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성희(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달맞이 길은 부산 해운대의 달맞이 언덕을 향해 오르다가 송정으로 이어지며, 미포로부터 시작되는 동해남부 해안선의 위쪽에 나 있는 도로이다.
해운대 해변과 앞 바다. 오륙도, 이기대, 동백섬, 장신자락과 광안대교는 물론이고, 횡령산과 멀이 있는 영도의 태종교, 고갈산(봉래산)과 그 서편의 천마산까지도 볼 수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그런데, 제목의 달맞이길을 자세희 말하면, 달맞이 언덕 초입의 달맞이길 65번길 12-12(중 2동 1515-2)의 ‘달맞이경동메르빌아파트’에 있는 필자의 집이다. 바로 이곳이 필자가 달맞이길에서 외치는 지점이다. 제일 높은 층에 있기에 위에 말한 곳들을 헌히 바라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이는 전경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자, 그렇다면 필자가 매일 보는 경치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외치겠는가? 그게 아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해운대맨션 아파트’가 다시 지어진 것으로, 그 뛰어난 전망은 재건축에 따른 비리가 성공하는 수단이 되었다. 말하자면, 해운대 바다 전망을 가진 동에서 핵심적인 비리가 발생토록 한 중요한 조건이 된 것이다. 그 비리는 공사기간을 단축시켜 엄청난 부실공사을 초래했고, 아파트의 전망가치가 한껏 발휘될 수 없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 같은 비리의 결과, 필자의 집은 2003년 1월부터 최근까지 지붕 경사면과 벽면 콘크리트의 균열로 지붕누수 피해를 입었고, 입주 후 거의 2년 동안 실내의 하자보수 때문에, 그리고 입주 5년 후 2008년에 불거진 위 비리의 내용을 밝히고 그 혐의자인 재건축 조합장의 처벌을 호소하면서 글로 소리 없이 외치고 또 외쳤던 것이다.
이 외침을 책으로 엮어 다시 한번 크게 외치려고 2011년 12월부터 학교연구실 컴퓨터로 책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을 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PC가 몇 차례 도용되었음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앞에 말한 재건축비리를 입증하는 일반분양 안내문이 없어진 것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했다. PC 도용사건을 계기로 학교본부와 겪었던 우여곡절 끝에 필자는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필자는 현 총장에게 그 결론에 대한 진상확인을 요청하고 있다.
필자가 내린 결론의 요지는, 2008년 11월 13일 23시 58분 필자의 연구실 캐비넷에 둔 그 일반분양 안내문이 없어짐으로서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 재건축비리가 숨어들었고 이 비리를 글어들여 지금도 숨겨주는 자들이 바로 필자의 주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누가 알겠는가. 내린 결론을 수백 번 곱씹으며 마음 아파했었다. 이런 경우 가슴에 시거먼 멍이 들었다고 표현함이 좋을는지 모르겠다. 드러내지 않고 혼자 이 멍을 삭이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무진 애를 먹을 것 같다.
이 때문에 순서로 보면 제1편의 마지막에 실릴 내용이지만, 제목 ‘재건축비리 학내로 잠입하다’로 하여 이 사실을 첫 머리에 털어내고 갑갑하고 무거운 마음으로부터 다소나마 일찍 놓여나고 싶다.
이것을 제외한 다른 내용들은 이루어진 시간 순으로 펴겠다. 그리고 이 글에 나오는 공인(公人)의 성명은 그대로 두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사인(私人)의 경우에는 성(姓)만 나타내겠다. 그러나 재건축비리에 대하여 필자와 같은 의견을 가졌거나, 고소•진정에 참여했거나 혹은 검찰과의 면담에서 거짓진술을 하지 않았던 사인들의 성명을 온전하게 둔 부분도 있다.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모든 이의 주민등록 뒷자리 번호는 나타내지 않는다.
달맞이길과의 인연
대학 다니던 어느 해(1968~1971), 그야말로 언덕 같았던 민둥산의 달맞이 언덕에서 정월대보름 달을 맞은 적이 있다. 그 달구경 뒤 달맞이길을 내려오며 언젠가 달맞이 언덕에다 전망 좋은 내 집을 갖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 보았다. 아마 그때 달맞이길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후 20여 년이 지난 1995년 5월 어느 날 달맞이 언덕의 한 유명한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나서 달맞이 샛길로 오다 보니 해운대 바다가 잘 보일 위치에 거의 다 지어진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파트를 보자 마음 속 깊숙이 묻혀 있던 달맞이 언덕에의 내 집 소망을 부추기는 충동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이튿날 그 부근의 부동산 중개소의 안내로 5층의 어떤 집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앞 쪽의 전망부터 살폈다.
유난스레 바다 전경에 대한 욕심이 많은 내게 그 집의 정망 정도는 내성이 차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아파트에 내집을 가져볼까 하던 맘을 접는순간, 재건축이 되면 앞으로 전망이 좋은 확실한 달맞이길 옆 ‘해운대맨션 아파트’ 1층 어느 집을 그 부동산 중개소에서 권했다. 그 전망 조건 때문에 귀가 번쩍 뛰어 일주일 만에 그 집을 계약했다. 그 집은 1층인데도 달맞이길의 가로수 위로 고즈넉이 보이는 바다 전경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건축 후에는 더 훌륭한 전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기쁨에 한 동안 달떠 지냈다. 그 즈음에 달맞이길과의 내 인연이 안착되었던 것 같다.
이후 5년 동안 시공사가 몇 번 바뀌고 우리 경제가 IMF체제 관리 하에 놓이면서 재건축사업은 진척되지 않았다. 이에 조바심이 생겨서 ‘행운대맨션’ 보다 전망이 더 나은 달맞이 언덕 쪽의 집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준비도 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IMF의 통제가 풀리고 우리의 경제사정이 호전되자, 경동건설에 의해 2000년 6월 다시 시작된 재건축공사가 2002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재건축 추진 후 거의 8년 만에 현재의 집을 마련한 것이다.
그 기쁨의 시간은 잠시였다. 2003년 4월 지붕누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실내의 하자문제를 안고 입주하여 2년 정도 그 보수작업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누수를 제외한 다른 하자보수가 마무리되고 한 숨을 돌린 지 3년쯤 되었을 때인 2008년 9월부터 동 대표를 맡았다. 그때부터 밝혀지기 시작한 재건축비리 때문에 현재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들어 생각하면 해운대 바다 전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달맞이길과 좋은 인연을 맺고 있는지, 아니면 그 인연이 나빠서 재건축비리로 골머리를 앓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점은 나의 외침을 들어본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달맞이길 경동메르빌에서
저자 정 성 희
2003년 3월 25일 초판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