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검찰 수사의 무게중심이 박연차 회장 구명로비 의혹에 관련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여권 인사들에게로 급속히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가 박 회장 구명로비 의혹을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정치권은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릴 전망이다.
◆노(盧) 불구속기소 선택 배경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인물들을 잇달아 구속시키며 기세를 올리던 검찰은 정작 노 전 대통령 본인에 대해서는 '서면조사 후 소환'이라는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서면 조사와 불구속·구속은 전혀 다른 얘기"라고 말했으나, 검찰 주변에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더 이상 검찰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당초 수사팀은 노 전 대통령의 기(氣)를 완전히 꺾은 뒤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스케줄을 상정했지만, 지금은 검찰 내부에서도 불구속 기소 의견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역시 노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으며, 이같은 기류가 검찰 수뇌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법조인은 "검찰이 아무리 정치로부터 독립돼 있다고 해도, 대통령의 암묵적인 결정 없이 독자적으로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이른바 '역풍(逆風)론'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친이(親李)계의 한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재기불능 상태"라며 "역풍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을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세무조사 구명로비 의혹 수사는 불가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박 회장 구명로비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천신일 회장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천 회장 등에 대한 수사는 검찰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수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작년 11월 이번 수사를 시작한 이래 천 회장 주변에 대해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벌여 박 회장과의 의심스러운 자금거래를 포착, 이달 초 천 회장을 출국금지했다. 천 회장에 대해선 지난 2008년 박 회장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고발을 막기 위해 권력 핵심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돼 있다.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이달 초부터 박 회장을 서울구치소에서 불러내 천 회장과의 금품거래 관계 및 구명로비 의혹을 집중 추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 구명로비 의혹 수사와 병행해 박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전·현직 검찰 간부들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최근 지인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부하를 '읍참마속(泣斬馬謖)'할 수밖에 없는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서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낮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노 전대통령 사저를 방문했다. /김용우 기자
[최재혁 기자 jh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