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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실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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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정식적인 기사 보도를 안하는 피해 사례
    http://www.civilnet.net/xe/index.php?mid=board_free&document_srl=31161 시민단체의 끝과 시작, 온 국민과 함께하는 희망의 한판승!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박흥식 대표 (주)만능기계 오너로서 보일러계 관련 특허6개 및 신기술고시등록으로 발명의 날 상공부장관 공로표창 수상등의 박 대표는 1990년 경북 상주군에 대규모 보일러 공장을 신축하던 해 제일은행 상주 지점에서 어음을 결제할 당시 제일은행에 ‘91.2.12. 꺾기 한 저축예금(금감원과 제일은행은 2,520만원짜리 통장 1매와 부도처리후 결재한 어음 7매를 반환하지 않고 있다)잔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측의 고의 부도로 회사 문을 닫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사실이 대법원에 의해 “부도처리가 잘못되었음”이라는 원심판결이 1999년 확정됐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일은행과 기술신용보증기금에 대해 (주)만능기계의 부도처리 및 경매로 인한 피해를 원상회복하라는 시정조치와 고발을 안하고 있다. 박 대표는 대통령 이하 서울시장과 담당공무원은 국민이 법으로부터 소외를 당하여 억울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기초생활지원과 억울한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 주기를 청원했다. 국가공무원이 국민을 상대로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여 신성한 법정에서 사기소송까지 하는 범죄등은 공소시효배제등 법령을 개정해 주기바라며, 18대 국회가 채택한 ‘금융분쟁조정기관의 부작위에 따른 피해보상에 관한 청원’을 하고 지난 2010년 7월 국회에서 ‘법 소외 극복을 위한 대안마련 토론회’를 개최한 후 민원을 접수했다, 청원심사 결과 통지를 안한 ‘인권침해 및 차별대우’에 대해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으나, 동 위원회는 국회를 상대로 “부작위위법확인”등 행정소송을 했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이에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처분취소 소송을 했는데 행정법원은 위원장을 상대로 하는 피고의 적격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진정할 당시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해 법원의 재판이 종결된 경우에 해당함’이라는 위헌성 판결에 대해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국가인권위원회진정기각등처분무효확인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까지 신청하여 귀추가 주목된다.
    20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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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감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좀 더 객관적인 시각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초빙교수 신분으로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커질 전망이다문 후보자는 올해 3월부터 서울대에서 '저널리즘의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했다.그런데 문 후보자가 중간고사가 진행될 때인 올해 4월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굳이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문 후보자의 수업을 들은 서울대 학생 A씨는 "문 교수님이 '우리나라는 예전과는 다르게 선진국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굳이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일 정도로 나약하지 않은 국가가 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A씨는 또 "당시 강의에서 문 교수님은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언론인이다'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반일감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국제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벌언도 나왔다.문 후보자의 편향된 역사 의식은 지난 2005년 3월 7일 쓴 '나라의 위신을 지켜라'란 제목의 칼럼에서도 드러난다.당시 3·1절을 맞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를 언급하며 배상문제를 거론한 것을 놓고 문 후보자는 "위안부 배상문제는 이미 40년 전에 끝났다"며 "끝난 배상문제는 더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당당한 외교"라고 비판했다.또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다"라고 썼다.이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일본의 태도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며 적극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현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UNHRC) 연설을 통해 우리 외교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직접 제기하기도 했다.문 후보자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용서라는 게 공식 사죄를 하고 인정을 해야 용서를 하는 거 아니냐"며 "일본에서 아무런 사죄나 인정을 안 하고 오히려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문 후보자는 또 3년 전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 특강에서도 "일제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는 등 편향된 역사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문창극 후보자 측은 CBS노컷뉴스의 확인 요청에 "모든 것은 인사청문회에서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sdjinny@cbs.co.kr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 국무총리 자격없어 항의] http://www.youtube.com/watch?v=IJSS0MZnols&feature=youtu.be 이하 강의전문.◇문창극 후보자=제가 이렇게 강단에 설 자격이 없다. 여기는 다 목사님이 서야 하고 하는데 저한테 전화가 왔다. (중략) 나라를 위해서 뭐를 기도해야 하느냐, 기도하는 제목을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다, 부탁을 받았다. 다음 주에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걸로 아는데 제가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길을… (중략) 나라를 위해서 왜 기도를 해야 하느냐. 우리는 각자 개인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지요.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를 한다. 왜 기도를 하느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알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서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걸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가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나라라는 것은 뭡니까. 저는 비행기 어떤 때 타면 3등칸을 주로 타지만 가끔 어떤 기회가 있어서 2등칸을 타게 되면 또 굉장히 대우가 다르더라고요. 1등칸을 다르면 아마 더 대우가 달라지겠지요.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3등 나라에 3등칸에 있는 손님이 되고 1등칸에 타면 1등칸에 탄 승객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1등칸에 타면 서비스도 훨씬 좋고 편하고 얼마나 안락합니까. 우리가 1등의 나라를 만일 만든다면은 1등의 나라 안에서 저희들은 개개인의 삶의 고통과 개개인의 삶의 고민을 3등 나라보다는 우리가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가 복받은 나라가 돼야 한다는 기도를 우리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한국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켜가지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무엇에 쓰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먼저 기도의 방향이 될 것 같다. 그 뜻을 알아야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겠나.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그런데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런 것을 어렴풋이나마 우리가 알 수 있을 겁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은 그럼 대한민국에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거를 저 나름대로 한 번 찾아보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우리는 1890년 그 때가 처음 선교사님들이 이 나라에 오신 때입니다. 1890년 그 이전에, 이조 말기, 고종 때, 그 이전에는 사실상 선교사님들이 아주 가끔 왔찌만 당시 조선에 상륙을 못했다. 배를 타고 있다 돌아가고, 쇄국정책 때문에. 1890년에 선교사님들이 오시게 되시면서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189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됐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제목을 놓고 제가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란가. 저는 가만히 돌이켜보면 고비고비 마다 구비구비 마다 하나님의 뜻의 분명히 있었다 라는 것을 저는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 민족한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신 것이다. 또 고난을 주신 다음에 또 하나님은 우리한테 길을 열어주셨어요.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중요 고비마다. 그러면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라는 것은 지금까지 구비구비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됐다. 그 기회가 돼가지고 지금 이 나라가 왔다.먼저 조선말의 풍경을 하나 말씀드리겠다. 제가 책을 찾아가지고 조선말의 풍경에 대해서 한 두 가지만 먼저 알려드리겠다. 1832년에 영국 상선 암허스토호 배가 우리나라 몽금포, 저 황해도 서해에 왔다. 그 때 거기에 선교사가 동승을 했다.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다. 1832년이까 순조 31년이다. 퀴츨 라프이다. 이 사람을 조선을 어떻게 봤냐. 자기가 북경에 가서 보고서를 냈는데, 조선에 대한 현실을 이렇게 썼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 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피부는 어김없이 때로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달씩 씻지 않아서 이 따위의 해충이 득실댔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해충을 잡아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이 1832년이 선교사님이 우리나라 서해 몽금포에 와서 북경에 자기네 선교본부에 보고한 조선말의 상황이다.그 다음에 30년 뒤에 1874년에 달레 신부라는 분이 왔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이다. 한국에 와서 한국을 삭 보고나서 ‘꼬레의 교회 역사’, ‘코리아의 교회 역사’사를 썼다. 거기에 1874년의 조선의 상황을 제가 또 읽어드리겠다. 창고에 저장은 장부상에만 있다. 지방 병기고에는 쓸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먹고 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 나부랭이를 대신 갖다 놨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만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밀수업자에게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다. 길 마다 송장이 널려 있다. 이것이 1874년 달래신부?가 본 한국의 현상입니다.그다음에 1890년대에 또 한 분이 왔어요. 이 분이 비솝여사라고 영국 분인데 이 분은 책으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비솝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다 샅샅이 들여다 봤어요. 이 사람은 부산에서부터 저 신의주, 강개? 넘어가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던 분이에요. 그래서 책을 한 권 냈는데 이 사람이 부산에 와 보니까 한국이라면서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그 하수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나라고 자기가 놀란 것은 그 당시 일본인들이 거처하는 동래라고 있습니다. 부산 동래가 옛날에는 일본인들이 거기에 거처했었습니다. 동래를 가보니까 동래현에는 그렇게 깨끗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야, 일본은 이렇게 일본인 사는 지역은 이렇게 깨끗한데 어떻게 한국사람들이 사는 이 부산진?에는 이렇게 더러우냐 . 놀라서 썼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서울에 와서 서울구경을 또 했습니다. 서울도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풀풀 나서 다닐 수가 없는 정도로 서울이 그 당시 더러웠습니다. 그게 언제냐. 지금부터 100년 전 일입니다. 100년 전 한국이 그런 나라였습니다.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서 영월까지 갔어요. 영월까지 배를 타고 갔는데 그 당시 서양여자라는 건 보기가 힘들었잖아요. 중간중간 내려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서양 여자귀신이 왔다 그래서 구경을 하려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빈대, 이같은 것 때문에 잘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동네 사람들이 문을 전부 다 구멍을 뚫어서 문을 보느라고, 다 보느라고 눈이 그러니까 창호지에 눈이 몇 십 개가 이렇게 있는 거죠. 사람이 하도 밀려서 그 문이 이렇게 완전히 방 안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이 사람이 한국여행을 했는데 양평을 갔습니다. 옛날에 군수가 있고 그랬는데. 거기 가서 아까 읽어드린 것처럼 그 군 사정을 알아봤는데 그 조그만 군에 이방 이런 것 있잖아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렇게 볼기치는. 이런 이방 사람들이 800명이나 있다는 거야. 이 조그만 군에 이방이 800명씩이나 되면 그 사람을 누가 다 먹여살립니까? 다 백성들이 먹여살리는 거야. 그 백성들이 집에 뭘 가지고 있는지 이방들은 다 안대요. 이 사람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장 담그는 독이 몇 개. 아주 낱낱이 잘 알고 있대, 이방들이. 그리고 이방들이 그 집에 조금 뭐가 생기잖아요. 농사 열심히 지어서 뭐가 좀 생기면 그 이방이 부른다는 거야. 불러서 그냥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거예요. 곤장을 쳐, 왜 치느냐. 자기는 모르겠다는 거야, 왜 치는지. 그런데 이방이 하는 얘기가 네 죄는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알렸단 말이야. 어떻게 이방이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아니까 고해라, 그래서 곤장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쌀이라도 한두 말 있으면 다 뺏긴다는 거야.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왜? 일을 하면 다 뺏기니까. 그러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암만 노력해봐야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세월은 가라, 이렇게 되어 있는 거야.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 가보고 평양을 지나서 대동강을 따라 올라가보고 조선 상황은 똑같았습니다.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그 당시 연해주, 지금 소련(러시아) 있는 데죠. 블라디보스톡 갔는데 당시 거기에도 한국에서 이민간 사람들이 북간도, 연해주에 그 때 이민을 많이 갔거든요. 거기를 둘러봤어요. 조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사냐. 그랬더니 연해주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 가보니까 깜짝 놀란거야.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그렇게 게으르고 그렇게 아주 그냥 하루 삼류민족,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민족이 연해주에 사는 조선민족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산다 이거예요. 이야, 조선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정말 놀랐다. 그러면 왜 연해주에 있는 조선인은 그렇고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나라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야.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라가 백성이 뭐만 생기면 볼기를 쳐서 뺏으니까 일을 안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나라를 떠나서 자기들끼리 모여사니까 그렇게 잘 사는 거야. 그래서 조선민족을 자기는 다시 봤다, 이런 얘기를 한 걸 제가 책을 읽었습니다.이것이 사실은 한국, 우리의 전신 조선의 말의 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조금 더 그 시절을 하면 1904년 고종이 그때 있었습니다. 민비도 그때, 민비는 죽었죠. 1895년에 을미사변인가요. 그걸 뭐라고 하죠. 민비시해사건, 우리가 민비를 지금은 무슨 굉장히 많이 높이잖아요. 민비에 대해서. 명성황후 이래가지고 오페라 같은 것도 있고 그러는데 그런데 그 당시 왕은 그럼 어땠느냐. 왕도 똑같았어요.그 당시에 윤치호라는 분이 일기를 쓴 게 있어요. 쭉. 그 사람은 스물 몇 살 때부터 죽을 때 까지 일기를 썼어요. 그게 우리 귀한 자료가 됐는데 그 사람은 전부 다 영어로 일기를 썼어, 그 당시에. 왜? 한국말로 쓰면 혹시 나중에 잘못되면 그것 가지고 누가 흉잡을까 봐 1890년대 영어로 전부 일기를 썼어요, 매일매일. 그런데 그 사람이 쓴 일기에 당시 고종과 민비에 대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얼마나 그 당시 왕궁에는 점쟁이, 무당, 내시, 이런 사람들만 버글버글 한 거예요. 1904년에 러일전쟁 일어나지 않습니까?러일전쟁 일어나면 자기가 왕이면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될 거냐, 조선은 이제 러시아에게 먹히는 거냐, 일본에게 먹히는 거냐 조선이 정신을 차려야겠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자기가 생각을 하고 당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니까 기도는 안 하더라도 지도자로서, 왕으로서 자기가 진짜 뭘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얘기를 들어 보면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을 하느라 바쁘다. 이걸 이 사람이 일기에 쓴 거예요. 우리 고종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능하고 그렇게 나약하고 그렇게 타락한 사람이었다, 이거예요. 민비라는 사람 똑같아요. 그 다음에 민비가 죽기 전에 이 사람 민비에 대해서 평을 하는데 영리하고 이기적인 이 여인은 미신을 섬기는 것의 반만큼 백성을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했을 것이다. 민비라는 사람도 백성을 섬기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고 전부 다 미신 섬기는 것. 지금 덕수궁 자리, 그리고 경기여고 자리가 경운궁이었거든요. 러시아에서 아관파천을 하고 경운궁으로 옮겼어요, 고종이. 1907년 이때 쯤에. 그런데 그 옮길 때 그 즈음 1900년대의 덕수궁과 경운궁, 지금 시청 부근이죠. 시청 부근에는 그렇게 점쟁이와 무당이 들끓었대요. 왕이 점쟁이와 무당을 좋아하니까 점쟁이하고 무당만 있는 거야. 백성들은 그 사람들 먹여살리느라고 세금 내야 되고. 이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어요. 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대신 뭐냐 있었느냐. 왕과 왕비, 세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이것이 민비의 자세였다, 이거예요.제가 책을 읽어보니까 그 당시 민비라는 사람 죽고 나서 또 고종이라는 또 엄비인가 그 사람들이 대신을 했는데 얼마나 나라에 대해서 무책임하느냐 하면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 먹어도 좋다.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우리 왕실, 그러니까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게 조건이었어요. 1910년 한일합방할 때의 가장 큰 조건, 이완용이 그 조건을 들고 일본하고 협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거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 나라가 없어 지는 거예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 지면 조선의 국왕이라는 것, 대신이라는 것 다 없어 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거야. 그리고 일본에게 나라, 조선을 너희들한테 바칠텐데 이 씨 왕조만 살려달라,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러면 나라를 다 너희들한테 갖다 바치겠다. 그래서 갖다 바친거예요, 사실.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 그런 나라에서 100년 전, 이게 오래된 나라가 아니에요.100년 전에 그런 나라였어요. 이런 나라에 들어 온 게 뭐였느냐.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 기독교가 들어 온 거야. 그 때 기독교가 들어 왔어요, 선교사를 통해서. 이승만 박사 전기 같은 것을 읽어보면 그런 게 잘 나타나 있어요.이승만 박사가 처음에는 이 사람은 그 당시 과거를 보려고 했어요. 과거를 보려다가 과거를 안 봤어요, 못 봤어. 과거를 안 보고 어렸을 때 눈병이 났는데 이 사람이 눈이 멀게 돼서 아무 것도 안 보여. 그래서 이승만 박사 그 어머니가 깜짝 놀랐어요. 이거 큰일났구나. 네가 외아들인데 네가 이렇게 눈이 벌면 봉사가 되겠구나. 그래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해보고 해도 안 낫는 거야. 그 이승만의 어머니가 큰일 난 거예요. 그런데 수소문을 해보니까 서양 선교사가 왔다는 거예요. 의사인데 그 양반, 그 분은 뭐든지 병을 잘 고친다더라. 그래서 이승만 데리고 서양 선교사에게 갔습니다. 의사에게. 그래서 서양선교사가 약을 발라주고 집에 가 있어 보라고. 그래서 가 봤어요. 며칠 지났어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승만이 이만한 애가 문을 열고 어머니, 내 엄마가 보여요.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네가 정말 내가 보이니? 네가 눈을 떴구나. 이승만 엄마가 그렇게 기뻐한 거야. 그래서 너무 너무 고마워서 이승만을 버리고 그 선교사에게 갔어요. 그냥 가지 않았잖아요. 그때 어머니 이런 분들 다 이렇게 계란 한 줄 이렇게 가지고 갔어요. 이승만 어머니도 계란 한 줄을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에게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 눈을 이렇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선교사에게 갖다주니까 선교사가 그거 계란은 당신 아들 먹이세요. 당신 아들이 눈이 먼 건 영양부족 때문에 그런 거예요. 계란은 당신 아들 갖다 먹이세요. 그렇게 해서 계란을 안 받았어요.그때 이승만이 깜짝 놀란거예요. 이야, 서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저 선교사라는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냐. 나는 과거를 봐서 썩어가는 나라를 고치려고 했는데 지금 과거볼 때가 아니구나. 이 선교사라는 건 뭐고 서양의 의술이라는 건 뭐냐. 완전히 머리가 180도달라졌어요. 그래서 과거를 다 때려치웠어요. 과거 공부도 때려치우고 이승만이 어디 들어 갔죠? 배제학당을 들어 갔어요. 배제학당 들어 가서 신학문을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무슨 독립협회니 이런 가입을 했잖아요. 그런데 23살 때 감옥에 들어 갔어요. 왜 들어 갔냐. 고종에 대한 반역죄, 이런 걸로 들어 갔는데 그래 가지고 1907년에 6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거예요. 그때 조선 은 이미 러일전쟁 일어났지 이미 조선은 일본에 먹히게 될 상황. 그래서 이 사람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썼어요. 감옥에서 29살 때. 지금 읽어봐도 아주 뛰어난 책이야. 그러니까 이승만이라는 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분이었던 것 같아, 젊었을 때. 제가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네가 쓰라고 해도 그것보다 못쓰겠어요. 29살 때, 100년 전 이승만이 그걸 썼어요. 썼는데 거기에 결론이 뭐였냐. 결론이 있어요. 그 결론이. 독립정신, 마지막 부분 결론입니다. 그걸 읽어드리겠습니다.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에서 일어나고 썩은 데에서 싹을 틔우고자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지 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 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건국 4237년 6월 23일. 이게 1904년에 쓴, 1904년에 이런 글을 쓴 거예요. 이 사람 결론이 뭐였느냐. 이승만이 20세 때의 결론이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되겠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서는 조선은 살아날 길이 없다. 이 사람이 결론을 내린 거예요. 결론을 그렇게 내렸어요. 이승만이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합방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가지고 일본이 차지하게 됐죠.그런데 그때도 그러면 왜 그럼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그런데 저는 아까 말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거예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이거예요. 우리가 지금 와서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핏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서 지금 이것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게, 지금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 기독교가 들어 온 반면, 그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것은 일제 시대 때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 걸 하나의 모토로 삼았습니다.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저는 어렸을 때, 요즘에는 찬송가에 그런 게 없어요. 찬송가, 그 당시 1930~40년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지금 우리 찬송가에 있습니까? 일하러 가세~ (노래 부름) 기독교가 뭡니까? 기독교가 우리 조선 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그걸 깨우쳐 준거야. 스콜필드 박사라는 분이 선교사였는데, 일제 때.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조선 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셨다고. 아마 양반들이 옛날 청나라 사람처럼 손톱을 안 깎은 모양이에요. 우리나라 양반들이.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시면서 너희들이 선택해라, 이렇게 하나님 말씀하셨다. 그런데 조선 민족은 애닳게도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긴손톱을 선택했다. 양반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민영익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비의 친척되죠. 일제 말에 굉장히 높은 벼슬도 하고. 이 사람은 일을, 물론 그때 양반들은 아무도 일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양반들이 일하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면 양반들은 뭐하느냐. 긴 담뱃대에다가 담배 피우고 그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앉아가지고 독경, 독경이 아니고 감독? 같은 걸 합니다. 그것만 하느냐. 그러면 또 이렇게 하여튼 게으른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거야. 그런 게으른 것을 우리 기독교 정신이 들어 와서 그걸 깨자고 한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당시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이 양반 자제겠죠. 일본 유학가서도 일을 하느냐. 일을 안 해. 조선 민족의 그 못된 관습 때문에. 일을 안 해. 일을 안 하고 뭐하느냐. 지금 제가 또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선 지식인이 어떤 거였나, 그 당시. 조선 유학생 90%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에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일 것이다. 이거 윤치호 일기에 나온 거예요.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일본 가서 유학했을 때 공학을 한다거나 의학을 한다거나 진짜로 우리가 이 나라가 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것 아닙니까? 과학을 한다거나. 그런 것 아무 것도 안 하는 거야. 사회학, 철학, 정치학 그거 뭐냐. 다 혓바닥 놀려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 그거야. 그게 우리 조선사람들 엘리트들의 생각이었어요.윤보선이라는 대통령 아시죠. 그 사람이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을 나왔습니다. 문학을 했어요. 그 사람은 집이 백 칸이 넘는, 백칸짜리 집이에요. 안국동에. 그런데 이 사람이 부자니까 영국가서 뭘 했느냐. 문학을 했어. 문학을 했는데 그 때 문학을 하면서 집에 다가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학비를 보내라고 했는데 800파운드, 그 당시 아마 한 학기하고 생활비하고 800파운드였던 모양이야. 아마 쌀이 100가마 이상 되겠죠. 그걸 이제 보내라고 한 거야. 그걸 보고 통탄을 하였네, 윤치호가.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서 그것도 영국 에든버러에 가서 문학을 하다니, 지금 우리나라가 당장 필요한 거는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떻게 해서 든지 국권을 회복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문학을 네가 선택하냐, 꾸짖는 편지를 쓴 게 있어요. 우리나라 그 당시 지식인들이 라는 게 다 똑같았어요.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또 버전업을 시켰느냐 하면, 이 윤치호라는 사람은. 조선유학생들이 일하기가 싫다, 이거야.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 좋아한다 이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윤치호라는 사람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는 거다, 체질상. 왜 그러냐.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자기 일 안 하려고 하잖아. 정부가 세금 내라고 해서 세금 내서 나니까 어떻게 해서 든지 놀자고 하는 게 공산주의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력과 땀으로 일해야 하는데 돈 번 사람들은 다 우리 것을 착취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 것 뺏어서 우리가 먹자. 그게 아주 심플하게 얘기하면 그거 아니겠어요? 조선의 과거 조상들의 그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는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조금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 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버전의 볼셰비즘, 공산주의죠. 공산주의는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 이조 말기에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게 아주 몸에 박혀 있었대요. 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가지고 변화를 시킨 거야. 제가 국립민속관인가요? 경복궁에 있는 것. 거기에서 재작년에 무슨 사진전이 있었어요.사진전을 가봤는데 그게 뭐냐 하면 북간도에 명동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거기에 한 100 몇 명이 처음 가서 정치학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학을 해서 자기들이 일궈 나갔느냐 하는 것을 그 후손이 사진을 전부 다 발견을 했어. 그래서 사진전을 연거야. 거기에 가보니까 그 당시 북간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정말 감명스럽더라고요. 이렇게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났는데 선교사님들, 거기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김약연?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한 120명 5가구를 끌고 가서 거기에서 교회를 만들었어요. 명동교회를 만들고 명동학교를 만들고 명동유년주일학교를 만들고 명신여학교를 만들고. 사진전을 했는데 이렇게 아까 이가 득실거리고 냄새가 나니까 조선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애들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전부 다 여학생들에게는 세라복을 입히고 실험실에는 전부 다 실험복을 입혀서 비커 이런 실험 기구들이 다 차 있고, 애들도 악패?를 만들어 가지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서 지휘복을 입혀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가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거기에서 잘 살았어요.우리가 게으른 가운데 기독교를 개종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기로 작정한 다음에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 민족들에게 보여줬나 하는 걸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그렇게 해서 일제 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어. 독립을 주셨으면 잘 살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36년을, 40년을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을 했는데 잘 살아야 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 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아까 얘기했죠. 조선 지식인들이라는 건 다 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때.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 당시 남한에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 그러니까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 여순반란 사건 같은 것 일으켰는데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위에는 다 소련이고 그 옆에는 다 중공이고, 그러면 우리가 거기에서 견뎌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를 분단시켰어요. 분단시킨 이유가 뭐냐. 그때는 안타깝고 이게 뭐냐, 도대체. 우리는 독립을 얻었는데 독립도 못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너희들은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앞으로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의 그 게으름, 죄 깨끗하게 안 된 거야. 분단을 시킨거예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분단이 됐기 때문에 한국이 이렇게, 이 정도 살게 된 거예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지금 몇 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우리 현실이에요.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되어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놔둬 주신 게 아니야. 하나님은 너희들은 안 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그래서 분단을 시켰어요.그것 뿐입니까? 6·25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이 6·25까지 주신 거야. 우리 생각에는 이야, 하나님 참 너무 하다, 이럴 수가 있냐. 어떻게 6·25를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6·25가 저는 이렇게 얘기하면 지가 죽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6·25를 또 저렇게 미화한다는.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 거예요, 6·25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그 당시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1949년에 애치슨 라인이라는 걸 만들어서 미국은 방호책임을 한국에서 제외한다. 일본하고 대만까지 만 미국이 방호책임을 진다. 그리고 1949년에 여기 남한에 있던 미군들은 다 철수 했어요. 철수하고 나니까 1950년 북쪽에서 쳐들어 온 거예요. 소련과 중국을 지원을 받아가지고. 그러면 그때 6·25 전쟁이라는 건 6·25전쟁이 그렇게 났으면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 밑에서 그 후원을 받은 북한에 우리 다 지금 다 흡수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안 되겠다, 너희들 붙잡아야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느냐. 미국을 못 가게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 딱 붙잡아 주셨어요. 미국이 6·25 사변이 끝나면서 우리하고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 그건 뭐냐.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면 미국이 침략을 당한 것처럼 도와주고 미국이 침략을 당하면 우리가 침략 당한 것처럼 또 미국을 도와준다. 우리가 무슨 미국을 도와줄 힘이 있습니까? 괜히 미국에 조약을 맺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그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까지 그 조약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지금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한국에 미군이 없는 한국을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반미, 제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미군이 없는 한국은 금방, 옛날에는 소련 밑에 가 있는 거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 거예요. 중국의 속국이 될 수 밖에 없어. 이미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거의 되어 있지 않습니까? 6·25를 왜 주셨느냐.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주신 거야.그다음에 경제발전 했습니다. 경제발전했는데 경제발전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물론 우리가 새마을 운동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뭐하고 다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진짜 하루에 3교대씩 밤을 새워가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해서 상품을 만드는 게 다 어디갔습니까? 그 당시 신발, 앨범, 흑백TV 이런 것 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것 다 어디서 사줬죠? 미국에서 사준 거야.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우리 경제개발도 사실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습니다.저는 이런 얘기는 우리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경제도 부강해야 되고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돼. 그런데 그거 있는데에 하나님의 뜻이 지금 돌아보니까 다 이해가 될 만 하더라 하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때 1960년대에서부터 70년부터 우리는 공업화를 했잖아요. 그런데 공업화를 했던 가장 큰 힘이 뭡니까? 일본의 기술력이야.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기술을 다하고 일본이 우리보다 앞장섰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만 따라 가면 되는 거야. 박정희나 삼성이나 다 일본 따라서, 현대자동차 다 일본 따라서 우리가 이만큼 컸습니다.일본이 우리는 지금 우습게 보지만 우리 일본 사람들 특히 우습게 보죠. 쪽빠리들 이렇게 생각했지만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또 하나, 중국. 그냥 지금은 중국이 달라졌지만 우리가 막 경제발전을 할 때 중국은 뭐했습니까? 중국은 문화혁명을 했어요. 모택동 밑에서. 문화혁명이라는 게 뭡니까? 그 공산주의 젊은 애들이 다 내쫓는 것 아닙니까? 윗 사람들 다 내쫓고 다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한 20년을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경제고 뭐고 다 내팽개쳤어요. 우리가 그 사이에, 20년 사이에 우리는 올라섰어요.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어요. 그러니까 깜짝 놀라고 중국이 1980년부터 지금 등소평이 와서 이런 개혁개방이다 해가 지고 지금 세계의 G2나라가 된 것 아닙니까?그러면 안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미국을 우리한테 주셨고 경제가 필요할 때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리나라를 있게 해 주시고 이런 게 그냥 보통 생각하면 다 역사가 그런 거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이게 당연하게 이렇게 온 우리의 역사라 이거예요. 지금 제가 걱정되는 거는 이제 중국이 옛날 중국이 아니잖아요. G2가 됐어요. G2가 뭡니까? 세계에서 두 번째 강대국이야. 우리는 평생 미국이 제일 큰 나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인줄 알았는데 앞으로 2015년, 많이 남지 않았어요. 4년 뒤에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대국이 된다. 아니, 강대국보다 제일 생산을 많이 하는 경제제1의 국가가 된다 이거예요. 물론 인구가 많으니까 개별 소득을 따지면 미국이 앞서지만 전체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1위예요. 그러면 지금 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게 2015년이에요. 그러면 2015년 이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계속 있으니까 잘 봐주겠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중국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아주 막대한 영향 준다 이거예요. 이것도 우리가 잘 해결을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입니다.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에 나는 또 하나님이 뜻이 저는 있다고 봐요. 그건 뭐냐. 과거에는 세상의 축이 어디였느냐 하면 대서양이었어요. 미국과 구라파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가는 거예요. 중국이 1위 국가가 되지,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지. 한국이 7~8위 국가지. 그러면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권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또 뭐냐. 거기에 또 우리 한국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가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지정학적인 것이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우리가 지금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역사를 제가 훑어보면서 중국을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 물건을 수출해야 하니까 중국이 우리하고 친해져야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잖아요. 또 북한하고 가깝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의 영향에 따라서 우리는 통일이 되고 통일이 안 되고 그럴 가능성도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로 우리한테 됐어요. 그러니까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하셔야 된다. 중국을 어떻게 터치할 거냐. 그것은 우리가 아직 모르겠어요. 중국에 지금 1억명이 기독교 신자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말고 그건 교회를 세우게는 하거든요. 그건 나라가 다 감시하는 거고 처속? 교회까지 합쳐서 1억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이 앞으로 하나님의 터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공산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무슨 협상을 통해서 이렇게 망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안 망해. 하나님이 터치가 되어야 해.그건 뭐냐 하면 동부에서도 다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폴란드가 제일 먼저 변했는데 폴란드를 제일 먼저 변하게 한 건 누구입니까? 그 당시 바오로 2세입니다. 바오로2세가 거기에 가서 설교를 하고 했기 때문에 그때 터치가 되어서 폴란드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소련이 왜 붕괴를 했습니까? 소련이 그냥 붕괴한 게 아니에요. 레이건 회고록에 보면 레이건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무슨 핵무기 개발 경제를 서로 덜해서 소련을 개방하고 이래서는 소련이 변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터치를 해야 한다. 레이건이 아주 믿음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아요. 겉으로는 무슨 영화배우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경시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터치를 어떻게 만들거냐. 고르바초프를 개종을 시켜야겠다. 고르바초프가 교회 나오도록, 하나님 믿도록 만들어야겠다. 그래 가지고 정상회담을 하는데 1985년 한 4차례를 만났는데 그때 비밀이죠. 두 사람만 있을 때 레이건이 고르바초프한테 전도를 했어요. 너, 하나님 믿어야 한다. 너 나보고 헤어질 때는 God bless you 이러더라 이거야, 고르바초프가. 너 God bless you라고 얘기하지 않았냐. 너 하나님 믿어라, 하나님이 계시다. 내 아들이 있는데 내 아들은 지금 하나님 안 믿는다. 나는 내 아들이 꼭 하나님 믿기를 바란다. 그러나 걔한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뭐냐, 좋은 식당에 데려가서 우리 아들한테 좋은 음식을 먹이겠다. 그러면 잘 먹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나서 아들한테 묻겠다. 얘야, 이 음식이 어디에서 만들어 졌는데 네 앞에 와 있니. 그러면 글쎄요, 그거 주방에서 만드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얘기할 것 아니냐. 그러면 너는 누가 만들었냐. 너 여기 와 있는데 누가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 하나님. 고르바초프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세요. 직접 정상회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했어요.카터 대통령이 1978년에 한국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하여튼 공산주의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뭐 협상을 통해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남북통일이 되고 이런 것 없어요. 그런 것 일어날 수가 없어. 지금 남북을 분단시킨 이유가 다 있어. 왜냐, 하나님은 통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걸 우리 민족한테 다시 한 번 보여주려고 한다이거야. 분명히 보여주실 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뭐 남북회담해서 개방정책을 써가지고 그렇게 안 돼. 분명히 10년 내에 하나님의 터치가 온다 이거예요. 그때 한국민족이 아, 이게 뜻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제가 왜 이 기회의 나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우리나라 기도를 하느냐 하면 우리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한테 매 순간 매 순간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은 어떤 기회를 주셨습니까? 모든 나라가 한국으로 다 오려고 해요, 아시아에서. 우리도 아시아 전도대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합니다. 한국의 예술, 체육, 문화, IT 기술 그거 다 배우려고 해, 다 오려고 해. 그 사람들 생각에 한국은 기회의 나라라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가 미국을 보고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했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기회의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는 그런 축복받은 청교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 까지 복을 받아서 제일의 국가가 되었지만 지금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 왜 쇠퇴하는 겁니까? 미국은 왜 쇠퇴합니까? 사이클이 있는 거예요, 사이클.그 사이클은 우리 인간 잘못으로 있는 거야. 가난하고 어렵고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해. 절약해. 그러면 가난한 고난 있다가 절약하고 열심히 하다가 그러면 돈이 생겨, 부유해져, 번성해. 그러면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그 다음에 퇴폐, 퇴폐로 가는 거야. 그건 인간사가 똑같은 거야. 모든 세계역사는 똑같은 거예요. 번성하고 잘 살게 되면 그 다음 사이클이 뭐냐. 그 다음에는 자기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부패해지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다음 단계는 뭡니까? 몰락이야. 그다음에 몰락이 되는 거야. 이 사이클이야. 하나님은 우리 한테도 이런 사이클을 주실지 몰라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이 사이클을 막을 수 있는 거야. 이 사이클을 막는 것은 하나님 뜻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이거지. 기회의 나라를 달라는 건 뭐냐. 만들어 달라는 건. 미국 선조들이 처음 미국에 올라갔을 때 청교도들이 원하는 건 뭐냐 미국이라는 나라를 저 언덕 위에 빛나는 집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환한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교도들이 기도한 것 아닙니까?그런데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서 G2의 국가가 됐어요. 앞으로 G3가 될지도 몰라. 미국 기독기독교가 점점점, 유럽은 이미 끝났어요. 이제 그다음에 미국 차례야. 미국도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몰라. 그러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써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이 쓸 사람은 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요. 왜? 이건 제가 괜히 우리가 우리 민족이 잘났고 뭐 이런 걸 부추기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 소서행장?을 따라서 선교사가 이미 조선에 왔어요,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00년, 300년 앞서서 선교사가 왔는데 일본은 하나 님의 나라가 안 됐어.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그런데 중국도 하나님 나라가 안 됐어. 한국이 유일하게 그래도 지금 천 만 교인이라고 하는데 천 만 교인을 지금 가지고 있는 거야. 참된 신자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라로 지금 되어 있는 거예요.아까 동북아 시대가 열렸다, 여기가 중심이다 할 때 하나님은 아, 한국을 써야 되겠구나. 한국을 다음 세계의 중심국가, 세계의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그런데 우리가 다음 주에 우리 오대원 목사님이 와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 뭘 해야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기도. 시간이 없어서 제가 간략하게 하고 그만하겠습니다. 아까 사이클이 있다고 했죠.흥망성쇠, 번영, 퇴락, 부패 이거 다 이어 진다고 했죠. 우리가 이 사이클을 끊어야 돼. 이 사이클을 끊을 힘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성령님 밖에 없어. 그 사이클을 끊어야 돼, 우리 스스로가. 그래서 이 나라를 다시 성령님으로 도덕의 나라, 개혁의 나라로 다시 정신적으로 우리가 다시 바꿔야 된다, 이거야. 그게 우리의 첫째 기도가 되어야 해.요즈음 왜 자살이 많습니까? 왜 꺼떡한 하면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장관 지낸 사람들. 나라가 벌써 부패해 진거예요. 정신이 썩어진 거야, 벌써. 이러면 이 나라는 고꾸라 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 이 나라의 정신을 살려주십시오. 이 나라에 성령이 임해서 정신의 부흥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게 제일 첫째입니다. 둘째는 뭐냐. 우리가 개혁, 지금 정신개혁에 따라 오는 건 뭐냐. 지금 이 시국, 이 나라가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요.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그것은 잘 살게 된 데에도 큰 원인이 있어요. 그것은 또 있는 사람들의 그 원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열이 된 이 나라가 다시 통합이 되어야 해요. 지금 갈등에 쌓여있는 이 나라가 다시 화합을 해야 돼요. 그게 우리나라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 없으면 이 나라는 이제 쓰러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분열, 이런 것이 이 나라에서 떠나가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세 번째 기도가 있습니다. 세 번째 기도는 북한에 대한 기도입니다. 아까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지, 북한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 통일원? 사람들을 몇 사람 만나봤는데 이 사람들 예측은 2020년까지 북한에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서 자기들 보기에는 통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2020년까지 우리 통일이 온다 이거예요. 그건 하나님 터치가 있을 때 통일이 오는 거예요. 그때까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돼요. 지금 못 먹고 있는 북한 애들을 위해서 우리가 또 도와줄 것 있으면 도와줘야 돼요. 지난 번에 목사님도 그런 말씀하셨죠. 왜? 애들은 못먹이면 뇌가 상해요. 3~4살까지 뇌가 100% 발달을 하는데 그때 영양부족이 되면 평생을 애들이 IQ가 낮은 저능아가 되는 거예요. 북한애들이 다 저능아가 되면 나중에 통일되면 우리가 어떻게 다 먹여살리겠습니까? 우리가 북한을 도와줄 것은 식량이나 의약품이나 영양가 있는 것 이건 도와줘야 돼요. 도와주면서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기를 기도해야 된다.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해서 기도.네 번째, 중국의 민주화, 중국의 자유화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해요. 그 필요는 아까 말씀드렸죠. 중국이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나라가 됐어요. 지금 식으로 가면 조선반도, 이 한반도가 어떻게 될지 몰라. 중국에 자유화, 민주화가 있고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져야 해.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 통일은 자연히 되고 중국의 민주화도 자연히 이루어지니 겁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그걸 놓고 중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다섯 번째,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 좋은 지도자를 좀 주십시오, 좋은 지도자. 이거 중요한 시점인데 저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 조지워싱턴, 제퍼슨, 존 아담스, 해밀튼, 1976년 미국이 독립을 차지했을 때의 그 미국의 무수하게 좋은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 독립이 가능했던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 당시 월급을 안 받으려고 했어. 나라일을 하는데 월급을 받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안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에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은, 그런 사람들이야. 링컨은 너무나 잘 아니까 말할 필요가 없죠.링컨은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다기도하면서 했어. 링컨의 명 연설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링컨이 공부 못 한 사람이에요. 켄터키 옛집에서 책 이렇게 해서 그 사람 학교도 못 가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그렇게 명연설을 합니까?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세우겠다. 그런 명 연설을 어떻게 합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중요한 연설이 있을 때는 요즈음 우리나라는 다 밑의 사람이 써오잖아요. 자기는 그거 안 해요. 안 하고 성경책 하나, 미국 헌법 하나 딱 두 개만 들고 자기가 혼자 멀리 백악관을 떠나서 혼자 갑니다. 가서 성경을 읽으면서 미국 헌법을 읽으면서 내가 이 백성들한테 미국 시민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되겠나 일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연설문을 썼어요. 그래서 링컨의 연설문이 그렇게 명 연설문이 된 거예요. 우리 지도자들이 저는 그런 지도자가 좀 나와야 된다. 지도자가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지도자에 너무나 기근이 들렸어요.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우리가 과거 미국 파운딩 파더 같은 그런 지도자들 우리한테 주십시오. 그런 정치지도자를 주셔서 이 나라를 좀 살리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제가 기도, 마지막 할 것은 우리 크리스찬들이에요. 한국이 천 만이에요. 그런데 이 크리스찬이 지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걸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돼요. 며칠 전에 임요한이라고 연대 세브란스 병원 교수인데 선교사 아드님이신데 어느 신문에 기고를 했더라고요. 거기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만일 지금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며칠 목욕을 안 하고 또 허름한 넝마를 거치고 한국교회에 들어 설 때 한국교회에서 그거 받아줄 교회가 한국교회에 어디 있느냐, 있겠느냐 하고 기도를 했어요. 우리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우리 크리스찬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돼요. 다른 사람 손가락질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각성해야 돼요. 영국이 그렇게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된 건 뭡니까? 그리고 영국은 망했죠. 이유가 윌보 포스너? 그리고 감리교 했던 누구죠? 그런 분 존 웨슬러, 요한 웨슬러나 이분들의 성령운동?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당시 영국에서 영국 상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정직했다 이거야. 제일 정직하니까 영국 상인들은 다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왜 영국상인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윌보 포스너 이런 사람들이 개혁운동을 했기 때문에, 크리스찬 개혁운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찬이 개혁운동에 앞장서야 해요. 준비한 건 많았지만 시간이 되어서 나중에 기회있으면 개인적으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여튼 크리스찬이 먼저 정신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어요.우리나라 옛날에 80불 하던 소득이 아프리카 기니? 하고 같은 80불의 나라였어요. 불과 50년 전에. 그런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주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괜히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까? 미국이 기회의 나라가 됐듯이 우리나라도 기회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수요 여성 예배, 이렇게 또 주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주님, 저희들 이 나라를 향해서 주님의 뜻을 지금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 저희 우리 크리스찬들이 각성하게 먼저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축복하셔서 이 나라 사람들이 고통당하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가 앞으로 세계 복음화와 세계 선교화의 주축이 되는 나라, 미국을 다음 이어 가는 나라가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옵소서. <중앙일보 제공>
    201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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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치소 수감된 피의자 석방까지 알아서 ‘척척’
    [서울신문]변호사들이 털어놓은 전관예우 실태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법 제1조가 무색할 정도다. 먹이사슬로 따지면 최상위에 대형 로펌이 있고 바로 아래에 법원·검찰 고위직 출신의 전관 변호사가, 그 아래 단계에 법원과 검찰이 있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검찰 출신의 A변호사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어떤 로펌에 전직 법원장급이나 고위직 출신이 있으면 그 사람이 알아서 다 할 것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경찰도 담당 변호사의 급에 따라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관 변호사가 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를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송시킨 뒤 석방까지 이끌어낸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퇴직 판·검사의 절반은 로펌에 재취업했다. 지난해 10월까지 퇴임한 판사 61명 중 32명이 20대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은 64명의 검사가 퇴직해 30명이 로펌을 선택했다. 퇴직 검사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로펌은 김앤장법률사무소로 6명이 재취업했고, 법무법인 태평양(4명), 화우(3명), 동인·광장(각 2명) 순으로 나타났다.로펌들은 변호사 개인에게 주는 연봉을 공개하지 않지만 부산고검장 출신의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는 퇴임 후 태평양에서 17개월간 모두 16억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다. 또 대검 차장 출신의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0년 12월 감사원장에 내정됐지만 검찰 퇴임 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간 7억원의 보수를 받은 점이 문제가 돼 낙마했다.검찰 관계자는 "판사나 검사 모두 '엘리트' 소리 들으며 자라왔는데 개업 변호사나 기업인 등 동년배의 지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봉급이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형 로펌의 경우 1~2년 만에 노후를 보장할 정도의 연봉을 주는데 배우자와 자녀를 생각하면 자존심만 고집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력을 갖춘 곳이 대형 로펌들인데 법원과 검찰 출신 고위 인사가 로펌의 강력한 무기"라면서 "로펌들은 능력 있는 '변호사'를 채용하는 게 아니라 고위 인사의 '이름'과 '얼굴'을 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후보자의 경우 월 평균 1억원의 보수를 받았지만 17개월간 선임계를 낸 사건은 2건에 불과했다.판사 출신 B변호사는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주고 전직 판·검사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로비스트가 되기 때문"이라면서 "그 사람들이 사건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사건 담당 판·검사들에게는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C변호사는 "검사장이나 지법원장 출신은 변호사 개업 첫해에 30억~40억원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고 한다"면서 "양심이나 윤리에 호소하기엔 로펌도, 전관도 너무 탐욕스럽다"고 꼬집었다.법을 수호했던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법망을 피하며 불법을 저지르는 행태도 가관이다. '탈세 온상'이라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2011년 5월 개정·시행된 전관예우금지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전관들은 착수금이 성공보수 모두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는다. 불법이다. 이런 불법이 가능한 건 전관들이 선임계를 내지 않고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의 인물을 '얼굴 변호사'로 내세운 뒤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다. 판·검사로 재직했던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법원 및 검찰청 관할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전관예우금지법은 사문화된 지 오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전관들은 후배 판·검사를 사석에서 만나거나 전화로 "그 사건 내 사건이야"라고 한 마디만 할 뿐이다. 일반 변호사들과 달리 변호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 변호사들은 "전관들이 받는 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로비의 대가"라고 못 박았다.전관들의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보통 민사사건은 수백만~수천만원, 형사사건은 수천만~수억원에 달한다. 구속영장 기각 등 신변 자유를 보장해주는 건 통상 1억원이다. 얼굴 변호사는 보통 300만~500만원을 받고 사건을 수임, 선임계를 낸다.착수금·성공보수는 현금 직거래다. A변호사는 "선임계를 내지 않는데 개인이나 법인 계좌에 돈이 입금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며 "전관들은 철저히 돈 관리를 한다"고 전했다.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돈을 받는 건 고전적 수법이다. B변호사는 "요즘은 변호사가 지정한 특정 계좌에 의뢰인이 성공보수를 선지급하기도 한다"면서 "의뢰인의 조건대로 사건이 처리되면 변호사가 돈을 가져가고, 반대일 경우엔 의뢰인이 되찾아간다"고 말했다.로펌 소속 전관 변호사들의 편법 행위도 심각하다고 한다. C변호사는 "로펌 소속 전관들의 수입 내역을 떼어 보면 황당할 것"이라며 "월 1억원을 받는데 선임계를 낸 건 극소수다. 로펌은 철저히 실적으로 평가하는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월 1억원을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D변호사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문제가 있다"면서 "월 평균 1억원을 받았는데 16개월간 선임계를 낸 사건은 고작 2건뿐이다. 그 2건으로 7억원을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E변호사는 "증거가 드러나지 않을 뿐 황 후보자도 사실상 수렴청정을 한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변호사들은 "사건 의뢰인, 변호사, 사무장만 알기 때문에 내부 고발을 하지 않는 한 적발이 안 된다"면서 "전관들이 나중에 어떤 위치에 올라갈지 모르기 때문에 후배 검·판사들이 폭로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박성국 기자 psk@seoul.co.kr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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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靑서 긴급민생대책회의 주재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조짐
    선제적 경기보완 노력 소홀함 없어야…세월호 책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은 9일 "지금은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국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민생을 챙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정부가 나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에 따른 경기위축 여파를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최근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같이 주문했다. 또 "최근 소비가 줄고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사태를 방치하면 서민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지난 2년간의 침체 국면을 지나 이제 조금 형편이 나아질만한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주저앉게 된다면 서민의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경기 회복세에 흔들림이 없도록 선제적 경기보완 노력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경제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중요한데 이런 징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어렵게 살린 경기회복의 불씨까지도 꺼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고로 인해 서민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자칫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할 경우 실물경기 회복에 차질이 빚어질뿐 아니라 소비와 직결된 영세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등 자영업, 중소기업은 물론 이곳에 종사하는 서민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된다"고 우려했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민생대책회의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정상적으로 지속해 나가려면 무엇보다 조속한 사고수습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경제혁신과 규제개혁 노력은 흔들림없이 지속돼야 한다"면서도 "안전이나 소비자보호, 공정경쟁 등을 위해 꼭 필요한 좋은 규제는 반드시 유지하고 필요할 경우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에 있어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심리가 아니겠는가. 이 심리가 안정돼야 비로소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며 "그런데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언행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될뿐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결국 경제회복의 첫 단추는 이런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후속조치와 관련, "세월호 사고의 유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국민도 같이 아파하면서 애도하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문제점을 찾아 바로잡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관련사항을 국민에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shin@yna.co.kr
    201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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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비극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나라 만드는데 총력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할 대통령으로서 어린 학생들과 가족을 갑자기 잃은 유가족들께 무엇이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불기 2천558년 부처님 오신날인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 축하메시지를 통해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런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며 이같이 사과했다. 또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신 후 첫 번째 계율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했다"며 "그 가르침이 지금 우리 사회에 경종을 주고 제일 큰 가치로 지켜내라는 경각심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부처님 오신날에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것은 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이 법요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 행사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사고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국민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마련됐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특별히 올해 봉축법요식을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리로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세월호 사고로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받고 계신 유가족들께 부처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저는 이번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국가정책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동안 묵인하고 쌓아왔던 잘못된 관행과 민관 유착, 공직사회의 문제 등을 바로 잡고,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아서 바르고 깨끗한 정부를 만들고자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다"며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기심을 위해 정의를 등지지 말라'고 하셨던 부처님 말씀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부조리와 적폐를 바로잡고 올바른 정의를 세워나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견고하지 못한 경기 회복세와 비정상적 제도·관행·문화,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 등을 언급, "우리한테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한마음이 돼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과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온 저력이 있다"며 "수많은 국난을 이겨내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불교는 우리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왔다.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에도 다시 한번 큰 역할을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날 행사에는 청와대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국정기획·민정·홍보·교육문화 수석이 함께했다. min22@yna.co.kr
    201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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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 높은 문책 시사… 개각 가능성 부상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강도 높은 책임론을 거론해 대규모 문책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박 대통령은 “단계별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수사 결과에 따라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장관급 등 고위직도 문책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의 선박 수입부터 면허취득, 시설개조, 안전점검과 운항허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진행과정을 철저히 점검해 단계별 문제점과 책임소재를 밝혀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박 사고뿐만 아니라 선박의 수입 단계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문책의 범위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특히 세월호의 구조 변경을 거론하며 관련 당국의 관리 실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20년이 다 된 노후 선박을 구입해 운항하면서 인원을 더 태우겠다고 선박 구조까지 변경했다는데, 그 과정에서 안전 점검은 제대로 했는지 또 구명정이 46개나 있었는데 펼쳐진 건 하나뿐이었는데, 어떻게 지난 2월의 안전점검을 통과했는지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고 선박의 적재 중량 허위 기재 의혹과 화물 결박 부실 의혹이 제기된 것을 두고도 관리 감독 당국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단호한 입장을 밝히고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장관 문책과 함께 개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또 세월호의 운항 과정과 사고 발생 이후 대응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지금 중앙재난대책본부가 있으나 이번에 보니 위기시 현장과 부처 간 협업과 대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보다 더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명승일 기자 | msi@newscj.com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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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의료 정책이 재벌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된다!
    박근혜 정부가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마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의료와 헬스케어 산업을 삼성의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부의 의료 정책이 재벌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9일 중국 보아오 포럼에 참석해 의료와 헬스케어 사업을 삼성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재용 부회장이 “의료산업은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삼성의 차세대 먹거리다”라고 공식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부회장의 발언이 나오기 일주일 전인 지난 2일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의사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환자를 진찰하고 약까지 처방할 수 있도록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를 “핸드폰 진료”라고 부르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각종 홍보 동영상을 인터넷 등을 통해 배포하며 새로운 원격의료 제도 도입이 도서벽지의 나이든 어르신들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부는 가정에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도 거의 들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홍보 동영상 내용은 대부분이 거짓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3년 연말 기준으로 50가구 미만의 농어촌 광대역 통신망 구축율은 53%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뉴스타파 취재진이 찾아간 군산시 옥도면에 위치한 한 섬마을의 주민들은 정부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줘도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한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을에) 인터넷을 놓은지 1년뿐이 안돼서 지금 많이 사용 않던데. 우리도 집에 있는데 사용 안해”[고영곤 56세 / 군산시 말도리 인터뷰]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은 없으세요?)“그런거 없어. 내 이름이나 쓰고 컴퓨터는 할 수가 없어.”[김영섭 81세 / 군산시 말도리 인터뷰] 또 정부의 선전과 시장의 반응도 상반된다. 정부는 “원격의료가 도서벽지 어르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의 홍보 동영상들을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려고 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정부의 주장과는 전혀 상반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급 헤어샵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는 이미 서울대병원 의사들과 함께 두피를 원격진료로 관리해준다고 광고하는 뷰티숍이 등장했다. 최첨단 원격진료 두피모발 관리 서비스 1회 비용이 16만 5천원이었고, 8회 기준 100만원이 이 업체가 내세우는 할인 가격이었다. “아무 살롱에서나 이 제품 쓸게요, 하는게 아니라 한 4일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교육을 받아요”[뷰티샵] 또 올 9월 송도에 새로 입주할 한 아파트에는 대당 시가 990만원짜리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원격진료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선전하고 있었다. “시중가 990만원..분양가에 포함될때는 반 이상 저렴하게 들어갔어요.”[분양업체 관계자] 원격의료를 통해 장비업체들은 기기를 팔아서 이득을 얻고, 통신사나 헬스케어 운용업체들은 월 사용료로 수익을 챙기는 구조가 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헬스케어 서비스 업체들은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원격의료시장이 크게 확장될 것이란 기대감도 숨기지 않고있다. “송도의 특성상 쇼케이스의 개념으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나 그런 흐름에도 맞지 않나 싶어서.”[원격의료업체 관계자] 실제로 뉴스타파가 입수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스마트케어 시범서비스 통합분석” (2013.12)에는 정부가 계획하는 원격진료를 위해서는 삼성전자 등이 만드는 게이트웨이(원격의료용 셋톱박스)란 원격의료 장비를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정부의 개정안 대로라면 원격의료 대상은 주로 고혈압이나 당뇨병, 정신질환 환자가 될 전망이다. 현재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수가 700여만 명인 것을 감안할 때 시중가 42만원 상당의 게이트웨이 장비를 이들에게만 팔아도 최대 3조 원 가까운 시장이 열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의 원격의료법안이 현실적이지도 않고, 비용이 결코 적게 드는 것도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는 의사들은 무엇보다 정부 개정안대로 원격의료가 실시될 경우 오진이나 의료사고 등의 부작용이 빈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 대변인실은 뉴스타파가 원격의료 도입의 취지와 홍보 동영상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하자 “관련부서에서 인터뷰 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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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지시를 하였는가!
    간첩증거조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제 식구인 검사들의 잘못을 따져 처벌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 직원과 협력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을 통해 마치 검사들이 위조문서를 검증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유우성 씨 사건의 전개 과정을 분석해보니 증거 은닉, 공문서 위조, 위증 등 검사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검사들이 국정원에 속기만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의 관문들을 이들은 그냥 지나왔다. 의문 1) 검사, 유가려가 ‘허위자백했다’ 고백하자 “그러면 못 도와준다”? 2013년 3월 국정원으로부터 유우성 씨 사건을 송치받은 이시원 검사는 4월 초 열린 증거보전재판에서 유 씨의 동생 유가려 씨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유가려 씨는 검사의 수백 가지 질문에 가는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오빠가 묻기 시작하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유가려 씨의 자백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이 공개되자 더욱 괴로워했다. 증거보전재판이 끝난 뒤 이시원 검사는 유가려 씨를 불러 ‘사실대로 말하라.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말하지 않겠다’며 진실을 고백할 것을 종용한다. 거듭된 이시원 검사의 종용에 유가려 씨는 ‘사실은 모두 허위자백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검사는 막상 유 씨의 고백을 듣자마자 “그러면 못 도와준다”며 입장을 바꾸었다는 것이 유가려 씨의 일관된 증언이다. 이 검사도 유가려 씨가 국정원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고백한 사실을 일부 인정한다. 그는 “당시 유 씨가 자백을 번복한 것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고 재판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1분이건 1시간이건 허위자백을 했다는 피의자의 진실고백을 무시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의문 2) 사진 증거 조작도 무시 국정원이 유우성 씨가 북한에 들어가서 찍은 것이라고 제출한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었다. 국정원은 이 사진을 파일 형태가 아니라 종이에 출력한 형태로 제출했다. 변호인 측이 압수된 하드 드라이브를 받아 디지털 포렌식으로 되살려보니 국정원이 제출하지 않은 사진들이 나타났다. 중국의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국정원이 제출한 사진들도 위치 정보를 확인해보니 북한이 아니라 중국에서 찍은 것이었다. 국정원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부 사진 증거는 은닉하고, 일부는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도록 종이로 출력해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사진 증거 조작도 무시했다. 의문 3) 유우성 씨가 북한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을 입증하는 통화기록을 무시 당초 공소장 대로라면 유우성 씨가 북한에 들어가 있어야 할 때에 중국에서 찍은 사진들이 나오자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한다. 2012년 1월 22일에 밀입북했다고 한 것을 1월 24일 밀입북한 것으로 바꿨다. 검사는 새 증거로 유 씨의 통화기록을 제출했다. 1월 24일에는 유우성 씨의 통화기록이 없으니 북한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화기록에는 검사가 공소장을 변경하기 전까지 유 씨가 북한에 들어가 있었던 기간이라고 주장한 1월 22일부터 23일까지의 통화기록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검사는 당초 1월 22일 유 씨가 중국에 있었던 증거인 통화기록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북한에 들어갔다고 기소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검사는 기소하기 전에 통화기록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피의자의 혐의를 벗길 수 있는 증거를 보고도 무시하고 기소했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의문 4) ‘입-입-입’ 기록 갖고 있던 검찰, ‘입-출-입’ 기록 받아 법원에 제출? 국정원은 유우성 씨가 어머니 장례식 참석 북한에 다녀왔던 2006년 5월 말-6월 초 출입경기록을 갖고 있었다. 국정원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세 번 연이어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는 이 기록을 토대로 유가려 씨와 유우성 씨를 추궁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비공식 자료였으므로 검찰은 국정원에 공식 자료를 요구했다. 그런데 중국 길림성 공안청은 유 씨의 출입경기록 발급을 거부했고, 국정원은 갖고 있던 ‘입(入)-입(入)-입(入)’ 자료를 선양총영사관에 보내 영사인증만 받은 뒤 검찰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한편 협력자 김 모씨가 가짜 허룽시 공안국 관인을 찍고 ‘입-입-입’을 자연스럽게 ‘입(入)-출(出)-입(入)’으로 변조한 기록도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이 두 기록 가운데 가짜 허룽시 공안국 관인이 찍힌 ‘통째로 위조된’ 출입경기록을 선택해 법원에 제출했다. 물론 검찰은 변조한 ‘입-출-입’ 기록이 정상 발행된 것인지 확인하겠다며 사실확인요청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가 오기도 전에 이 위조 문서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따라서 사실확인요청 행위는 알리바이 용이 아니었나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검사는 비공식 입수한 것이지만 수사단계부터 활용해온 ‘입-입-입’ 기록을 제쳐두고 왜 위조된 ‘입-출-입’ 문서를 선택했을까? 검찰은 관할 관청인 길림성 공안청이 출입경기록 발급을 거부했는데도 왜 유 씨 출입경기록 발급 권한도 없고, 상관도 없는 허룽시 공안국이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발급해줬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을까? 의문 5) 뉴스타파가 ‘위조’ 사실을 확인해줬는데도 왜 검찰은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나. 뉴스타파는 중국 현지 취재를 통해 허룽시 공안국 출입경기록 담당자, 연변주 공안국 담당자, 허룽시 공증처 담당자를 취재해 한결같이 국정원이 제출한 중국 공문서가 ‘위조’라는 답변을 들었고, 이를 담당 검사들에게 지난해 12월 6일 알려줬다. 그러나 검사들은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를 믿지 않고 오히려 몰래카메라로 찍은 믿을 수 없는 영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잘못을 교정할 기회였지만 검사들은 이 또한 무시한 것이다. 의문 6) 유우성 측, 진본 출입경기록 제출. 그래도 안 믿은 검사들? 유우성 씨측은 검찰이 위조된 출입경 기록을 제출한 이후 중국에서 정식으로 진본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아 제출했다. 이 기록은 ‘입-입-입’이었다. 유우성 씨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날 함께 들어온 다른 친척 2명의 기록도 ‘입-입-입’으로 되어 있었다. 중국 출입국 관리 시스템의 전산오류로 ‘입’이 세 번 연이어 나온 것이라는 유우성씨 측 주장이 사실임이 입중된 것이다. 하지만 검사들은 믿지 않았다. 의문7) 여권기록도 믿지 않은 검사들 유 씨의 여권기록도 제출됐다. 출입 때마다 직접 스탬프를 찍기 때문에 틀릴 수 없는 기록이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출입경기록은 이 여권에 기재된 내용과 달라 위조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검사들은 역시 믿지 않았다. 의문8) 엉성하고 위조 흔적 뚜렷한 ‘사실확인서’ 그대로 제출한 검찰 허룽시 공안국이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확인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팩스 번호로 중국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전송돼 왔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이 두 개의 동일한 ‘사실확인서’는 허룽시 공안국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서울 국정원 본부에서 보낸 것이었다. 게다가 이 ‘사실확인서’는 문법도 틀려서 중국 정부의 공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했지만 검사들은 그대로 제출했다. 의문 9) 검사들에게 ‘국정원이 위조 문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경고를 전하다 한 국정원 정보원은 검찰이 위조된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하기 전에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위조된 기록이 제출될 것’이라고 알려 왔다. 뉴스타파는 이를 유 씨 변호인 측에 알렸고, 위조 기록이 제출된 뒤인 지난해 12월 20일 재판에서 변호인들은 검사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검사들은 독자적으로 해당 정보원을 만나 사실관계를 알아보기는커녕 이 경고 뒤에도 삼합변방검사참 명의의 위조 문서를 제출했다. 의문 10) 중국 정부의 위조 통보를 받고도 믿지 않은 검찰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유 씨 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검찰이 제출한 3가지 중국 공문서가 모두 위조라고 통보했다. 그 직후 열린 검찰 브리핑에서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중국 측이 위조라고 단정한 것인지는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측도 단정적 위조라고 했는지 의문스럽다. 자기들도 더 밝힌게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중국 대사관 위조라는 개념이 위조와 똑같은 개념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내용이라는건지 조작인지, 권한없이 상급자 결재없이 했다는 건지…확정적이지 않다.-윤웅걸 중앙지검 2차장 검찰은 오히려 브리핑에 참석한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몰래카메라로 중국 관리들을 불법적으로 촬영했다며 불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는 투의 압박을 가했다. 이처럼 유 씨 사건을 맡은 검사들이 간첩증거가 위조됐다는 것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검찰 수사팀은 담당 검사들에 대해 최소한의 강제 수사도 하지 않고 있다. 해당 검사들은 여전히 재판에 나와 유우성 씨가 간첩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이 검사들은 그들 주장대로 국정원에 속아서 위조 증거를 제출한 것인가? 이들은 아무런 합리적 의심도 없이 뉴스타파가 포착한 의문의 관문들을 마냥 국정원에 속아 지나온 것일까?그것이 상식적인 인간으로서 가능한 것일까? 검찰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더 이상 존재할 가치나 필요가 있는 것일까?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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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황식과 정몽준은 시장후보 자격 미달로 지적!
    박원순 서울시장이 23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창당준비위원장에게 선물한 수필집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의 저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58·사진)가 서울시장 후보들에 대해 “서울의 미래에 대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따끔한 한마디를 내던졌다.송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 전화통화에서 “박원순 시장은 현장에서의 소소한 살림살이는 잘하지만 미래 비전은 약하다”며 “좋은 리더가 되려면 이제는 거시적인 비전을 서울시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후 서울의 모습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화두를 시민들에게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런던, 암스테르담, 보스턴, LA, 베네치아, 마드리드 등 세계를 이끌었던 도시들은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니다”라며 “박 시장은 중국의 북경과 일본 도쿄에 대비해 서울을 세계발전의 동력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찾아내 시민들에게 제시하고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의 김황식 전 총리, 정몽준 의원에게도 같은 맥락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김 전 총리나 정몽준 의원이 소소한 이야기는 하는데 정작 서울시민이 듣고 싶어하는 세계 속 서울의 위상, 서울의 정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어 “지금까지 말씀하는 것으로 봐서는 두 분 다 (서울시장 자격에) 모자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박 시장과 안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교보문고에서 만나 서로에게 줄 책을 찾아 직접 계산한 뒤 건넸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송 교수의 책을 구매해 안 위원장에게 선물했다. 송 교수가 쓴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안 위원장은 이탈노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들 사서 박 시장에게 줬다. 이 책은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황혼기에 접어든 타타르 왕국의 황제 쿠빌라이가 55개 유토피아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담고 있다. 박 시장과 송 교수는 서울대 사회계열 73학번 동기다. 하지만 박 시장이 입학하던 해 시국사건으로 제적당하면서 두 사람은 학창시절엔 친분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송 교수는 “박 시장이 왕성하게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1990년대에 이런 저런 자리에서 만났고, 12~13년 전쯤 서울대 사회학과 전공과목에 시민운동 파트가 있어 내가 박 시장을 강연자로 초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수는 “지난 3월엔 박 시장이 주재하는 서울시 독서모임에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저자로 초청받아 갔었다”고 덧붙였다.
    201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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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KBS 취재파일 보도에 부추실은 동감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취재파일 K, 한상권입니다.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자살한 세 모녀의 사연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는데요.가족이 병들거나 다치면, 벼랑 끝에서 밀려 떨어지고 마는 우리 사회 빈곤층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인데요.세 모녀를 보호하지 못한 허술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습니다.착하고 성실하게 살던 세 모녀는 왜 죽음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렸을까요?오늘 취재파일 K의 이슈입니다.송파 세 모녀 동반자살.<녹취> " 며칠간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문을 두드려보니 인기척이 없고..." <녹취> "낙상사고로 절망에 빠진 세 모녀 "팔을 수술을 해도 일을 할 수 없겠다고 그렇게 진단이 나왔대요."<녹취> "죄송합니다"마지막 집세·공과금.세 모녀 추모 물결.<녹취>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녹취> "극단적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세 모녀가 남기고 간 '죄송하다'는 글이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요.이번 사건을 취재한 김대영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질문>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오던 세 모녀였는데 왜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맞은 건가요?<답변>네, 세 모녀의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 건 12년 전 아버지가 방광암으로 숨지면서부터입니다.아버지가 투병하는 동안 치료비와 생활비를 대느라 재산을 모두 탕진한 것은 물론 두 딸마저 빚을 져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가장이던 아버지가 끝내 숨지면서 세 모녀 가정은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질문>세 모녀 가정은 수입이 없었나요? 생활비는 누가 벌었나요?<답변>큰 딸은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고 있어서 돈을 벌기 힘들었고, 둘째 딸은 아픈 데는 없었지만 신용불량자 신분이라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했습니다.61살인 어머니가 식당일을 해서 번 돈으로 세 모녀는 근근이 버텨왔는데요.그런데 지난 1월말 어머니가 출근길에 넘어져 팔을 다치면서 세 모녀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게 된 겁니다.세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한승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지난 달 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 셋방, 세 모녀가 싸늘하게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방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인터뷰> 김태수(경위/서울 송파경찰서 형사 2팀) : "(지난달) 26일 날 (모녀가) 발견됐는데 어느 정도 (시신은) 부패 진행이 있었다. 2월 20일 날 18시쯤에 (번개탄을) 현금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2월 20일쯤에 사망한 것이 아닌가..."방안에선 집 주인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글과 함께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이 든 흰색 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세 모녀가 9년 동안 살며 반지하 월세방에 남긴 흔적은 금세 지워졌습니다.박 씨 부부의 단란한 한 때... 딸의 졸업식.밝게 웃는 세 모녀, 이들 가족의 행복했던 모습은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녹취> 집주인 : "성격도 다 좋고 다 좋아. 조용하게 살고 월세하고 공과금이고 하루도 안 틀리고 다 내던데..."박 씨 세 모녀는 9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들을 잘 아는 주민들은 거의 없었습니다.이웃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친인척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이들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지난 1월 말, 쌀쌀한 겨울날 아침.박 씨는 여느 때처럼 식당 일을 하기 위해 출근에 나섰습니다.그러다 그만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박 씨는 일어났지만 팔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식당 대신 병원을 찾은 박 씨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당분간 팔을 쓸 수 없다는 진단이었습니다.자신의 두 팔이 감당해야 할 세 식구의 생계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박 씨가 식당을 다시 찾아온 것은 설 연휴 직후였습니다.<녹취> 식당 주인 : "의사 선생님께서 일을 할 수 없다고 그렇게 진단을 내렸대요. 팔을 수술을 해도 일을 할 수 없겠다고 그렇게 진단이 나왔대요."식당 주인도 동료 종업원도 박 씨의 사정이 딱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고 있을 걸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식당 동료 종업원 : "일 못할 것 같다고 이제 쉬어야겠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지막으로..."박 씨는 팔을 다치기 전에도 시력이 좋지 않아 일을 6개월 정도 쉬고 눈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치아도 성치 않아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녹취> 동료 종업원 : "언니가 치아가 없어요. 그래서 일하면서 밥만 많이 드시지. 반찬을 못 먹었어요. 아무래도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고."곳곳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2시간 동안 고된 식당일을 했습니다.이렇게 일해서 받는 돈은 한 달에 180만 원.두 딸과 함께 살아가기엔 빠듯한 돈이었습니다.박 씨의 집에서 발견된 가계부엔 어려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박 씨는 구입한 것들을 십 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적었습니다.2006년 당시 월수입은 백2십만 원. 세 모녀의 한 달 음식비는 20만 원이 채 안 됐습니다. 성인인 두 딸은 주로 집안에 머물렀습니다.큰 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어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병원에 다닐 형편이 안 돼 집에서 스스로 당뇨와 고혈압 수치를 기록해야 했습니다.신용불량자인 둘째 딸도 직장이 없었습니다.때때로 편의점 같은 곳에서 일을 했지만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녹취> 유족 : "알바해서 다니는데 거기서 돈을 안 준다는 거야. 한달 월급을 줘야되는데. 어렵다고 돈을 안 준다니까 관둘 수밖에 없잖아요."궁여지책으로 집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 댓글 아르바이트를 하며 푼돈을 보태기도 했습니다.만화가가 꿈이었던 둘째딸.그 꿈은 낡은 습작 노트 속에 간직해야만 했습니다.<녹취> 유족 : "만화가가 되려고 한 거고 아버지가 좀 잘 살고 뭔가 했으면 지금 만화가가 됐을 거예요. 아마..."어머니의 낙상 이후 세 모녀는 한계 상황에 내몰렸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녹취> 경찰 관계자 : "자존심이 있었고 도움을 받으려고도 안 하고 피해를 끼치려고도 안 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것도 다 거절하고 마다해서."세 모녀가 사는 지역의 주민센터를 찾아가봤습니다.박 씨 모녀는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긴급복지 지원, 어떤 것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 : "이 가구는 세 분이 다 근로능력이 있으신 분들이잖아요. 어쨌든 세분이 다 소득이 없다, 실직하셨다 그럴 경우에는 수급자 신청 가능하시겠죠."전문가들은 박 씨 모녀가 신청을 했더라도 지원을 받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현재 3인 가족의 경우 최저생계비는 132만여 원.180만 원의 소득이 있었던 박 씨 가족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될 수 없습니다.박 씨가 팔을 다친 이후에도 만성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수급 대상이 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인터뷰> 허선(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팔을 다치신 지가 불과 직전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곧 치료가 된다는 전제 하에서 담당 공무원이 적용을 하지, 그것이 오랫동안 계속해서 그것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설령 팔 부상이 만성 질환으로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두 딸의 근로 능력이 수급 대상의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딸 2명 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추정 소득은 120만 원.수혜 대상이 되긴 하지만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상한액 107만 원보다 추정 소득이 더 많기 때문에 현금 지원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작은 딸 1명만 근로 능력이 인정된다면 107만 원에서 추정 소득 60만 원을 뺀 47만 원을 지원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돈은 이들의 월세 50만 원보다 적습니다.큰 사고나 위기 상황에 적용되는 긴급 복지 지원 제도가 있지만 성인인 두 딸의 근로능력 때문에 지원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인터뷰> 허선(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송파구 세 모녀 가구의 사건은 우리나라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 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고 그 문제점의 종합판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질문>세 모녀의 경우 결국 가난 때문에 목숨을 끊은 건데, 세 모녀와 같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적지 않다고요?<답변>네, 전체 인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할 때 정 가운데를 차지하는 금액을 중위소득이라고 하는데요.그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일 경우 빈곤층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2012년 기준으로 연소득 1068만원, 한달에 90만원 정도인데요.빈곤층의 비율은 17%로, OECD 국가 가운데 6번째로 높은 비율입니다. 6명중 1명꼴인 800만명이 빈곤층으로 추산됩니다.하지만 정부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140만명 정도에 불과합니다.수 백만명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말입니다.때문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자살율은 2000년 13.6명에서 지난 해에는 29명으로 늘었습니다.OECD 국가 중 1위로, 평균인 12명의 두 배 이상입니다.<질문>왜 이렇게 빈곤율이 높은 건가요?<답변>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변화와 비정규직 양산에 따른 소득 불평등이 핵심 원인으로 꼽힙니다.특히 일을 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1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요.세 모녀 가정과 마찬가지로 이들 대부분이 사고와 질병에 매우 취약합니다. 하지만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돼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습니다.근로빈곤층의 실태를 양성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리포트>지난 2일 저녁, 이 집 1층에 세들어 살던 50대 부부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방에선 타다 만 번개탄과 함께 유서가 발견됐습니다.남편 안모 씨는 간암 말기로 투병생활 중이었습니다. <녹취> 주민 : "구급차에 몇번 실려간 거 봤고, 병원에 가서 링거 맞고 오면, 부부가 같이 가서 링거 맞고... 간암 말기라고 하더라고"이웃 주민들이 안 씨의 신음소리를 들을 정도로 병세는 위독했습니다. <녹취> "아저씨 신음 소리도 들리고, 아파서 괴로워하는 소리도 들리고 했어요"밤무대에서 기타 연주를 했던 안 씨는 몇해 전부터는 택시기사로 나섰습니다.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간암 상태가 악화돼 거의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기타 치러 밤무대 나가다가, (생활이) 어려우니까 택시기사 하다가 또 컨디션이 좋으면 하고, 아프면 쉬었던 것 같아요"부인 이 씨도 간간이 식당일을 하며 남편을 돌봤습니다.하지만 남편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됐고, 경제사정도 더불어 나빠졌습니다.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됐지만 20살 된 딸이 있는 50대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했습니다.<녹취> 구청 관계자 : "아이도 이미 학교를 안 다니니까 근로가 가능하고요. 어머니도 일을 하신다니까 수급자 상당 기준에는 적합하지 않죠."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부부는 질병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부부가 딸에게 남긴 유서에는 미안하다는 말 뿐 세상에 대한 어떤 원망도 없었습니다. <녹취> "먼저가서 미안하다, 다음 생애에도 부모와 자식으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자"서울 마포의 한 단독주택.지난 1일 이 집 1층에 홀로 세들어 살던 67살 정모 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자살이나 타살 흔적이 없는, 고독사였습니다.<녹취> 김영은(이웃) : "며칠 전에 좌우지간 비틀거리고 나가는 거 봤거든. 쓰레기 치우다가, 그러고서는 느닷없이 경찰차하고 구급차하고 들이닥치더라고 그러더니 그냥..."막노동을 하며 월 25만원의 월세방에서 생활해온 정씨 역시 병마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병원 치료나 간병은 꿈도 못 꾸는 처지였습니다.죽음을 예감한 정 씨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모은 돈을 봉투 2개에 나눠 넣어두고 눈을 감았습니다.100만 원은 집주인에게 감사하다는 쪽지와 함께 월세 명목으로 100만 원은 화장해달라는 쪽지와 함께 장례비로 남겼습니다.한 집에 10년 넘게 살던 정씨였지만 절박한 처지를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녹취> 양성모(이웃 주민) : "(한 번도 본 적 없으세요?) 그냥 검시할 때만 봤어요."가족과 연락이 끊긴 정씨를 국가도 돌보지 못했습니다.<녹취> 구청 관계자 : "((정 씨가) 수급자였나요?) 수급자 아니었어요. (신청을 안 해서 그런 거죠?) 일단은 본인이 신청을 해야하는 거고, 그리고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기 때문에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이 좀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다고 봐야죠"다세대 주택에 홀로 세들어 사는 오정란 씨.얼마 전부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녹취> "이게 재단 하는 게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일용직 파출부로 일하면서 일이 없는 날에는 근처 통닭집에서 주방일을 합니다."<녹취>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오 씨가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달 평균 130만원 정도,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생활하기에 빠듯합니다. <인터뷰> "공과금만 해도 세 가지 합치면 전기 수도 가스 하면 십몇만 원 해요." 월세 22만 원 교통비 10만 원, 몸이 건강할 때야 버티겠지만 병이 나거나 사고라도 당할까 늘 걱정입니다. <인터뷰> "제 개인적으로는 의료비, 의료비가 제일 먼저이고, 당장 앞으로 돈 벌 수도 없고 생활이 안되니까 의료비, 그 다음에는 주거형태.."일을 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 14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이들은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센터장) : "근로빈곤층은 소득이 불안정하지만 소득이 있기 때문에 소득이라는 게 기초생활보장비도 현재 수급자격보다 조금 더 높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소득감소가 일어나고 이미 고통이 실현되고 있는 상태에서도 법 제도의 지원을 신속하게 받기 어렵습니다."<질문>세 모녀의 죽음을 비롯해 최근 빈곤자살이 잇따르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죠? <답변>전문가들은 세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 문제가 압축돼 일어났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특히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추정소득제'가 문제로 꼽힙니다.세 모녀의 경우 첫째딸과 둘째달이 현실적으로는 일을 하지 못했지만 현 제도로는 근로무능력자 인정이 안 됐을 거라는거죠.또 우리사회의 복지제도는 '신청주의'를 기본으로 하는데요.하지만 여전히 복지혜택신청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나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문화가 팽배합니다.세 모녀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근로빈곤층의 경우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고요.때문에 '선택주의'는 복지 신청을 주저하게 하거나 막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질문>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일제 조사에 착수했죠?우리사회의 복지는 빈곤층의 자살 같은 안타까운 사례가 누적되면서 조금씩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보건복지부도 이번 일을 계기로 지자체와 함께 3월 한달간 복지사각지대 일제 조사에 착수했는데요.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또 있는 제도를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복지제도 홍보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질문>기초생활수급제가 실시된 지 14년째인데, 수급자는 140만명 안팎에 머물고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제를 아예 손봐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죠?<답변>기초생활 수급자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인데요.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적어야 하고 대도시의 경우 재산이 5,400만원보다 낮아야 합니다.또 돈을 버는 부모나 자식이 있으면 수급대상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제도도 있는데요.이 부양의무제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심사에서 탈락하고 있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생계, 질병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복지사각지대에 내몰린 빈곤층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곤 합니다.완벽하고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빈곤층이 위기상황에서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아버지가 병들면서 시작된 송파구 세 모녀의 고통은 10여년만에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어머니가 팔을 다쳤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세 모녀는 가난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테죠.하지만 이들에겐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비극이었을 겁니다.
    201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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