 우리의 정치력이나 경제력만으로 자유민주질서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나라의 통일을 이루고 이렇게 핍박받는 백들을 위한 구체적인 합당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대한민국인 것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아픔을 보면서 부패한 조정의 탁상공론(卓上空論)을 한탄한 이순신 장군의 충정이 이러한 북한백성을 보면 어떤 모습일까?
어서 부국강병의 돛을 크게 울려서 동서독의 길로 가는 큰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더 많은 솔선수범으로 이 사회를 위하여 노블리즈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크게 하게 되는 것이다.
2008.3.3 박태우 박사의 푸른정치연구소(www.hanbatfor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