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취재파일 K, 한상권입니다.
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자살한 세 모녀의 사연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는데요.
가족이 병들거나 다치면, 벼랑 끝에서 밀려 떨어지고 마는 우리 사회 빈곤층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인데요.
세 모녀를 보호하지 못한 허술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습니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던 세 모녀는 왜 죽음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렸을까요?
오늘 취재파일 K의 이슈입니다.
송파 세 모녀 동반자살.
<녹취> " 며칠간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문을 두드려보니 인기척이 없고..."
<녹취> "낙상사고로 절망에 빠진 세 모녀 "팔을 수술을 해도 일을 할 수 없겠다고 그렇게 진단이 나왔대요."
<녹취>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공과금.
세 모녀 추모 물결.
<녹취>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녹취> "극단적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세 모녀가 남기고 간 '죄송하다'는 글이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요.
이번 사건을 취재한 김대영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오던 세 모녀였는데 왜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맞은 건가요?
<답변>
네, 세 모녀의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 건 12년 전 아버지가 방광암으로 숨지면서부터입니다.
아버지가 투병하는 동안 치료비와 생활비를 대느라 재산을 모두 탕진한 것은 물론 두 딸마저 빚을 져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가장이던 아버지가 끝내 숨지면서 세 모녀 가정은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질문>
세 모녀 가정은 수입이 없었나요?
생활비는 누가 벌었나요?
<답변>
큰 딸은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고 있어서 돈을 벌기 힘들었고, 둘째 딸은 아픈 데는 없었지만 신용불량자 신분이라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61살인 어머니가 식당일을 해서 번 돈으로 세 모녀는 근근이 버텨왔는데요.
그런데 지난 1월말 어머니가 출근길에 넘어져 팔을 다치면서 세 모녀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게 된 겁니다.
세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한승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달 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 셋방, 세 모녀가 싸늘하게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방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태수(경위/서울 송파경찰서 형사 2팀) : "(지난달) 26일 날 (모녀가) 발견됐는데 어느 정도 (시신은) 부패 진행이 있었다. 2월 20일 날 18시쯤에 (번개탄을) 현금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2월 20일쯤에 사망한 것이 아닌가..."
방안에선 집 주인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글과 함께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이 든 흰색 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세 모녀가 9년 동안 살며 반지하 월세방에 남긴 흔적은 금세 지워졌습니다.
박 씨 부부의 단란한 한 때... 딸의 졸업식.
밝게 웃는 세 모녀, 이들 가족의 행복했던 모습은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녹취> 집주인 : "성격도 다 좋고 다 좋아. 조용하게 살고 월세하고 공과금이고 하루도 안 틀리고 다 내던데..."
박 씨 세 모녀는 9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들을 잘 아는 주민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웃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친인척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지난 1월 말, 쌀쌀한 겨울날 아침.
박 씨는 여느 때처럼 식당 일을 하기 위해 출근에 나섰습니다.
그러다 그만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박 씨는 일어났지만 팔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식당 대신 병원을 찾은 박 씨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분간 팔을 쓸 수 없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자신의 두 팔이 감당해야 할 세 식구의 생계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박 씨가 식당을 다시 찾아온 것은 설 연휴 직후였습니다.
<녹취> 식당 주인 : "의사 선생님께서 일을 할 수 없다고 그렇게 진단을 내렸대요. 팔을 수술을 해도 일을 할 수 없겠다고 그렇게 진단이 나왔대요."
식당 주인도 동료 종업원도 박 씨의 사정이 딱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고 있을 걸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식당 동료 종업원 : "일 못할 것 같다고 이제 쉬어야겠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지막으로..."
박 씨는 팔을 다치기 전에도 시력이 좋지 않아 일을 6개월 정도 쉬고 눈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치아도 성치 않아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녹취> 동료 종업원 : "언니가 치아가 없어요. 그래서 일하면서 밥만 많이 드시지. 반찬을 못 먹었어요. 아무래도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고."
곳곳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2시간 동안 고된 식당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일해서 받는 돈은 한 달에 180만 원.
두 딸과 함께 살아가기엔 빠듯한 돈이었습니다.
박 씨의 집에서 발견된 가계부엔 어려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박 씨는 구입한 것들을 십 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적었습니다.
2006년 당시 월수입은 백2십만 원.
세 모녀의 한 달 음식비는 20만 원이 채 안 됐습니다.
성인인 두 딸은 주로 집안에 머물렀습니다.
큰 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어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다닐 형편이 안 돼 집에서 스스로 당뇨와 고혈압 수치를 기록해야 했습니다.
신용불량자인 둘째 딸도 직장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편의점 같은 곳에서 일을 했지만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녹취> 유족 : "알바해서 다니는데 거기서 돈을 안 준다는 거야. 한달 월급을 줘야되는데. 어렵다고 돈을 안 준다니까 관둘 수밖에 없잖아요."
궁여지책으로 집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 댓글 아르바이트를 하며 푼돈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만화가가 꿈이었던 둘째딸.
그 꿈은 낡은 습작 노트 속에 간직해야만 했습니다.
<녹취> 유족 : "만화가가 되려고 한 거고 아버지가 좀 잘 살고 뭔가 했으면 지금 만화가가 됐을 거예요. 아마..."
어머니의 낙상 이후 세 모녀는 한계 상황에 내몰렸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자존심이 있었고 도움을 받으려고도 안 하고 피해를 끼치려고도 안 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것도 다 거절하고 마다해서."
세 모녀가 사는 지역의 주민센터를 찾아가봤습니다.
박 씨 모녀는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긴급복지 지원, 어떤 것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 : "이 가구는 세 분이 다 근로능력이 있으신 분들이잖아요. 어쨌든 세분이 다 소득이 없다, 실직하셨다 그럴 경우에는 수급자 신청 가능하시겠죠."
전문가들은 박 씨 모녀가 신청을 했더라도 지원을 받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현재 3인 가족의 경우 최저생계비는 132만여 원.
180만 원의 소득이 있었던 박 씨 가족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박 씨가 팔을 다친 이후에도 만성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수급 대상이 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허선(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팔을 다치신 지가 불과 직전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곧 치료가 된다는 전제 하에서 담당 공무원이 적용을 하지, 그것이 오랫동안 계속해서 그것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팔 부상이 만성 질환으로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두 딸의 근로 능력이 수급 대상의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딸 2명 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추정 소득은 120만 원.
수혜 대상이 되긴 하지만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상한액 107만 원보다 추정 소득이 더 많기 때문에 현금 지원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작은 딸 1명만 근로 능력이 인정된다면 107만 원에서 추정 소득 60만 원을 뺀 47만 원을 지원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돈은 이들의 월세 50만 원보다 적습니다.
큰 사고나 위기 상황에 적용되는 긴급 복지 지원 제도가 있지만 성인인 두 딸의 근로능력 때문에 지원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허선(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송파구 세 모녀 가구의 사건은 우리나라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 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고 그 문제점의 종합판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질문>
세 모녀의 경우 결국 가난 때문에 목숨을 끊은 건데, 세 모녀와 같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적지 않다고요?
<답변>
네, 전체 인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할 때 정 가운데를 차지하는 금액을 중위소득이라고 하는데요.
그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일 경우 빈곤층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연소득 1068만원, 한달에 90만원 정도인데요.
빈곤층의 비율은 17%로, OECD 국가 가운데 6번째로 높은 비율입니다.
6명중 1명꼴인 800만명이 빈곤층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정부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140만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수 백만명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자살율은 2000년 13.6명에서 지난 해에는 29명으로 늘었습니다.
OECD 국가 중 1위로, 평균인 12명의 두 배 이상입니다.
<질문>
왜 이렇게 빈곤율이 높은 건가요?
<답변>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변화와 비정규직 양산에 따른 소득 불평등이 핵심 원인으로 꼽힙니다.
특히 일을 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1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세 모녀 가정과 마찬가지로 이들 대부분이 사고와 질병에 매우 취약합니다.
하지만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돼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근로빈곤층의 실태를 양성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일 저녁, 이 집 1층에 세들어 살던 50대 부부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방에선 타다 만 번개탄과 함께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남편 안모 씨는 간암 말기로 투병생활 중이었습니다.
<녹취> 주민 : "구급차에 몇번 실려간 거 봤고, 병원에 가서 링거 맞고 오면, 부부가 같이 가서 링거 맞고... 간암 말기라고 하더라고"
이웃 주민들이 안 씨의 신음소리를 들을 정도로 병세는 위독했습니다.
<녹취> "아저씨 신음 소리도 들리고, 아파서 괴로워하는 소리도 들리고 했어요"
밤무대에서 기타 연주를 했던 안 씨는 몇해 전부터는 택시기사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간암 상태가 악화돼 거의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기타 치러 밤무대 나가다가, (생활이) 어려우니까 택시기사 하다가 또 컨디션이 좋으면 하고, 아프면 쉬었던 것 같아요"
부인 이 씨도 간간이 식당일을 하며 남편을 돌봤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됐고, 경제사정도 더불어 나빠졌습니다.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됐지만 20살 된 딸이 있는 50대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녹취> 구청 관계자 : "아이도 이미 학교를 안 다니니까 근로가 가능하고요. 어머니도 일을 하신다니까 수급자 상당 기준에는 적합하지 않죠."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부부는 질병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부부가 딸에게 남긴 유서에는 미안하다는 말 뿐 세상에 대한 어떤 원망도 없었습니다.
<녹취> "먼저가서 미안하다, 다음 생애에도 부모와 자식으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자"
서울 마포의 한 단독주택.
지난 1일 이 집 1층에 홀로 세들어 살던 67살 정모 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자살이나 타살 흔적이 없는, 고독사였습니다.
<녹취> 김영은(이웃) : "며칠 전에 좌우지간 비틀거리고 나가는 거 봤거든. 쓰레기 치우다가, 그러고서는 느닷없이 경찰차하고 구급차하고 들이닥치더라고 그러더니 그냥..."
막노동을 하며 월 25만원의 월세방에서 생활해온 정씨 역시 병마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병원 치료나 간병은 꿈도 못 꾸는 처지였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정 씨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모은 돈을 봉투 2개에 나눠 넣어두고 눈을 감았습니다.
100만 원은 집주인에게 감사하다는 쪽지와 함께 월세 명목으로 100만 원은 화장해달라는 쪽지와 함께 장례비로 남겼습니다.
한 집에 10년 넘게 살던 정씨였지만 절박한 처지를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녹취> 양성모(이웃 주민) : "(한 번도 본 적 없으세요?) 그냥 검시할 때만 봤어요."
가족과 연락이 끊긴 정씨를 국가도 돌보지 못했습니다.
<녹취> 구청 관계자 : "((정 씨가) 수급자였나요?) 수급자 아니었어요. (신청을 안 해서 그런 거죠?) 일단은 본인이 신청을 해야하는 거고, 그리고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기 때문에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이 좀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다고 봐야죠"
다세대 주택에 홀로 세들어 사는 오정란 씨.
얼마 전부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녹취> "이게 재단 하는 게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일용직 파출부로 일하면서 일이 없는 날에는 근처 통닭집에서 주방일을 합니다."
<녹취>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오 씨가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달 평균 130만원 정도,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생활하기에 빠듯합니다.
<인터뷰> "공과금만 해도 세 가지 합치면 전기 수도 가스 하면 십몇만 원 해요."
월세 22만 원 교통비 10만 원, 몸이 건강할 때야 버티겠지만 병이 나거나 사고라도 당할까 늘 걱정입니다.
<인터뷰> "제 개인적으로는 의료비, 의료비가 제일 먼저이고, 당장 앞으로 돈 벌 수도 없고 생활이 안되니까 의료비, 그 다음에는 주거형태.."
일을 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 14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센터장) : "근로빈곤층은 소득이 불안정하지만 소득이 있기 때문에 소득이라는 게 기초생활보장비도 현재 수급자격보다 조금 더 높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소득감소가 일어나고 이미 고통이 실현되고 있는 상태에서도 법 제도의 지원을 신속하게 받기 어렵습니다."
<질문>
세 모녀의 죽음을 비롯해 최근 빈곤자살이 잇따르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죠?
<답변>
전문가들은 세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 문제가 압축돼 일어났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추정소득제'가 문제로 꼽힙니다.
세 모녀의 경우 첫째딸과 둘째달이 현실적으로는 일을 하지 못했지만 현 제도로는 근로무능력자 인정이 안 됐을 거라는거죠.
또 우리사회의 복지제도는 '신청주의'를 기본으로 하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복지혜택신청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나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문화가 팽배합니다.
세 모녀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근로빈곤층의 경우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고요.
때문에 '선택주의'는 복지 신청을 주저하게 하거나 막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질문>
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일제 조사에 착수했죠?
우리사회의 복지는 빈곤층의 자살 같은 안타까운 사례가 누적되면서 조금씩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건복지부도 이번 일을 계기로 지자체와 함께 3월 한달간 복지사각지대 일제 조사에 착수했는데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또 있는 제도를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복지제도 홍보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질문>
기초생활수급제가 실시된 지 14년째인데, 수급자는 140만명 안팎에 머물고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제를 아예 손봐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죠?
<답변>
기초생활 수급자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인데요.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적어야 하고 대도시의 경우 재산이 5,400만원보다 낮아야 합니다.
또 돈을 버는 부모나 자식이 있으면 수급대상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제도도 있는데요.
이 부양의무제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심사에서 탈락하고 있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생계, 질병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복지사각지대에 내몰린 빈곤층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곤 합니다.
완벽하고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빈곤층이 위기상황에서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버지가 병들면서 시작된 송파구 세 모녀의 고통은 10여년만에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어머니가 팔을 다쳤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세 모녀는 가난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테죠.
하지만 이들에겐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비극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