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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활동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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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날희망연대 임원들과 용산참사 노제에 방문....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약칭 부추실) 박흥식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2010년 1월 9일 오후 12시에 퇴계로 대림정에서 새날희망연대 1월 정례회겸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후 임원들(강석현 한단련 공동대표, 김병태 한국농정신문 상임고문,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최천택 한신대 명예교수)과 함께 용산참사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노제행사에만 참여하였다. // 지난해 1월 발생한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 5명에 대한 장례식이 서울역 광장에서 엄수됐다.오전 9시 발인식에 이어 낮 12시 15분 시민과 사회단체 회원, 정당과 각계 인사 등 2,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된 장례식은 개식사와 약력, 조사, 조가, 진혼무,유가족 인사, 분향, 헌화 등의 순서에 따라 진행됐다.유족과 참석자들은 장례식을 마치고 용산참사 현장까지 약 3km 구간에 이르는 거리 행진을 한 뒤 참사 현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거리 행진에 이은 노제로 서울역에서 용산 남일당까지의 일부 차로가 한동안 통제되어 무려 4시간에 걸쳐 용산참사 현장에 도착하였다.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역 광장에 전경 44개 중대 등 모두 67개 중대, 4,700여 명을 배치했지만 다행히 연행자나 폭력사태는 없었다.
    201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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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상의, 신년인사회 열어···李대통령외 경제계 인사 천여명 참석
    부추실 박흥식 상임공동대표는 19년전의 벤처 중소기업인 만능기계(주)를 운영하던 시절을 되돌아보기 위해 2010년 1월 6일 오후 5시 삼성동 코엑스 무역회관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신년인사에 오후 4시 20분경 도착하였다. 그런데, 무역회관 그랜드볼룸 앞에는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본 행사진행자의 안내를 받으면서도 초청장에 첨부된 비표와 명찰을 교환하기 위해서 비표를 주고 명찰을 받아서 가슴에 달은 후 검열대에서 몸수색까지 마친후 그랜드볼룸 안으로 입장하자, 마자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으며, 또한 경제계 5단체장과 임원들이 길게 줄지어 있어서 박대표는 들어가면서 일일이 새해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하면서 입장을 하였다. 입장후 5시가 되자 이명박 대통령이 입장한다는 안내와 함께 입장한 후 경제계 인사와 정·관계, 사회 각계, 주한 외교사절 및 외국기업인 등 각계 주요 인사 1000 여명이 신년인사회가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이 인사말을 시작으로 경제 5단체장이 인사말을 한 후 이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새해 인사말을 하였다. 이 자리에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5단체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강덕수 STX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김상열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주호영 특임 장관 등 관료들도 참석했다. 국회에서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정장선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고, 압둘라 알 마이나 주한 UAE대사, 에이미 잭슨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 아와야 쯔토무 서울재팬클럽 이사장 등 외교사절과 외국기업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날 손경식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가 불황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고는 있지만 너무 낙관적으로 미래를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정상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고용 창출과 투자 확대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근로자, 수도권과 지방 등 모든 부문이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한해가 돼야 한다"며 "경인년이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선진화로 향해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국회를 바라보기에 맨날 싸우는 것 같아도 경제를 살리자는 데에는 여야가 없다"며 "올해는 여야가 더 양보해 국민들이 걱정하지 않는 국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제단체장들의 신년 덕담도 이어졌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새해 호랑이의 기운을 이어받아 국위가 한단계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은 "올해 11월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통해 국격을 높이자"고 강조했다. 이수영 경영자총협회장은 "올해를 노사관계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자"며 "법개정 내용이 산업현장에서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는 덕담을 남겼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일자리 창출은 중소기업이 몫을 차지해야 한다고 본다"며 "중소기업들도 일자리 창출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행사 참석자들은 새해 의지와 각오를 다지는 의미로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다. 이 대통령은 행사장을 떠나면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각계 대표들이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각 경제5단체장이 돌아 가면서 건배제의를 외친후 만찬이 시작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중견기업 대표이사들을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격려를 시작하자, 참석한 기업인들과 경호원들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 주위로 몰려 들었다. 이때, 박대표는 단상이 있는 앞쪽으로 가서 각 기업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에게 닦아가서 명함을 주면서 "저의 단체에서 국회에 청원을 했는데 좀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했으며, 정몽준 대표는 알아 보겠다고 화답을 하였다. 그 옆에 있던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도 시민단체에서 참석했는데 청원심사를 도와주십시요. 라고, 명함을 주고 악수를 하면서 인사말을 하였고, 그 옆에 있던 박병석 17대 정무위원장에게도 명함을 주고 악수를 하면서 도와 달라는 말을 하는데, 그 뒤쪽에 김형오 국회의장이 닦아서기에 바로 명함을 드리고 악수를 하면서 "시민단체에서 참석했는데 도와주십시요" 라고 말하자, 국회의장은 부추실 박대표 얼굴를 알아 보뜻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 화답을 하였다. 그런후 박대표는 행사장을 바로 나와서 삼성동에 있는 강현권 부단장과 추어탕으로 저녁을 먹은 후 삼성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 했다. 위와같이 '대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는 매년 1월초에 개최된다. 국내 주요 기업인은 물론 각료,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사회단체 및 학계, 언론계 대표, 주한 외교사절 및 외국기업인 대표 등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하는 경제계 최대 행사로 꼽는다. ▶ 2010년 1월 6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한상공회의소 2010 신년인사회 행사가 있었습니다.
    201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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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정치광장을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생명평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시민여러분. 2010년 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했던가요? 묵은 것을 제대로 털어낼 수 있는 과단성과 새로움을 위해 호시우보(虎視牛步)하는 지혜가 필요한 해입니다. 퇴행으로 점철된 2009년은 참으로 긴 한 해였습니다. 민주화시대를 이끌었던 두 전직 대통령을 잃었고, 용산의 망루에서는 우리사회가 따뜻하게 품어야 했던 약한 이들이 이슬처럼 사라져갔습니다.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지붕에서 처절하게 솟구쳤던 노동자들의 비명이 귓전에 맴돌고, 시국을 걱정하며 이름 석자를 올렸다는 이유로 공무원들과 선생님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구시대적인 악습이 사회발전을 짓눌러 새로운 사람, 혁신적인 시스템이 건강하게 착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한 토목사업은 더욱 커져 갔고, 지역균형발전정책을 비롯해 25%의 정책집행단계에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무산위기에 있으며, 사회복지와 서비스의 발전은 더뎠습니다. 정치권력의 손아귀에 미디어가 흡수되었고, 공공성이 취약해진 교육은 자구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교육 시장 의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화의 힘을 확인하게 됨이 큰 진전입니다. 국민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로막는 강압적 통치방식이 위헌으로 결론 났고, 지난 정부에서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가당찮은 구실을 삼아 해임됐던 인사들은 현 정부의 잘못으로 판결이 내려져 뒤늦게나마 명예를 되찾았습니다. 촛불항쟁으로 저항했던 시민단체들을 '불법폭력시위단체'라 하여 온갖 불합리한 차별을 자행했던 것조차 부당했다는 판결이 이어졌습니다. 굳건히 닫힌 광장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조례개정 문턱까지 치닫게 되었으며, 10.28 재보궐선거에서는 정권의 오만과 독주를 혹독하게 심판하는 대중들의 현명한 행동을 경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밑바닥부터 큰 변화의 힘이 제법 힘 있게 꿈틀거리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이제 시민들 스스로가 희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은 시민참여정치의 원년입니다. 2010년은 이명박정부가 집권 중반기로 접어드는 해이지만, 길게 보면 경술국치 100주년, 6.25전쟁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러면서도 6월 2일에는 16명의 광역자치단체장을 비롯한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 및 기초의원,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마치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를 향해 흘러온 근대사가 방사형으로 수렴되어 그날에 닿을 듯합니다. 격동의 근대사가 올 해 지방선거를 정점으로 새롭게 펼쳐질 것입니다. 이명박정부의 반민주성, 반인권성, 반환경성을 탓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정당의 비정상적인 구조로 인해 시민들이 배제된 정치는 커다란 저항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조그마한 파열구를 내고 시민이라는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것이 시민정치운동입니다. 그것으로부터 희망을 주는 정치는 시작됩니다. 보다 더 민주적이고, 보다 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시민들 스스로의 우직한 행동이 새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운동이 중심에 설 것입니다. 새 역사를 위해 시민들의 마음을 크게 모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책임 있게 나서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더 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새로운 일꾼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 호혜의 정치, 희망의 지역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 그 모든 것은 시민참여정치 원년에 이뤄야 할 것들입니다. 시민참여정치 원년은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홀대받은 시민들이 다시 그 중심에 서고자 하는 일이기에 시민운동이 중심에 설 것입니다. 제한된 주권이 아니라 온전한 시민주권시대를 위한 대장정을 시민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당하게 시민참여정치의 광장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들도 늘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2010년 1월 5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부추실 참석회원 명단 박흥식 상임공동대표, 강석현 공동대표, 김성예 시민감시단 부단장, 한봉순 시민감시단원, 김기윤 시민감시단원입니다.
    201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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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을 소경영 협업화를 통한 대경영을 실현하자
    새날희망연대 "대북 쌀지원은 농민을 살리는 길"이다. 새날희망연대는 한국의 민주주의 신장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하기위해 한국의 시민사회 원로들이 결성하고 매월 내부 정기포럼을 하여 왔다. 2008년 10월 4일 첫 모임을 시작으로 제14차 포럼 북한의 분배규명성이 확보된 인도적 지원사업 협의차 평양일원과 묘향산을 방북한 조국평화통일 불교협회 회장 법타 스님의 “2009 북한방문기와 북한의 종교”라는 주제의 발제 토론이 있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또한 “명성왕후 살상 방화 소실 사건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와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반환 서한문을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게 일본대사관 야마다 정치참사관을 통하여 전달 하였다.고 말했다. ▲ 지난달 주한 일본대사를 통하여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게 보낸 서한문 ©편집부 이날 참석한 인사들은 임재경 전한겨레 부사장, 박재승 전변협회장, 박형규 평화재단 이사장, 함세웅신부,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 정동익 동아투위위원장, 최천택 한신대명예교수, 소설가 조정래, 김원웅 전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장, 이장희 전외국어대 부총장 등 각 시민단체 대표 100여명으로 구성되고, 50여명의 공동대표단이 참여하여 12월5일 제15차 포럼으로 “한국농업 현황과 과제” 주제로 김병태(한국농정신문 상임고문)발제로 토론회를 하였다. 발제에 나선 김병태 농정신문 상임고문은 1.한국농업현황, 2.세계농업동향, 3.한국농업의 과제에 대하여 말했다. 김병태 선생은 농업가구수가 2008년 총 가구비 중 7.3%, 농가인구는 총인구비중 6.6%로 그중에서 65세이상이 33.3%로 노령화로 인한 식량자급생산에 비상등이 켜져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상남도는 2008년 기준으로 농가 1인당 소득 2500만원, 부채가 2600만원으로 농민들이 어떻게 생명을 부지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새날희망연대 공동대표 김병태 건국대명예교수의 한국농업경제론발제© 편집부 더 나아가 1950년 농지개혁으로 분배된 농지보다 많은 대다수의 농지가 소작지로 변하였고, 농민들은 심각한 농약중독 등 농민 직업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식량자급률은 27%로 식량이 무기화가 되고 있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말했다. 특히 대북 쌀 지원의 중단으로 쌀값의 폭락, 빚더미에 허덕이는 농업인을 이중으로 죽이고 북한 동포들의 아사 상태를 수수방관 한다.고 말했다. 또 MB의 4대강사업으로 절대농지가 상당부분 줄어 들어 유사시 식량을 생산 할 수 있는 경작지를 시멘트로 포장하여 식량자급율 뿐만 아니라 시멘트를 부수고 재 공사를 해야 하는, 이중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계농업동향에서 곡물가격의 폭등세가 지속되면서 선진국도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농업을 위한 대책을 FTA와 관계없이 식량자급대책을 세운다고 말하고, 한국농업과제로 “소농경제의 발전적 해체를 통한 한국농업 발전모델” 소경영의 협업화를 통한 대경영의 실현으로 한국농업과 농민, 농촌을 살려내자고 한 “한국농업경제론”과 맥을 같이하는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오스트롬이 밝힌 “공동체 중심의 자치제도를 통한 협력체계”가 유용하다고 말하면서 이 논리로 남북농업발전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토론에서 최천택 한신대 명예교수는 식량의 무기화가 노골화 되고, 식량이 부족하여 73% 곡물을 수입하고 쌀은 가격폭락으로 농업이 빈사 상태인데 국가식량안보 측면으로 볼 때 유사시 최소의 식량자급률은 얼마이어야 하는지를 질문하였다. 발제자 김병태 고문은 2차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93%를 정하였다. 지금은 평화시 이기에 더욱더 식량자급율은 100%를 기준으로 농업정책을 펴나가야 유사시 비축분으로 대비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 새날희망연대 김재영,김병태, 정동익, 이장희, 이남수, 최천택 ,채의진선생님등 사회 원로 조직이다. © 편집부 이날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에서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의하여 국회의원, 공직자,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차단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공동 실천을 요구 한다고 박흥식대표는 말했다. 한편 이장희 박사는 12월 8일 보스워즈특사의 북한방문 이후 북미평화협정이 가시화 될 경우를 대비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외교 등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제기를 차기포럼 전이라도 준비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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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세대를 위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성 명 서 대한국민의 헌법을 기망하는 대통령 이하 국회의원 및 국가 공무원등은 국민이 낸 세금을 사용할 수 없으며, 형법에 의하여 가중처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 의하여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민주국가는 국민의 사유 재산권 등을 중심으로 하는 기본권을 보장하고, 경제적 정의는 자유기업을 통해서 자유인에 의하여 최선으로 달성되며, 정치는 헌법에 기반을 두며 인간의 자의로 행해질 수 없으며, 국민의 권리와 사유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법 집행도 법률에 의거하여 행해져야 한다는 법치주의를 말한다. 특히, 헌법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령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써 국회의 조직 ․ 의사 기타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서 국회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헌법과 국회법을 준수하겠다는 맹세로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하였다. 또한, 입법부 공무원들은 공직자로서 긍지와 보람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신명을 바칠 것을 다짐하면서 다섯가지의 직무에 대하여 끝까지 국가와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는 서약으로 선서를 하였다. 그런데,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2008년 5월 25일자로 국회의사당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선서를 하였음에도 국민들이 헌법 제26조제1항과 청원법 제4조제1호, 제2호 및 국회법 제123조제1항의 규정에 따라 접수한 청원에 대하여 헌법 제26조제2항과 청원법 제9조제1항, 제2항, 제3항 및 국회법 제125조의 규정에 의한 국회청원심사규칙 제7조, 제8조의 규정에 의거 접수된 청원안을 90일 이내에 심사․의결해야 함에도 이를 위반함으로서 국민이 소를 제기하면, 국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무원을 소송수행자로 보내어 사기소송으로 판결한 대법원의 판례(1990. 5. 25. 선고 90누1458호[청원심사결과위법확인]의 판결)를 첨부한 답변서를 제출하여 신성한 법정에서 “헌법 제26조제1항의 규정인 청원권은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하여 어떤사항에 관한 의견이나 희망을 진술할 권리로서 단순히 그 사항에 대한 국가기관의 선처를 촉구하는데 불과한 것으로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라는 거짓진술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정형식 재판장)는 2009구합3279 부작위위법확인등 원고의 청구에 대해 판결에서 청원법 제3항의 규정(청원을 관장하는 기관은 부득이한 사유로 제2항의 처리기간 내에 청원을 처리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60일의 범의 내에서 1회에 한하여 그 처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사유와 처리예정기한을 지체없이 청원인에게 통지하여야 한다.)을 누락시키고, 또한 국회법 제123조제1항의 규정(국회에 청원하려고 하는 자는 의원의 소개를 얻어 청원서를 제출하여야 한다.)에 따라 접수한 청원에 대해 피고가 90일 이내에 심사․의결하지 아니한 부작위에 관하여 각하로 판결하기 위해서 “원고에게 국회를 상대로 90일 이내에 원고가 제출한 청원에 대하여 처리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법규상 신청권이 있다고 할 수 없고, 그 밖에 조리상으로도 그와 같은 신청권이 있다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원고에게 청구취지와 같은 부작위 위법확인을 구할 당사자 적격을 인정할 수 없다.” 라는 허위사실의 판결을 작성하여 원고에게 송달하고 법원에 비치하므로서 위조공문서를 행사하도록 교사하였다. 위와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원심 재판부를 고발할 수도 있지만, 본 사건을 발생하게 한 국회의원들을 먼저 처벌해야 만이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에 부추실에서는 2009년 8월 28일자로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사무총장과 정무위원회 국회의원 및 입법공무원등 30명을 대검찰청에 고발하였으나, 대검찰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30명을 고발한 사건으로서 법을 위반한 경우는 철저하게 수사를 하겠다는 말을 하였음에도 국회의원들에게 출석요구서조차 송부하지 않는 검찰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26조제1항과 청원법 제4조제1호,제2호의 법은 억울한 국민의 마지막 보루인 청원권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대법원은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을 찬탈하기 위하여 이미 헌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판례를 만들어 놓고서 이를 사용하는 현 이명박 정부의 제18대 국회와 대법원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을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국민은 세금을 납부하여야 하며, 군에도 입대해야 한다는 현행 법률은 위헌일 뿐만아니라, 국민의 주권까지 박탈하는 대한민국은 법치국가 라고 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제18대 국회는 국회에 입성한 지가 이미 1년 7개월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접수한 법률안과 청원안에 대하여 각 상임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에서는 단 한건도 심사․의결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국회의장에게 심사보고를 한 사실이 전혀 없는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받아야 할 청원사건은 60년 동안에 단 한건도 국회의사당 본 회의에서 통과된 사실이 없다. 위와같이 부작위 한 직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공직사회의 범죄는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하며, 뿐만아니라 제18대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청원에 대하여 현재까지 심사․의결을 않하는 직무유기에 대하여 국민과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검찰에 고발해야하며, 검찰에서는 형법에 의하여 기소를 해야 하고, 법원에서는 형법에 의한 구형을 선고할 때 만이 선진국가에 진입을 할 수 있으므로 오로지 국민과 시민단체들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 국민과 시민단체가 단합하여 공직자의 범죄는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은 만들고, 악법은 패지하면서 부정부패한 공직자를 고발할 수 있는 국민연대를 발족할 것을 제안하는 바 이다. 2009년 12월 일 (가칭)부패한공직자를고발하는국민연대 협력단체 : 광복회, 독립유공자유족회, 한국NGO연합,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대종교, 천도교, 기독교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평화통일연대,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연대,
    20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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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독립운동선영합동추모대전
    ☆☆ 독립유공자유족회 주최 ☆☆ 99주년 국치일 기념행사 2009.8.29 기념식 책자 한일합병조약원본 기념식 전경 참석하신 내빈 여성유족들 내빈들 ↑사진을 클맄하시면 큰 사진으로 볼수 있습니다. 경찰악대 헌시/ 신다회 진혼무/시립무용단(임미조 단장) 庚 戌 國 恥 日“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은 1910년 8월22일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맺어진 합병조약 이다.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 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이 조약으로 멸망하게 되었고 우리는 1910년(경술년)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고 한다 ☆.오늘 제99주기 국치일을 맞이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독립운동선열을 추모하면서 지엄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귀한 시간이 되어 온 국민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민족이 화합하는 계기를 만들어 우리민족이 이룩하지 않고는 결코 바로설 수 없는 통일의 길로 나가는 지혜를 얻고자하는 염원으로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 독립유공자유족회 행사취지문에서 ◁ 압록강행진곡(독립군가) 가져온 곳 : 카페 >효사랑방 | 글쓴이 : 수수꽃다리| 원글보기
    200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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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마지막 청원권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법원과 국회는 해산하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36년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노예보다도 못한 식민지의 삶을 살다가 해방된 광복 64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또한 전국의 민족중흥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활동하시는 여러 종교단체 및 시민단체의 대표들께서는 오늘을 시점으로 일제 강점기에서 나라를 찾고자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서거하신 순국선열들에 대한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계승의 날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선․후배님과 동지여러분, 현재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진국가로 진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오히려 역행되고 있어서 여러 애국 시민단체들이 시국선언을 하였는데도 현 정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그 방안을 내놔야 함에도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위법행위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등 반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된 이유는 지난 36년간 일본의 강점기에서도 민족을 배반한 자들을 극형에 처해야 하는데도 이를 우리나라만 처벌하지 않은 때문에 그 후손들은 국민의 권리인 헌법과 현행법까지 무용지물로 이미 만들어 놓고 횡행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국민들의 마지막 보류인 헌법 제26조 제1항의 청원권(청원은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하여 어떤 사항에 관한 의견이나 희망을 진술할 권리로서 단순히 그 사항에 대한 국가기관의 선처를 촉구하는데 불과한 것이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고, 국가나 공무원의 부작위에 대하여 경찰, 검찰에 범죄를 신고하여도 무혐의로 결정하고, 행정심판 청구 및 민․형사의 소송까지 증거가 명백하여도 법대로 적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서만 판결하여 사법피해가 속출하여 억울한 국민만을 양상하고 있는 관계로 돈이 없으면 노예(노숙자)로 전락되어 삶의 희망도 없이 살아가다가 자살하는 저질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본인이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http://buchusil.org)를 창립하여 운동하는 이유도 어쩌면 나만의 일인가요? 아니면 누구나가 갑짜기 발생할 수 있는 부도처리 사건이 본인에게도 발생된 것입니다. 지난 1991년 2월 26일 저는 만능기계(주)의 대표로서 발명한 보일러를 만들기 위해 공장을 건설하던중 아무런 잘못이 없었는데도 거래하던 제일은행 상주지점에서 정책자금(년 7.5%중 수수료 1.5%임)에 대한 커미션을 거절하였다는 보복으로 불법 부도처리를 한 후 대출원리금을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회수(년 19%로 이자를 적용 함)를 하므로서 신축한 보일러공장(대지 2,100평과 건물 700평)을 돌려보지도 못하고 경매를 당하여 2억원 상당의 손실금을 발생시켜 놓고, 그 손실금을 본인에게 전가하여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그 불법 부도처리를 밝히는데만 8년이 걸렸는데도 다시 사법부의 비리로 현재는 7억원의 채무자가 되어 사법부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10년 전부터 국회에 청원을 접수한 것인데도 아직까지도 심사․의결을 아니하고 있습니다. 본 사건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 1월 6일 오전7시32분 SBS 서울방송의 “출발 서울의 아침”프로에서 “꺽기와 커미션”으로 부도처리된 중소기업으로 보도되었고, 같은 해 6월 14일 한국경제신문 1면, 월요사설에 “두 기업인의 편지”라는 제목에서도 제일은행의 꺽기된 저축예금의 통장 1매를 만들지 않고 이를 반환하지 않아서 부도처리된 후 국가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였지만 모두 기각처분하여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에 제기하는데 누가 그를 구할 것인가? 라는 내용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러자, 김영삼 정부의 민정비서실에서는 민원과장이 1993년 6월 18일 은행감독원의 조재호 과장과 제일은행 류춘덕 차장 및 박사장을 청와대 민원실로 출석시켜 사건의 진상(꺽기한 저축예금 통장 1매와 부도처리후 결재한 어음7매에 대한 반환요청)을 조사한 후 사건을 해결 하여 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며칠후 전화했더니 골치아픈 사건이니 사법적으로 해결하라는 말뿐이기에 1993년 9월 3일 경실련에 찾아가서 위와같은 사실을 고발하게 되었습니다. 경실련은 사건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제일은행 상주지점이 1991년 2월 26일경 박 대표가 운영하던 만능기계(주)의 어음을 고의로 부도처리하고 예금을 동결시킨 후 연 19% 과다 이자로 부당이득을 취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검토보고서를 작성하여 1994년 7월 27일경 재무부장관에게 금융분쟁조정 기각결정에 대해 재조정을 신청하고, 시민의 신문에 보도하자, 1994년 8월 11일 KBS 9시 뉴스에서는 "꺽기와 커미션"으로 취재후 방송하고, 같은해 8월 31일 중앙일보에서는 "이제 할 말은 하자"라는 제목으로 본 사건을 보도하였으나, 재무부에서는 본 사건에 대해 1994년 9월 10일자로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장에게 만능기계(주) 부도처리 관련 금융분쟁 재조정 협조공문과 재심이유서를 경실련과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에 각 이송하여 구제조치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은 재조정 신청의 사건(금분조 9447)에 대하여 1994년 12월 19일 재심의하여 각하로 결정하기 위해서 새로운 증거(재심이유)가 없는 것으로 허위사실로 부의서를 작성한 후 경실련과 시민의신문 및 KBS 9시 뉴스 이윤성 앵커 및 중앙일보 등(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92년 대선자금을 한보(주)에서 후원을 받았는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제일은행에서 한보(주)에 공적자금 3조5천억원을 대출함)을 모두 회유한 다음에 오히려, 본인이 경실련과 KBS뉴스 및 중앙일보등에 허위사실의 보도자료를 제공하여 제일은행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동부지방검찰청에 고소를 접수하였으나, 검찰에서 사건이 불리해지자 고소를 취하(95형제56168호 명예훼손)한 사건까지 발생한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95년도 설립된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사건을 접수하자, 국민고충위에서는 본인과 김금순이 제일은행과 거래한 "저축예금 통장 1매와 부도처리후 결재한 어음7매"에 대한 거래자료를 은행감독원에 청구하자, 동 은행감독원은 자신들의 부작위를 은폐하기 위해서 제일은행을 교사하여 본인을 상대로 대여금 청구의 소(사기소송)를 5월 26일자로 제기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어절수가 없어서 빗을 내어 민변출신 박연철 변호사를 선임하여 부당이득금(과다이자금)의 반환으로 반소를 제기하여 1심에서 승소하도록 변론이 종결했음에도 오승종 판사는 선고기일에서 선고를 연기한 후 연기된 선고기일에서 변론재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변론재개에 대한 통지도 없이 패소한 판결(일명 도둑재판)을 받자마자, 화가치밀어서 졸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악물고 항소심에서 죽을 고생으로 민사소송법을 공부하여 '98년 11월 24일자로 의제자백(피고에 대한 부도일자와 통장, 계좌, 잔고증명 및 거래정지처분에 대한 경위를 진술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명령했으나, 자료를 제출하지 못함)으로 승소하였으며, 제일은행이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999년 4월 13일자로 상고가 기각되어 확정되었는데도 금융감독원은 제일은행이 예금을 꺽기하여 통장을 만들지 않고 유용하다가 이를 거절하여 불법 부도처리하고, 예금을 동결시킨후 연19%이자로 상계하여 부당이득(형법 349조)을 편취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위법하지 않다면서 시정명령(원상회복)과 고발조치를 아니하므로서 1998년 10월 3일자로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를 창립하고 2000. 11. 8. 오후 3시 제일은행 앞에서 부도처리로 인한 원상 회복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자 내일신문에서 11월 10일자에 "부도 내몰린 중소기업 사장의 외로운 싸움"의 제목으로 보도한 바 입습니다. 그런데, 제17대 국회에서 청원이 계류중에 본인이 민주평통의장(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제출하였는데, 2005년 3월 5일경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자치부 민원보고대회에서 제17대 국회나 국무회의에서 본 사건을 심사하도록 세계일보 등에 보도하므로서 국회의 정무위원회 청원심사소위에서는 금융감독원의 부작위 및 직무유기에 대해 청원인과 합의를 보라고 구두로 의결하여 박대표는 금감원에 합의금 10억을 요구했으나 금융감독원과 제일은행은 빗도 값지 못하는 7,000만원을 제시하여 거절하였는데도 이에 대해 마냥 바라만 보고 있는 국회나 정무위원회는 직무유기가 명백한 것입니다. 본인이 18년간 입은 빚과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주어도 모자를 판에 10억원 이상의 빚을 7000만원에 합의를 할 수가 없으므로 국회에서는 피해를 조사하여 금액을 결정하거나, 아니면 국가가 정신적과 물질적 피해를 보상하라는 심사․의결을 해주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이 사건 청원인을 10년 전에 15대, 16대, 17대 국회에 청원하면서 심사 의결을 기다렸으나 제17대 국회에서도 본 청원에 대한 심사를 끝낼수가 없다는 담당조사관의 말을 듣고는 이에, 대한 촉구로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하자 "내기업 살려내라" 라는 제목으로 대한방송 등 각 언론사 (경기신문, 매일경기, 시민일보, 일간경기, 현대일보, 오늘신문, 수도권일보, 시대일보, 헤드라인뉴스)에서 보도를 한 경우는 국가의 사정기관에서 형사소송법 제234조제2조의 규정에 의거 진상을 조사하여 헌법상 규정에 의한 구조조치를 해야 함에도 핑퐁식 행정으로 대통령 소속인 국민고충처리위는 감사원으로 이송하고, 감사원은 다시 금융감독원 감사실로 이송하여 직무를 유기하였습니다. 이에, 고발인①과 회원들이 감사원장에게 이송된 사건을 철회하여 직적 감사를 직접하라는 항의의 집회를 1개월간 하던중에 2007년 8월 29일경 감사원 정문에서 근무하는 공익요원이 길을 막으면서 민원실을 못가게 시비하여 결국에는 감사원 현관에 “오물을 투척”하였을 뿐인데도 검찰은 고발인①의 억울한 부도처리 사건은 일체 조사하지도 않고,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므로서 국선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하였으나, 백현 국선변호사의 부실한 변론으로 벌금(200만원)형을 받게되어 대법원까지 상고하였는데 기각되자 마자, 2008년 12월 15일 오후 12시 25분경 KBS 12시 뉴스를 비롯한 YTN, 매일경제, 투데이코리아, 광남일보, 파이낸설뉴스, 경인방송, 스포츠조선, 세계일보 등에서 일방적으로 보도하도록 공권력까지 행사하여 인권을 침해하였습니다. 따라서, 서울행정법원에 청원심사이행등 소를 제기하였으나, 행정법원은 제17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된 이유로 소의 이익이 없다면서 각하로 판결하여 박대표는 제18대 국회의 문학진 의원과 이종걸 의원의 소개를 얻어서 청원을 접수하였으며,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2008년도 국정감사에서 서면질의를 하였는데도 국회법과 청원법에 의거 90일 이내에 심사 의결을 아니하는 것은 직무유기가 명백한 것입니다. 본 청원을 심사 의결하지 않는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압력을 행사하는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법을 집행하는 법관이 권력없고 힘이없는 자들만 패소로 판결하여 돈이 없는 가난한 국민의 권리를 박탈한다면 법치의 민주국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대법원에서 부도처리가 위법한 것으로 밝혀젔음에도 국회와 한나라당 최고위원 공성진 의원이 금융감독원의 부작위[꺽기한 예금통장 1매반환 및 부도처리후 결재한 어음7매 반환]한 허위 공문서 작성등 동행사한 범죄를 보호하기 위해서 청원에 대한 심사 의결을 계속 미루면서 국민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헌법과 청원법, 국회법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직권을 남용하는 직무유기가 명백하므로 고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제18대 국회와 한나라당 및 민주당 등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에, 부추실에서는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무위원회 국회의원을 모두 고발하기로 결의한 후 고발장을 완성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공동대표 및 동지여러분 본 사건은 저희 단체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닙니다. 전 국민의 인권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청원에 대한 심사․의결이 반드시 실행되어야 만이 국가기관과 사법부의 부작위에 대해 국가배상을 받을 수가 있으므로 제18대 국회의원들이 헌법과 국회법을 위반하는 것은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의하여 반드시 고발해야 만이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을 찾을 수 있으므로 광복절을 기념하는 날자에 뜻을 함께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8월 15일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상임대표 박흥식외 회원 일동 (참여하실 단체는 고발인 명부에 서명하여 팩스로 보내주시면 고맙겠니다.) man4707@naver.com / man4707@hanmail.net연락전화 : 02-586-8434, 8436, 8437 / 010-2358-9523 입니다
    200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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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운동단체연한 30여 단체 참석
    지난 2009년 7원 29일 오후 2시 부추실 박흥식 상임대표는 서울시역사박물관 강당에서 한민족운동단체의 30여 단체가 준비한 “가쓰라-테프트 밀약 104주년”을 규탄하는 민족자유역사대회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였다. 본 대회를 준비한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독립유공자유족회, 전국자연보호중앙회, 한반도시대포럼, 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 백범김구선생추모문화제준비위원회,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등 80단체의 대표들은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한민족운동단체연합 윤승길 사무총장의 사회로 개회선언, 국민의례, 내빈소개를 하였다. 이어서, 한국광복군동지회 김유길 명예회장의 대회사에서 『우리 민족에게 일제 치하의 세월은 결코 잊지 못 할, 잊어서는 안 될 고통과 치욕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식민 지배를 받게 된 역사적 경위와 요인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만년동안 단 한 번도 단절됨 없이 면면히 이어오던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가 미국과 일본이 은밀하게 맺은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었다는 것은 세상에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104년 전인 1905년 7월 29일, 당시 일본 외상 가쓰라와 미 육군 장관 테프트가 회동하여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으며, 극동의 평화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고히 하고, 미국은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을 승인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비밀협약을 맺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일본이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미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일제는 을사조약 체결을 강압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였습니다. 이로써 기나 긴 일제 식민지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7월 29일을 기억하는 것은, 간악한 외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게 된 우리 민족의 역사적 진실을 널리 알림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수모와 농락을 당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각오와 의지를 다지기 위함입니다. 간악한 일제의 사슬에서 광복된 지 64년이 되어오고 있건만 우리나라는 현재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씻을 수 없는 민족적 수치입니다. 1945년 조국광복의 함성은 우리로 하여금 하루라도 빨리 조국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앞당길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남․북․해외 8천만 동포는 6.15공동선언을 중심으로 단합하여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에 따라 반드시 통일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강대국의 압력이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강한 국가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것만이 104년 전 미국과 일본의 밀약에 의해 농락당한 수치와 망국의 아픔을 온전히 씻어 낼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민족은 단군 민족입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으로 21세기 강국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저력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민족애국지사 여러분이 외세의 지배와 간섭으로 얼룩진 지난 역사를 바로 잡고 당당한 민족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길에 적극 동참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대독 박정일 대표) 대회사를 선언하였다. 이어서, 각계 대표들은 인사말에서 오늘날 경제가 침제된 원인은 아직까지도 일본의 감점기에서 민족을 배반한 자들의 단죄를 처단하지 못한 원인을 토하는 등 대회장을 뜨겁게 달구면서 애국적인 규탄사를 한반도시대포럼 상임대표 도천수가 낭독을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04년 전 오늘, 제국주의의 대표주자 미국과 일본이 비밀리에 한 자리에 모여 필리핀과 조선의 지배를 서로 묵인하기로 하는 협약에 도장을 찍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를 우리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외상과 미국의 육군 장관 사이에서 이뤄진 이 협약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었고 결국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 했습니다. 돌이켜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픈, 참으로 치욕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이 사건을 곰곰이 돌이켜보고 곱씹어보면서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까지도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을 일삼는 일본의 책동을 보니 도저히 울분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오늘날까지도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버리지 못했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토주권은 민족의 자주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토주권을 침해하려는 일본의 행위는 침략의 야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는 것은 민족 구성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신성한 의무입니다. 하기에 일본의 강도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싸우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영토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며 나아가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침략책동을 분쇄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 104년, 광복 64년이 되도록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죄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민족의 앞길에 질곡이 되고 있습니다. 일제의 조선 강점이 없었다면 민족 분단도 없었을 것이며, 친일로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없었다면 굴종과 치욕의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이 사죄는커녕 한반도 재침 음모를 노골화하고 있는 이 때, 온 민족이 일본에 대항하여 싸우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 민족의 운명은 104년 전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것은 팔천만 겨레 모두의 단합된 의지입니다. 민족의 자주권을 옹호하기 위해 팔천만 겨레가 모두 떨쳐나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음모를 분쇄하고 민족의 정기를 되살립시다.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통한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책동 규탄한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 사죄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을 당장 중단하라! 미국은 일본을 비호하고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 일본의 한반도 재침 야욕과 동북아 패권 전략을 분쇄하자! 8천만 민족의 대단합으로 자주와 평화통일 이룩하자! 단기4342(2009)년 7월 29일 민족자주역사대회 참가자 일동
    200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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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한민족문화대학 설립추진에 동감
    한민족운동단체연합의 상임공동대표 도천수(한민족문화원 원장)와 박흥식 공동대표는 지난 7월 5일 오후 5시부터 인사동 문화한마당에서 한민족문화예술제를 개최하였다. 한민족문화원 도원장은 예술제를 여는 인사말에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만이 세계가 나아갈 길이다" 라고 강조하면서, 지금은 우리들은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으나, 다문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제 서세동점의 서양문명으로는 다문화시대를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동세서점 아닌 동세공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우리들은 첫째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이념이 세계가 지향해야 할 근본사상임을 알려야 하며, 홍익인간 이화세계야 말로 인류사회가 나나가야 할 길이며, 진정한 공동체사회이며 새로운 비전이다. 둘째는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재정립을 통하여 주변국가의 역사왜곡과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면서 우리들은 이러한 취지로 한민족문화예술제를 개최하고자 하는데 한민족문화예술제를 통하여 인류사회가 나아가야 할 홍익인간을 위한 문화공동체의 전형을 창출해 나가고자 한다며 소신을 말했다. 특별히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문화마당이 아니라 천부경 환단고기 등의 민족경전, 민중의술 등의 전통의학, 한민족의 찬란한여사, 단군문화 등의 체계적 교육을 위하여 가칭 한민족문화대학을 추진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을 하고자 하는 열린마당이므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마당을 통하여 우리 역사, 우리 문화, 우리 전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한겨례 한민족의 꿈과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한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함께 슬기를 모으고, 역량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널리 선포하고, 실현하는데 함께하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것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200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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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사회에 있어 언론의 자유는 기본이며 사회의 얼굴...
    민주사회에 있어 언론의 자유는 기본이며 사회의 얼굴입니다. 언론의 영향력은 참으로 막대하기 때문에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반드시 독립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공기라면 언론의 자유는 산소와 같습니다. 87년 민주화 투쟁은 언론자유에서 비롯되어, 이 땅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시작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내용을 공고화 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언론의 자유는 참담하게도 무력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산소인 언론의 자유가 질식당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직접 나서서 언론사 대표의 퇴진을 강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권력의 언론협박 행위는 역사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청와대 권력이 언론사를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정치에 투신한 것도 권력에 장악된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서는 독재정권을 민주 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며 민주 시대의 핵심이고 대세입니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언론사 대표를 바꿔버린다면 도대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권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언론은 당연히 국민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언론사 대표를 교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국민의 언론이 아니라 권력의 언론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묻습니다. 언론을 무릎 꿇리는 5공시대로 돌아가잔 말입니까? 현직 언론인 시절 저는 수없이 많은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고민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지금 권력의 직접적인 외압 앞에 부딪힌 MBC를 바라보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적어도 언론만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닫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사람으로서 이런 사태에 직면할 때마다 무거운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고합니다.언론에 재갈을 물린 어떤 권력도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MBC를 장악하고 길들이려는 반민주적 퇴행적 시도는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2009년 6월 24일 국회의원 정 동 영
    200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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