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9월 9일 오후 4시 성북구 삼선 초동학교 동 옆문에서 콘테이너 생활 9주년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전국 100여 민족애국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였다.
국민들 가슴을 아프게 만든 사연은 지난 1980년 군사 정부시절, 동아일보 1면과 TV언론 보도 등에서 평생을 독재와 싸워온 한 야당의 정치원로 강원도지사 출신인 박영록 4선 국회의원에게 신군부는 합헌적 최규하 전 대통령 체제를 전복음모에 단신으로 맞서 싸우다가 잡혀가 의원직을 강탈 당하고 6,000만원 밖에 안되는 그의 재산을 30배로 늘려 "18억원 부정축재자"로 조작하여 재산을 몰 수 당하여 할 수 없이 200만원짜리 4평의 콘테이너에서 남몰래 살아오는 동안 차남은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장남은 80년 아버지와 함께 신군부에 끌려갔다 온 이후 부터는 정신착란증으로 지금까지 식사를 잘 못하는 관계로 빚더미에 앉아 한 맺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민족 정기와 4.19혁명 정신을 생각나게 할 뿐만아니라, 30대 초대 민선 강원도 지사에 당선하여 미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한국의 뉴 프론티어를 선창하며 보도출근, 도시락 지참 등 공직자 윤리강령을 몸소실천하여 정관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40대 기수론의 선두주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도세가 약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6, 7, 9, 10대 국회의원과 3야당 부총재, 총재 대행까지 역임하면서 헤-그에 있는 이준열사의 묘역을 챙기고, 베를린 올림픽 기념탑에 새겨진 손기정 선수의 일본 국적을 한국 국적으로 복원한 민족적 장거를 회상토록 하였다.
가뭄으로 농민들의 가슴이 타들어 갈때 백운대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을 우러러 - 만번째 큰절을 하자 무릅이 터져 선혈이 흐르면서 억수같은 비가 전국에 내렸다는 그의 일화는 우리 국민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식량 증산을 위해 이중곡가제(二重穀價制)를 창안하여 선창하면서 외유길에 여비를 절약하여 일본으로부터 다수학벼씨 3가마를 사들여와 우리 민족의 보리고개를 없앤 사람이 바로 박영록 의원 이라고 한다. 그는 마치 고려때,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큰 붓뚜껑 속에 목화씨를 숨겨 국내에 들여와서 우리 민족의 의(衣)문제를 해결해 준 문익점 선생님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이 가슴속 깊이 각인된 것은 80년 신군부에 반대하다 단전 단수까지 당하여 물을 뒷집에서 담을 뚫고 고무호수로 보내주었고, 식량은 청소부를 가장한 당원들이 쓰레기통에 넣어주는 밀가루 봉지로 연명하면서도 끝내 굴치 않고 현금 5억원까지 주며 권하는 국회의원 자리마저 거절하고 국민 앞에 양심선언한 그의 궅은 정치 절개는 집 한칸 없이 4평짜리 콘테이너에 살면서도 잘 곳 없는 노숙자들 보다 나는 행복하다며 만족해하는 그의 맑고 깨끗한 정치로 한평생을 선비의 고장 안동 5,000여 시님과 고성군들이 그를 흠모하여 대한민국 청렴정치인대상과 우리민족 최고의 청백리 황희 정승대상을 시상하였으며 또한 불교와 기독교를 비롯한 전국 30 애국사회단체에서는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운동에 앞장서온 그에게 통일의 기수대상을 시상 거족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전국민적 존경과 성원 속에 노벨평화상에 추대되었을 그가 오늘 우리사회는 그를 멀리하며 따르지 않고 망국적인 부정부패 늪속으로 빠져만가는 우리 공직사회와 정치권의 직무가 거듭 개혁하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부추실은 글을 국민에게 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