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검찰의 ‘결론’ 도출이 미뤄지고 있다. 문제의 ‘100만달러 사용처’가 다 밝혀지지 않은 탓이다.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범죄행위의 성립 여부에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쪽은 이 문제를 두고 꽤나 긴 고민을 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팀의 최종 수사 보고 내용이 ‘완벽하다’고 자평하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600만달러 수수 사실을 재임중 알았는다는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자신한다. 영장심사나 이후 본안재판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진술 등 증거를 손에 넣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100만달러의 사용처를 확인해 제출하겠다는 노 전 대통령 쪽의 입장을 이유로 신병처리 판단을 미루고 있다. 조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수사팀이 모은 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겠다는 태도마저 엿보인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이 소명을 하겠다는데 그것을 받아보는 게 합당한 예우라는 설명도 하고 있다. 결국 임채진 총장은 “100만달러 사용 내역을 받아 본 뒤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자”는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쪽에 ‘100만달러 사용처 확인이 언제쯤 가능하겠냐’며 재촉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쪽은 권양숙씨에게 100만달러의 구체적 사용처를 캐물으며 소명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권 여사의 말에만 의존할 수는 없어, 변호인들이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며 “가능한 한 빨리 사용처를 확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한편으로 국가정보원 직원이 김만복 전 원장의 지시로 2007년 2월 미국에서 노건호씨가 이사할 곳을 알아봤고, 이런 정황이 100만달러 수수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검찰의 관점과는 선을 긋고 나섰다. 문 전 실장은 “국정원이 그랬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검찰 조사 때 처음 들었고, ‘뜻밖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100만달러 사용처 문제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 쪽이 수세에 몰리는 모습도 엿보인다. 애초 노 전 대통령 쪽은 “100만달러 중 미국으로 간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2007년 6월29일 권씨가 이를 받은 뒤에 미국에 있던 노건호씨에게 돈이 송금된 게 계좌추적에서 드러났기 때문에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지난주만 해도 영장 청구는 둘째치고 노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무죄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었다”며 “하지만 100만달러 사용처를 두고 벌어지는 공방을 보면 노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쪽이 검찰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대목에서 100만달러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소명하고 나선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의 신중론에 이런 배경도 깔렸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편,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소환을 전후한 때부터 영장 청구와 관련해 일선 검찰 간부들의 의견을 취합해 왔다. 한 검사장은 “총장이 전화를 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주로 일선의 분위기를 듣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기사출처 한겨레신문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