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공개 연구재판 열어 사건관리·재판방식 시연
법원이 ‘차별적 집중구술심리’제도를 본격 도입, 구술심리 강화에 나섰다.
차별적 집중구술심리란 변론 등 모든 소송행위를 원칙적으로 공개된 법정에서 구두로 진행하고 재판기일도 하루 또는 연일 개정형태로 열어 집중해서 심리하되 사안의 특성과 난이도에 따라 그 방법과 정도를 달리할 수 있는 재판방식이다. 재판부의 현실적인 업무부담량을 고려해 사건을 효율적으로 관리·처리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까다로운 사안에 대해서는 집중구술심리를 보다 강화함으로써 재판의 설득력을 함께 높인다는 복안인 셈이다.
서울행정법원(법원장 이재홍)은 지난달 28일 사법연수원(원장 손용근)과 공동으로 ‘차별적 집중구술심리를 위한 법관세미나’를 개최하고 차별적 집중구술심리 강화방안 및 개선점에 대해 논의했다. 또 세미나에 앞서 행정법원 3개 재판부가 직접 차별적 집중구술심리 방식으로 사상 첫 공개 연구재판을 진행해 새로운 사건관리 및 재판방식을 시연하기도 했다. 공개 연구재판에는 이 법원장과 이광범 수석부장판사, 김상준 사법연수원 수석교수를 비롯해 서울행정법원 소속 판사들이 직접 방청객으로 참여해 차별적 집중구술심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 법원장은 “국민이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행정재판에 있어서도 구술심리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사상 최초로 시도된 공개 연구재판과 법관세미나 경험을 살려 집중구술심리를 좀 더 강화해 재판에 대한 승복률을 높여 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 사건 난이도·특성따라 단계별 재판운영= 차별적 집중구술심리는 현재 법원의 인적·물적 여건하에서 사건의 유형에 맞춰 최대한 집중구술심리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재판방식이다.
우선 소장 접수단계에서부터 분쟁성 사건과 비분쟁성 사건(D등급)으로 나누고 분쟁성 사건은 다시 난이도에 따라 고(A등급)·중(B〃)·저(C〃) 사건으로 나눠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무변론·공시송달 등 비분쟁성 사건은 참여관의 소장심사 및 판결작성 업무보조 등을 통해 간결하게 처리한다. 중·저(B·C등급) 난이도 사건은 조기 사건분류와 쟁점보고 등을 토대로 조정절차에 회부하거나 심리초기 쟁점추출을 위한 구술심리, 조기 변론기일지정 등으로 신속하게 처리한다. 고(A〃)난이도 사건은 심리 중·후반의 심증 형성을 위한 구술심리에 집중한다. 양쪽 당사자와 절차협의를 거쳐 심리계획을 수립한 후 연일개정에 가까운 집중구술심리기일을 지정해 사건방치 또는 기일공전을 방지해 가능한 1년이내에 사건을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변론기일의 운영도 쟁점위주의 공방이 펼쳐질 수 있도록 유도해 원칙적으로 쟁점의 정리와 정리된 쟁점에 관한 변론을 모두 제1회 변론기일 종료시까지 완결한다. 다만, 쟁점에 관한 주장과 반박기회는 최대한 보장해 재판운영의 설득력을 높인다.
증인신문기일도 증인과 당사자 신문이 같은 기일내에 집중적으로 실시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증인 등 상호간의 대질신문이 가능하도록 해 증거조사의 집중력도 배가시킨다. 쟁점이 많고 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쟁점별 증인신문방식을 채택해 운영한다.
행정재판은 형사재판과 달리 변론종결 단계에서 대리인 등의 최후변론이 제도화되어 있진 않지만, 양 당사자에게 변론종결 전 사건전반에 대해 최종적으로 요약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충분히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한다.
판결문은 분쟁의 전제가 되는 기본적인 요건사실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작성하되 쟁점은 부각시켜 이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해 줌으로써 판결에 대한 승복률을 높이는 한편, 판결문작성에 소요되는 시간도 줄여 법정변론시간으로 확보, 심리충실과 신속재판을 도모한다.
◇ 사실인정·법리중신 쟁점변론, 전문심리위원 활용 등 유형별 집중구술심리= 이날 열린 공개연구재판에서는 이 같은 차별적 집중구술심리방식에 근거해 사건 유형별 집중구술심리가 시연됐다. 행정13부(재판장 박정화 부장판사)가 맡은 신기술인증처분취소 사건에서는 신기술의 진보성 등을 중심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이용한 사실인정중심의 쟁점변론이 벌어졌다.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 부장판사)가 진행한 법인세 부과취소사건에서는 부과세 처분근거인 수수료 산정의 합리성 및 이익분할법 적용의 적법여부에 대한 공방이 이뤄졌다. 특히 재판부는 사건 대리인들이 쟁점에서 벗어난 내용을 주장하는 경우 곧바로 이를 차단하는 한편, 개별쟁점에 대한 일방의 주장이 끝난 후 곧바로 상대방에게 반론기회를 부여해 법리적 공방이 효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해 눈길을 모았다. 행정3단독 조민석 판사가 진행한 추가상이 비해당결정처분 취소사건에서는 해당 질병 전문 의료인이 전문심리위원으로 출석해 원·피고측 주장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밝혀 재판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다.
◇ “적절한 사건수 전제돼야”, “배석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 필요” 개선점 논의= 공개연구재판에 이어 열린 ‘법관세미나’에서는 차별적 집중구술심리 강화를 위한 보완사항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행정1부 이재홍 판사는 “집중구술심리는 좋은 내용이지만 전제는 적절한 사건수”라며 “집중구술심리사건도 1건이고 아닌 사건도 1건인데 집중구술심리사건 1건을 위해 아닌 사건 1건에 대해 재판부가 가지는 정당한 시간소비권을 해치면서까지 집중구술심리의 시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행정12부 장상균 부장판사는 “구술심리가 절차를 진행하는 재판장만을 위한 구술심리가 되어서는 안되며 재판부 모두를 위한 절차가 되어야 한다”며 “배석판사를 포함해 재판부 3인이 모두 사건에 대해 준비가 된 상태에서 들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 배석판사들의 속행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14부 성지용 부장판사는 “재판장이 구술심리 중간중간 내용을 요약해 고지하고 이에 대한 추가의견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당사자들의 주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배석판사들의 사건파악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5부 이진만 부장판사는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집중구술심리를 한 후 몇 개월이 지나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며 “집중구술심리로 사건에 대해 잘 파악해 놓은 상태에서 가능한 빨리 선고를 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판사는 또 “대리인인 변호사들이 서서 변론을 할지 앉아서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많은데 대법원처럼 변론대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며 “재판부가 법정에 입정해 인사를 하는 방식 등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번 공개연구재판과 법관세미나를 통해 수렴된 결과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집중구술심리방식을 적용해 재판을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