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학교법인 영생학원에 대한 진정내용)
구 전주영생학원(전주대학교)이 권력에 의한 수탈경위
(1984년 8월말경 문교부의 관선이사 투입후 강홍모 목사님 사망시까지)
전주 구 영생학원(전주대학교, 전주전문대, 영생 남녀중, 고등학교)에 대한 과거 권력에 의한 수탈과정을 진정하며 우리나라의 정의를 바로세우고 다시는 권력에 의해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사건 발생의 경위>
전주 영생학원(현 신동아학원)은 1953년 6.25전쟁 휴전직후 강홍모 목사는 당시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가난한 어린이를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할 수 있는 야간 초등학교를 설립하면서 또 그 졸업생의 미래를 위해 영생중학교를 설립, 그 후 고등학교, 대학, 단과대학을 설립, 경영하던중 학생들의 간절한 요구와 그 필요를 절감한 학교재단의 뜻으로 종합대학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주시내에 있던 영생학원의 구 캠퍼스의 부지 30,000평을 매각하여 그 매각대금으로 현 전주종합대학교를 건립하기로 계획하고 부지를 매입하여 새롭게 캠퍼스를 건립하던 중 모종의 세력에 의해 구 캠퍼스 부지를 매각하지 못하여 당시 약 50억원 은행 채무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당시 문교부에서는 사무감사가 나오고 학교의 재정이 부실하다하여 문교부의 조정으로 당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축구협회 회장인 최순영씨를 소개 받았고 당시 학교법인 이사장 강홍모 목사님은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우니 50억원을 차용해 주면 재단이사로 영입하여 공동운영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최순영 회장은 대통령(당시 전두환)에게 상의해야 한다고 간 후 약 1개월 후인 1984년 9월경 최순영의 요청으로 만났으나 공동운영하면 시끄러울 소지가 있어 학교를 단독으로 운영해야하니 모든 것을 본인(최순영)에게 넘기라고 요구하여 이사장 강홍모 목사님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후 1984년 8월말경 관선이사(조영빈 외 7명)을 강제로 투입시켜 강홍모 이사장 외 7명의 이사를 강제로 퇴임시킨후 9월 1일자로 관선이사가 최순영씨에게 학교법인 이사장직을 인계하여 오늘에 이른(구 법인등기 참조)것 입니다. 이는 부도가 난 것도 아니고 당시 재단의 단지 현금의 유동성이 부족했던 것 뿐이었습니다.
단지 학교 캠퍼스를 종합대학으로 승격 발전시키고자 애쓰다가 재정적으로 다소 어려워 졌다고 사전 통보도 없이 관선이사가 자구적 해결방법을 무시하고 최순영에게 학교를 강제적으로 넘기는 교묘한 수법으로 강홍모 목사는 학교를 약탈당한 것입니다.
그 후 전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돌아온 후 재임기간중 제일 잘못 처리한 것이 전주대학교 처리문제였다고 하면서 최순영씨로 하여금 학교를 영생학원 이사장 강홍모에게 돌려주라고 한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또한 장세동씨가 비서관을 보내 학교를 돌려주겠다고 하였으나 최순영씨는 당시 대통령 전두환씨에게 일금 팔십억원을 주었으니 그 돈을 주면 학교를 되돌려 주겠다고 한 사실이 있습니다. (강홍모 목사님 증언)
이는 어디까지나 군사정권 독재시절 문교부 행정집행과정에서 일어난 수탈로 누구나 군사독재의 부당한 처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시 군사독재의 막강한 정치배경에 힘입어 외화도피, 옷 로비 등을 주도한 최순영씨와 그 부인 이형자씨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최순영씨가 금고이상의 형을 받자, 자기의 친지인 하용조목사에게 학교재단 신동아학원 이사장직을 위임하고 현재 하용조씨에게 위임 운영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억울한 사실을 통찰하여 주시고 이러한 비통한 일을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에서 철저히 조사 하시어 과거권력에 의해 약탈당한 영생학원을 되돌려 주어 선이 악을 이기는 사회가 될 수 있는 신념을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