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재소환조사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홍만표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10일 “100만 달러 용처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측에서 더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어 권 여사 소환이 늦어질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처리도 이번 주 안에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수사 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2007년 6월 말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100만 달러가 어디에 쓰였는지를 놓고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 노 전 대통령 측은 당초 “권 여사가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을 통해 받아서 모두 빚 갚는 데 썼다”고 해명했고, 권 여사는 지난달 11일 부산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을 때도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이 하나하나 증거를 찾아내 이 주장의 신빙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8, 9일 100만 달러의 용처를 설명한 A4용지 10장 분량의 e메일을 검찰에 보냈다. 여기에는 “권 여사가 미국에 있던 아들 노건호 씨에게 주택을 마련하라며 40만 달러를 송금했고 10만∼20만 달러는 아들딸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줬다. 나머지는 개인 채무 변제를 위해 사용했고 구체적인 용처를 밝힐 수 없다”고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0만 달러 부분은 검찰이 노 씨 계좌의 입출금 기록을 통해 찾아낸 것을 시인한 것.
검찰은 이 답변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권 여사를 재소환조사할 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이고, 노 전 대통령 측으로서는 이에 대비할 시간이 또 필요할 수도 있다.
수사 속도가 늦춰지고 있는 데에는 검찰 쪽의 사정도 작용하는 듯하다. 검찰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박 전 회장 구명로비 의혹 수사에 본격 나서면서 노 전 대통령 쪽 수사는 완만하게 진행하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이 때문에 권 여사 재소환조사가 이번 주 중후반으로 미뤄진다면 노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 결정은 다음 주로 순연될 수밖에 없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