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형사법 개정안에 대해 형사재판 담당 판사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법원에서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대법원 형사법연구회(회장 박홍우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지난 20일 대법원 16층 대회의실에서 정기세미나를 열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법원행정처 관계자 및 전국의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판사 63명이 참석해 형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발표했다.
판사들은 법무부 형소법개정안 중 주요내용인 △사법협조자 소추면제 및 형벌감면제(플리바게닝), △중요 참고인 출석의무제도, △참고인 허위진술죄 등 대부분의 제도도입에 대해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그러나 피해자참가제도의 도입과 관련해서는 반대와 찬성으로 의견이 나뉘어 찬반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최근의 형법개정에 대해서는 ‘유기징역 상한 50년’, ‘벌금형 선고시 범인재산상태 고려규정’ 등 실제로 법이 적용됐을 때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실무상의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담론이 오가는 과정에서 재개정이 촉구되기도 했다.
피해자참가제란 살인, 강도, 상해, 교통사고 등 피해자에게 신체적으로 피해를 발생시킨 일정범죄에 한해 피해자를 재판절차에 참여시키는 제도이다. 피해자, 법정대리인, 변호인이 검사를 거쳐 재판절차참가를 신청하면 법원이 피해자 참석허가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재판에 참석하는 피해자는 검사 옆자리에 앉아 법원의 허가하에 피고인신문 및 증인신문을 직접 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피고인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피해자를 사건의 당사자로 인정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며 “피해자나 유족이 법정에서 감정에 호소된 질문을 할 경우 법정이 보복의 장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고인과 검사의 두 당사자 대립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고 피해자의 참여로 피고인이 위축돼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수 없게 돼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며 제도도입 반대의견을 냈다.
그러나 또 다른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는 “피해자참가제도가 검사의 공익적 의무에 협조하는 범위 내에서 인정될 경우 실체진실의 규명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며 “구체적 형량은 판사가 정하므로 피해자의 감정에 형이 좌우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고인의 방어권이 진실규명이라는 형사사법의 가치보다 우월할 수 없다”며 “법원의 소송지휘를 통해 불필요한 피해자의 참가나 소송절차의 지연을 방지할 수 있다”면서 찬성의견을 냈다.
이날 법무부 형소법개정안에 대해 지정토론을 한 김승주 창원지법 판사는 “헌법상 범죄피해자의 형사절차에 관한 권리가 보장돼 있고, 최근 피해자의 인권 내지 범죄피해자의 형사절차참가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며 “피해자 또한 형사절차에 있어서 어느 정도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아야 하는 당위 등에 비춰 피해자참가제의 도입은 상당부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법무부안과 같이 공판참가절차에 있어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때에만 법원에 송부하는 형식보다는 형사정책연구원이 낸 개정안이나 일본처럼 피해자가 신청을 하면 검사는 법원에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했다. 또 “나아가 국민참여재판의 경우에도 이론적, 당위적으로는 피해자측의 적극적인 공판참가가 필요하다고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공판참가에 의해 자칫 배심원들의 유무죄 및 양형에 관한 심증을 흩뜨리거나, 무죄추정의 원칙이 사실상 잠탈될 수 있다는 우려를 숨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이인석 법원행정처 형사정책심의관은 유기징역형의 상한이 50년으로 개정된 것에 대해 “흉악범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근거로 인기영합적인 입법을 시도해 개정과정에서 법원, 변협, 학계의 견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공청회도 실시하지 않은 채 개정이 이뤄졌다”며 “징역 25년부터 징역 50년까지의 양형에 대한 선고형량의 데이터가 없고, 외국의 사례도 없는 상태에서 적정한 양형을 도출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되며 재판실무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기징역형 상한이 지나치게 높아짐에 따라 양형위원회에서 중대범죄에 대한 기준을 변경하는 데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유기징역형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범죄의 유형에 따른 권고형량범위를 설정하기 어렵고, 형기인상으로 인한 교정행정의 부담이 증가되는 것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벌금형 선고시 재산상태를 고려하게 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벌금형으로 종결되는 사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약식명령청구사건에 있어서는 양형자료가 제출된 기록이 한정돼 있어 재산상태를 조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또 재산상태의 심리를 원하는 정식재판청구가 증가할 수 있고 이미 포화상태인 ‘고정’사건 재판부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규정은 또 자칫 다른 양형기준을 도외시하고 재산상태에 과도한 비중을 둘 우려가 있다”며 “현행법 하에서도 양형의 조건으로 규정된 범인의 환경을 조사하면서 얼마든지 재산상태를 고려할 수 있는 만큼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소영 기자irene@law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