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년간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변호사회가 법관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법관인사에 반영할 것을 요구한 데서 비롯된 갈등, 상고법원 설치를 둘러싼 감정적 대립, 변협의 전직 대법관에 대한 변호사개업신고 반려 등 사사건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변협은 지난해 법관임용을 지원한 변호사들을 평가함에 있어 자체적인 평가기구인 ‘법조일원화위원회’의 면담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미흡’ 평가를 내리고, 대법원이 해당 지원자를 법관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하자 그 철회를 요구하면서 반박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신과 대립의 관계는 지난 1월 대한변협에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김현 협회장은 최근 법관임용 지원자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그 제도적 취지가 ‘법원에서 경력법관 지원자에 대한 의견을 물어오면 변협이 가지고 있는 징계자료 등 정보를 법원에 제공해 부적격자가 법관으로 임용되는 일이 없도록 막고, 지원자 가운데 우수한 변호사 등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는 긍적적인 의견을 제공해 국민들이 보다 공정하고 정확한 재판을 받도록 돕는 것에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협회장의 말은 당연한 것을 표현한 것 같지만 사실은 지원자를 평가하는 대신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함으로써 대법원과의 갈등의 소지를 해소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최근 대한변협이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수가 변시합격자에 대한 실무연수를 사법연수원에서 실시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 로스쿨은 교수진도 부족하고 재정도 열악해 독자적으로 실무교육의 모델을 개발하기 어려워 사법연수원의 과거 교육자료를 구해서 학생들에게 연습을 시키는 수준이다. 대한변협은 로펌 등에 취업하지 못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 대하여 자체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하여 충실한 교육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펌 등에 채용된 변호사들에 대하여는 공식적인 교육프로그램이 없이 해당 기관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수십년간 예비법조인에 대한 실무교육 경험과 연구를 축적해 온 사법연수원이 변시 합격자들에게 일정기간 실무교육을 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고 공익성도 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변협과 대법원 사이의 긴밀한 소통과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 대한변협이 추진하고 있는 민사사건에서의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경력변호사들 중에서 법관을 선발하는 관계로 변호사업계가 법관을 양성하는 텃밭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변호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제들도 대법원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때에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도 사법정책을 수립·시행함에 있어 변호사업계의 협조를 얻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한변협의 새 집행부가 보여준 최근의 입장 변화를 계기로 정치적 격동기에 대법원과 변협이 상호간에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발전을 위하여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