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는 역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富)를 탐내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히 과거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친인척 비리, 특히 아들들의 비리로 레임덕을 자초하고 이로 인해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엔 권력형 비리가 없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친인척 권력형 비리가 없다”고 단언했지만, 도처에서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되뇌이던 ‘잃어버린 10년’의 실체가 다름아닌 ‘권력을 잡으면 부를 챙길 수 있다’는 구호의 실체였던가.
“현 정부 들어 권력형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지만 없다고 보느냐, 그건 아닐 것이다. 아직 게이트가 터지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우리가 야당이라면 이 정도 됐으면 정권을 가만히 놔두질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에선 게이트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인물이 없어 보인다. 우리한테는 다행이다.” 야당의 주장이 아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고백(?)이다. 홍준표 최고위원의 이 말은 이명박 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를 솔직하게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가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의혹의 차원을 넘어 사실관계가 거의 밝혀졌는데도 검찰은 흐지부지 뭉개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뿐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굴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 게다가 언론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한 보수신문의 논설위원은 검찰을 개혁하면 검찰의 칼끝이 정권을 향하게 되니까 검찰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충언했을까. 최근 ‘스폰서 검찰’ 특검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두고 차라리 MBC TV ‘PD수첩’ PD들에게 수사를 맡기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누리꾼의 비아냥마저 나왔겠는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이 대통령의 사촌 처형인 김옥희씨는 비례대표를 받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부터 30억원을 받았는데도 검찰 조사는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고 2달 만에 종결됐다. 이명박 대통령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200억~300억원 비자금 사건도 비슷하다. 2007년 대선 직후 ‘효성그룹의 일본 현지법인 수입부품 거래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200억~3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자 제보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나 진척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박연차 사건은 이 대통령 측근으로 불똥이 튀었다. 이 사건으로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2억원 수뢰 혐의로 구속됐으나 이종찬 전 민정수석과 천신일 휴켐스 전 사외이사와 관련된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씨 주가조작 사건도 9개월 만에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됐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재벌 3세’ 10여명이 주가를 조작, 수백억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챙겼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됐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경호 전 코레일 사장이 강원랜드 임원으로부터 5000만원을 수뢰했다는 혐의도 유야무야됐다. 또한 이 대통령의 동서인 신기옥씨는 ‘그림 상납’ 사건의 주인공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왔지만 단순한 경고조치로 무마됐다. 한 전 청장은 ‘공부’를 핑계로 미국으로 도피했고 이를 방조했다는 의혹도 남아 있다.
더구나 청와대는 ‘비리의 온상’처럼 비쳐진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최근 청와대 지붕 밑에서도 행정관들이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며 “청와대 공사 입찰정보를 빼돌린 행정관, 코스닥 상장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의혹이 있는 행정관, 청와대 재직시 50억 사업을 밀어준 행정관 등 앞으로 이런 문제가 계속 제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야당의원들이 권력형 비리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수천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중 현금 3억원을 대선 축하금으로 여권에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이 대통령의 조카사위와 대학동문 등 측근들의 ‘먹튀’ 행보로 개미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인 구천서 회장의 ‘먹튀’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외곽지원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관련 업체에 대한 특혜성 대출 의혹도 불거졌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은 이른바 공직은 물론, 민간의 요직까지 점령하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에 이 대통령과 MB정권 실세 인맥이 득세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증권업계 및 유관기관의 임원 및 감사 자리고 장악하고 있으며 민간기업의 사외이사들도 그들 인맥으로 채워졌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의원이 관련된 이른바 ‘영포라인’의 무소불위 권력은 여권의 권력다툼으로 불거졌으나 유야무야돼버리고 말았다.
“검찰은 집권 1~2년차에는 살아있는 권력의 문제를 숨겨두고, 2~3년이 되면 여당 의원부터 잡고 마지막에는 친인척, 정권이 끝나 죽은 권력이 되면 실세 등 모든 사람들을 잡아넣는다. 최근 이런 시나리오가 계속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지적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누리지 못했던 권력을 잡은 뒤 권력 실세들이 이를 이용한 밝혀지지 않은 ‘권력형 비리’는 얼마나 될 것인가. 아직도 우리사회는 ‘권력’과 ‘부’는 일심동체인 것인가. 이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는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 공정하게 부를 나누는 세상’인가.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치솟는 물가고로 핍박받는 서민은 그저 ‘강 건너 불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