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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실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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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치정의 공정사회를 이룩하고 사회정의 이룰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우선 수사기관을 찾아가겠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어디에다 호소해야 할까. 이 같은 처지에 놓인 시민들이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함께 글을 올리자는 취지의 모임을 결성해 눈길을 끈다. '청와대 자유게시판 모임'(청자모)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임의 출범을 알렸다.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시민 40여명으로 이뤄진 이 단체는 운수업에 종사하는 이기창 씨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자체적으로 정관도 만들었다. 정관은 이 모임의 목적을 '법치정의 공정사회를 이룩하고 대한민국 사회정의와 국가개조, 국가 변혁 선두주자들로서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법률에 근거한 법치질서 파괴·위협에 대응하고 모든 회원의 신분 제약과 차별이 없이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의 사회악과 부정부패를 일소, 추방, 척결하기 위함'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모두 합심 단결해서 여러분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들, 분통이 터진 사건들, 억울한 사건들을 완전히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의 정관(안)에 대해서 청와대에서 별도의 이의가 없었던 만큼 국무회의 법률안 상정 과정을 적용해 정관이 원안대로 통과됐다"고 대통령을 향해 '선언'했다. 이기창 씨는 "지금까지 청와대 게시판에 각종 사연으로 1천개 이상의 글을 올렸다"며 "앞으로 청와대 앞에서 정기적인 모임과 총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tsl@yna.co.kr 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6&seq_800=10052500 교통방송 보도 http://www.womannews.net/detail.php?number=32970&thread=22r03r01 여성종합뉴스 보도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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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성남시 "행사 지원한 바 전혀 없다" 해명
    27명의 사상자를 낸 판교 테크노밸리 추락 사고와 관련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이 사고 현장에 전문 안전요원이 전혀 배치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경기청 허경렬 2부장)은 19일 오전 행사 주관사인 이데일리 본사와 행사를 주최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이와 함께 이데일리 A 본부장과 경기과학기술진흥원 B 본부장 등 6명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신체영장을 발부해 수색을 벌였다.앞서 경찰은 사고 직후 이데일리와 과기원 관계자 등 20여 명을 소환해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경찰은 참고인 조사를 통해 공연 당시 현장에 전문 안전요원이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관련 서류에는 과기원 측 인원 4명이 안전요원으로 등록됐지만 정작 해당 인원들은 자신이 안전요원으로 배치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행사 요원도 당초 신고된 인원 40명보다 적은 38명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이와 함께 경찰은 이데일리 측이 더 많은 인원이 관람할 수 있도록 무대 구조를 바꾸면서 환기구가 무대 앞으로 오도록 변경한 사실을 확인했다.경찰 관계자는 "공연 주관사가 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지난 10월 무대 위치를 환풍구 앞으로 변경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현행법상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성남시 "과기원과 행사 협의한 바 없어…행사 주최자 아니다"이데일리가 경기도와 성남시의 명의를 도용해 행사 주최자에 포함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은 "성남시로부터 500만 원을 지원받아서 경기도와 성남시를 행사 주최자에 포함시켰다는 과기원 직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그러나 경기도와 성남시는 해당 진술을 강력하게 부인했다.추락사고대책본부 김남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분당구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행사와 관련해 성남시에서 예산을 지원한 바 없으며 성남시는 행사 주최자가 아니다"며 해당 사실을 부인했다.김 대변인은 "과기원 측에 예산 지원은 물론, 행사와 관련한 일체의 협의도 한 적 없다"며 "경찰 조사에서 나온 진술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한편 이날 오전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곽재선 이데일리 회장이 만나 사고 수습 대책을 위한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향후 희쟁자와 부상자 지원을 지원하기 위한 뱡향을 논하는 이번 회의에서 이데일리 곽 회장은 보상 문제를 포함해 지원에 관한 모든 권한을 대책본부에 위임했다.이와 함께 경기도와 성남시 합동 대책본부도 추락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법률지원단을 출범했다.법률지원단에는 장성근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 등 변호사 6명과 노무사 1명 등 7명이 참여하며 종합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법률지원단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요청한 산업재해 적용을 지원하기위해 이날부터 산업재해 보상과 관련한 현장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안전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현장 안전점검도 실시된다.경기도는 시·군부단체장회의를 열고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를 비롯해 각종 행사와 건축물 안정에 대한 특별종합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다.CBS노컷뉴스 조혜령 김민재 기자 tooderigirl@cbs.co.kr
    201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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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국민을 위한 법치 국가가 아니었다!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국민행복시대' 온다는 신념하에 우리사회의 부조리 척결에 앞장서고 있는 단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이하 부추실)는 힘 없는 국민들의 억울한 사건을 해결해 국민의 인권과 청원권을 회복하고 한국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최초로 국방비리를 밝힌바 있는 시민단체로 대한민국 인권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부추실을 이끌고 있는 박흥식 대표는 억울한 국민의 민원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지난 1993년 경실련 부추본 부패감시단 총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서민들의 편에서 억울한 국민의 청원을 해결하지 않는 국회의장과 인권사건을 해결하지 않는 국가인권위원장을 고발한 바 있다.박흥식 대표가 부정부패 방지 및 척결에 남은 인생을 건 데에는 가슴 아프고 억울한 그의 사연에서부터다. (주)만능기계라는 건실한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박 대표는 보일러 관련 뛰어난 기술로 특허 6개 보유 및 신기술고시 등록으로 제25회 발명의 날 상공부장관 공로표창을 수상할 정도의 촉망받던 CEO였다. 하지만 상주군 공성농공 단지에 대규모 보일러 공장을 신축하던 지난 1991년 2월 그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제일은행 상주 지점으로부터 커미션거부에 대한 보복으로 발행 어음에 대한 지급을 거절당하고 부도를 맞은 것이다. 제일은행에 2520만원 상당의 저축예금을 보유한 상태였음에도 제일은행 상주지점은 다음날 거래정지처분을 한 후 대출원리금을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대위변제를 받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채무자가 되어버린 박 대표는 금융기관의 부당한 처분에 대해 1992년과 1994년 금융감독원 측으로 두 차례 분쟁조정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 또는 각하 처분을 받았다. 이후로 박 대표와 국가기관과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1999년에는 은행 측의 어음부도 처리와 당좌거래 정지가 불법이라는 대법원의 승소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은행 측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거부하면서 금감원에 시정명령과 담당자의 고발조치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으로 박 대표는 금감원의 부작위에 따른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국가가 조사해 배상해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을 제15대부터 제18대 국회까지 접수했으나 '국회청원'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유명무실한 제도임을 절감했을 뿐 그가 당한 억울한 사건을 알아주고 해결해주진 못했다. 말 그대로 박 대표에게 대한민국은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었던 것이다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박 대표는 "대한민국 정권 수립후 현재까지 66년간 대한민국 검찰은 소임을 다 하지 못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의 기강이 확립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본인과 같이 억울한 사람이 늘어날 대한민국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다는 결심 하에 정의사회가 구현될 때까지 사회 부조리와 부정부패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로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게 '연간 624만건에 달하는 민사소송을 줄이는 방안'과 '전 박영록 국회의원에 대한 신군부 가혹행위에 대해 원상회복 촉구'를 청원한후 서민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기 위해 청와대와 국회앞에 직접 거리로 나가 국민의 인권과 청원권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왔다.박대표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잘 정리하면서 앞으로 발생되는 국가공무원의 부정비리 사건은 공소시효를 배제해서라도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7년 기준으로 일본보다 약 67배가 많은 형사 사건과 민사소송을 조금씩이라도 줄여가야 서민경제를 회복한다. 제일 먼저 인사를 잘 등용해서 송사를 줄이고 국가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력을 추구해야 할 때다" 라고 강조했다.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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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공동 호소문 발표
    단군릉 개건 20돌을 계기로 2014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가 3일 단군릉앞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공동행사에서 김영대 위원장과 김인환 남한 천도교중앙총부 종무원장이 축하연설을 했다. 연설자들은 "공동선언이행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때 불신과 대결의 장벽은 허물어지고 조국통일의 새날은 반드시 밝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공동행사에서는 해내외 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발표됐다. 호소문은 "조선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역사를 고수하고 빛내며, 온 겨레가 굳게 뭉쳐 애국애족의 기치밑에 남북공동선언들을 철저히 고수이행해 자주통일과 민족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강조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회장인 김영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김완수 위원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북측본부 최진수 의장, 개천절민족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김삼열 상임준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남측 대표단 등이 참석했다. 통일부는 이달 1일 개천절 남북 공동행사 참석을 위한 우리 측 김인환 천도교 중앙총부 종무원장, 김삼열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상임대표, 김우전 광복회 고문 등 36명이 방북을 승인했다. 밝은세상뉴스 man4707@naver.com
    201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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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원자력연구원 A연구원이 제출한 국외출장 보고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최근 문화재청 직원들의 외유성 국외출장 실태를 한 언론사가 보도했습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신의진 의원실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 문화재청 직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문화재청 직원이 외국에 나가 문화재를 둘러보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국외출장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국제회의가 있고, 특정 업무 수행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자료수집이나 견학, 참관이 있는가 하면, 포상이나 격려 차원의 출장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후자, 즉 단순한 견학이나 참관, 포상 차원의 출장이 늘었다는 게 신 의원실의 분석입니다.예산을 보면 그렇습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외유성 짙어 보이는 국외출장 예산이 10억1,714만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단순한 견학이나 참관, 포상 차원의 출장 예산이 최근 몇 년간 부쩍 늘고 있습니다. 2013년 예산은 2010년과 비교해 60% 넘게 늘었습니다. 이 기간에 문화재청과 산하 기관 직원들 577명이 국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연도 별로 보면, 2010년엔 89명이었는데, 2013년엔 221명으로 외국물을 먹고 온 사람이 늘었습니다. 견학이나 참관, 이런 건 사실 국외출장이라기보다, 국외여행 아니냐는 게 의원실 지적입니다.어디를 갔느냐, 왜 갔느냐를 보면 외유성이라는 의혹이 짙어집니다. 직원들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가장 많이 간 나라는 스페인입니다. 매년 빠지지 않고 방문했습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두 번씩 스페인을 가서, 5년간 모두 7차례 스페인 국외출장이 있었습니다. 출장 사유는 비슷했습니다. 2010년엔 해외 선진유적지 정비사례 조사, 2011년엔 스페인 문화유산 보존관리 현황 조사, 2012년엔 지자체 문화재 보존관리 역량 강화, 2013년엔 주요 선진국 자연유산 보존관리 현황 조사 및 선진 우수 사례 조사, 그리고 올해는 근현대 문화유산의 등록 유형 다양화를 위한 문화유산 보존 활용 실태조사입니다. 출장보고서를 꼼꼼이 읽지 않고서는 상당히 헷갈립니다.스페인은 한 번 갈 때마다 4~8명의 직원이 함께 갔습니다. 기간은 짧게는 7일에서 길게는 13일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올해 4월 11일부터 19일까지는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직원들이 이탈리아로 자료를 수집하러 출장을 떠났는데, 여기에 기획재정을 담당하는 직원이 1명 있었다고 신 의원실은 지적했습니다. 국외출장때 슬쩍 끼어 가기라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궁과 유적 관련 기관을 방문해 궁능을 담당하는 우리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 출장 목적이었는데, 뜬금없이 기획재정 담당 공무원도 이 역량을 함께 강화한 셈이 됐습니다.공무원은 국외출장을 다녀오면 정해진 기간 안에 보고서를 써서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부 보고서는 마치 대학 리포트처럼 베끼기를 통해 반복 재생산됩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간단히 복사해 붙여 넣은 보고서를, 신 의원실 보좌진이 찾아냈습니다. 한 공무원은 국외출장 보고서에 이렇게 기록했는데,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온 글과 완전 똑같습니다. 아, "프랑스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라는 문구를, "가장 인상 깊은 건물 중 하나로"로 창의적으로 개작했군요. 어미도 살짝살짝 손댔네요, 못 찾을 뻔했습니다."가장 인상 깊은 건물 중 하나로, 페르난도 3세가 1227년 건설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이 되풀이 되었으며, 현재 에스파냐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건물의 규모는 길이 113m, 너비 57m, 중앙의 높이 45m에 이른다." (문화재청에 제출한 국외출장 보고서)"프랑스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페르난도 3세가 1227년 건설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증축와 개축이 되풀이되었다. 현재 에스파냐 가톨릭의 총본산이며 건물의 규모는 길이 113m, 너비 57m, 중앙의 높이 45m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사실 이런 얼렁뚱땅 국외출장 보고서는 비단 문화재청뿐만이 아닙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연구원으로부터 받은 국외출장 보고서를 보면, 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책임연구원이 요르단 암만에 다녀온 뒤에 작성한 국외출장 보고서 내용입니다. 내용이 워낙 간략한데, 제가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 아니라, 이게 전부입니다. 국외출장 기간은 1주일입니다. 요르단에서 무슨 일을 하고 오셨는지는, 아직도 미궁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A연구원이 제출한 국외출장 보고서■ 파견지역- 요르단(암만)■ 파견목적- JRTR 사업 1차 PRM■ 수행업무- 사업 진도 점검회의 및 기술현안 회의, 유체계통 설계분야 설계 진도 발표■ 수집자료 및 내용- 회의록 미제출■ 성과 및 기대효과- 설계 진도에 대한 상호이해 증진, 환경 데이터 수집의 필요성 설명 및 협력 유도이렇게 보고서를 몇 줄이라도 써서 내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미래부 산하 지질자원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2012년 9월 15일부터 23일까지 유럽 3개국에 국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친환경 우수국가인 독일과 벨기에 등 유럽의 자원 순환 관련 환경정책을 조사하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또 지난해 1월 19일부터 26일까지는 국제 위탁연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인도를 갔다 왔습니다. 이 연구원은 이렇게 일주일씩 유럽과 인도를 다녀왔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간단한 보고서조차 내지 않아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경고를 받았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은 자체 감사에서 이런 보고서 생략 실태를 지적할 정도입니다. "국외출장 귀국보고서를 늑장 제출하는 사례가 많다, 독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국외여행을 국외출장으로 미화하는 실태, 물론 이런 일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긴 합니다. 대통령령인 '공무 국외여행 규정'에 따라, 단순한 참관이나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한 국외출장은 여행 타당성을 심사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도록 한 겁니다. 이 심사위원회는 기관의 감사와 인사, 국제업무 담당 부서장을 포함해야 합니다. 또 '공무 국외여행 업무 예규'에 따르면, 업무에 관한 지식 및 국제적 시야·경험을 넓히기 위한 국외여행은 사전심사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각 기관마다 이런 사전심사를 형식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입니다. 사전심사를 가장 쉽게 무력화시키는 것은 심사위원 구성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규정에 따라 국외출장 사전심사위원회를 꾸리되, 부서장이 아니라 연차가 높지 않은 직원들을 위주로 구성하면 됩니다. 간단한 꼼수입니다. 기관 내부에서 알아서 하는 거라서, 외부 감독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 상사들이나 임원급이 결재 올린 출장 심사에 부적합 의견을 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병장이 휴가 가겠다는데, 일병이나 상병이 어디 부적합 의견을!미래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사례를 보면 이렇습니다. 국외출장 사전심사위원회 명단을 받아봤더니 총 7명으로 돼 있습니다. 위원장은 부장급입니다. 아래 직원들도 많지만, 위에 선배들도 상당히 많은 중간 위치입니다. 나머지 심사위원 6명은 부장 아래 팀장급입니다. 부장 위에 본부장, 그리고 그 위에서 임원이 가겠다는 국외출장은 사실상 원안 통과입니다. 하이패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국외출장을 서류로 사전 심사한 결과들을 봤더니, 심사위원이 부적합 의견을 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예스맨입니다. 사전심사는 심사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행정 절차가 됐습니다. 감사원도 이런 문제에 공감해서, 지난 2011년 전자통신연구원에 대한 감사에서 심사위원회를 감사와 인사, 국제업무 담당 '부서장'을 포함해 구성하도록 통보했지만, 지금껏 변화는 없습니다.저희 기자들도 회사 예산으로, 혹은 외부 기관 예산으로 가끔 국외출장을 갑니다. 출장 가면 일도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생경한 풍경과 새로운 먹을거리도 재미납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과를 요구받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국외출장 갔다 와놓고, 가봤더니 경치는 좋은데, 기사는 안 되던데요? 기사 안 쓰면 안 될까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낸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을 모아 일주일간 스페인과 터키, 독일과 벨기에, 인도를 다녀와 놓고, 출장보고서 대신 머릿속 추억만 남기는 국외출장. 납세자들은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국외출장, 필요한 건 가야겠지만, 먹튀 방지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겠습니다. 박세용 기자psy05@sbs.co.kr
    201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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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에 재산 몰수당하고 컨테이너 생활 12년째…
    의원들에게 구제 동의요청서 보내 “정치판과 이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독재 세력이 박혀 있는 게, 깡패 사회보다도 못한 거여. 벌써 내 나이 아흔셋이야. 죽기 전에 잘못된 것 바로잡아야 하는데….” 지난달 31일 국회 헌정회관에서 만난 박영록 전 국회의원(93)은 또박또박 목소리를 높였다. 군사정권 아래서 반독재활동을 하던 박 전 의원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감금당하고 재산을 빼앗겼다. 2003년부터 12년째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6m² 크기 컨테이너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여름엔 실내온도 40도가 넘고 겨울엔 얼음이 언다”면서 “오늘 같은 날에 ‘찜통’이 되는 컨테이너보단 여기가 훨씬 나아서 매일 출근하다시피 온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1963년에 국회에 입성한 그는 1979년 신민당 부총재를 지낸 야당 정치인. 전두환 신군부의 눈 밖에 난 그는 1980년 7월 18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의원 사직서를 냈다. 애국공원을 만들기 위해 매입했던 서울 노원구 상계동 땅은 ‘18억 원 상당 부정축재’로 부풀려져 몰수당했다. 1992년부터 9차례 재산을 돌려받기 위한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박 전 의원에게 사과하고 재산을 반환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관련 부서인 국방부와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는 관련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전 의원은 “땅을 다 뺏겨서 이젠 동전 한 푼 없다. 둘째 아들은 ‘제대로 못 모셔 죄송하다’며 자살했다”면서 “이런 일을 법률이 아니라 고작 행정처분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보다 못한 전직 국회의원들이 발 벗고 나섰다. 국회 전현직 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 회원들은 지난달 28일 ‘박영록 명예회복 추진본부’를 만들어 피해 구제조치를 촉구하는 동의요청서를 전현직 국회의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현재 현역 의원 30여 명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 문태성 추진본부 사무총장은 “현역 의원 과반의 동의서를 받으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소를 올리고 9월 정기국회에서 청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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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 피해 구제조치 촉구에 앞장서다!
    박영록(93) 전 국회의원의 명예회복이 추진된다.명예회복 추진본부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 피해 구제조치를 촉구하는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박 전 국회의원의 명예회복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명예회복은 국회의원·헌정회 회원 서명운동, 촉구대회, 국회 청원 등으로 진행된다.추진본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전두환 군부의 가혹행위 및 재산 강제 헌납행위'에 대해 2009년 5월 피해자와 가족에 사과, 재산 강제헌납 등 피해에 대해 적절한 구제조치 등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정부는 "관련 법률이 없다"라며 5년이 넘도록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이 때문에 박 전 국회의원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 골목의 6㎡ 크기 컨테이너에서 여름 찜통더위와 겨울 한파를 견디고 있다고 덧붙였다.문태성 추진본부 사무총장은 "돌려받은 땅에 애국지사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박 전 국회의원의 평생 숙원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할 각오"라고 말했다.박 전 국회의원 강원 원주 출신이고 초대 민선 강원도지사, 국회의원 4선, 신민당 부총재, 평민당 부총재,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2007년에는 참여시민연대 '대한민국 청렴 정치인 대상'을 받기도 했다.박 전 국회의원은 "이번 기회에 잘못된 역사를 밝히고 남남갈등을 해결하는 계기로 삼겠다"라고 말했다.byh@yna.co.kr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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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대 국회 오전 국회의사당 중앙홀 제헌절 경축식을 열다!
    이날 행사에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정홍원 국무총리,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과 여야 지도부 등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정 의장은 경축사에서 "국회가 대한민국 개혁의 중심이 돼 정의롭고 화합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며 승자 독식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여야의 초당적인 협력을 당부했다.이어 "국회 개혁을 위해 국회의 특권은 모두 내려놓고, 의원 겸직도 국민들이 양해할 수 있는 최소한에 그치도록 하겠다"며 "국회의원의 청렴 의무와 국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 제46조의 정신으로 직무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의 조속한 제정도 촉구했다.정 의장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 대한민국을 바꿀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새로운 가치관과 기풍의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국회는 제헌절을 맞아 이날 방문객들의 의사당 앞쪽 1층 출입을 허용했다. 주말과 공휴일에 국회 잔디마당을 방문객에게 개방하는 내용의 '열린국회 선포식'도 개최했다. 국회가 일반 방문객들에게 의사당 앞쪽 1층을 개방한 것은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립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다. 이승윤 기자 leesy@lawtimes.co.kr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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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정식적인 기사 보도를 안하는 피해 사례
    http://www.civilnet.net/xe/index.php?mid=board_free&document_srl=31161 시민단체의 끝과 시작, 온 국민과 함께하는 희망의 한판승!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박흥식 대표 (주)만능기계 오너로서 보일러계 관련 특허6개 및 신기술고시등록으로 발명의 날 상공부장관 공로표창 수상등의 박 대표는 1990년 경북 상주군에 대규모 보일러 공장을 신축하던 해 제일은행 상주 지점에서 어음을 결제할 당시 제일은행에 ‘91.2.12. 꺾기 한 저축예금(금감원과 제일은행은 2,520만원짜리 통장 1매와 부도처리후 결재한 어음 7매를 반환하지 않고 있다)잔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측의 고의 부도로 회사 문을 닫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사실이 대법원에 의해 “부도처리가 잘못되었음”이라는 원심판결이 1999년 확정됐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일은행과 기술신용보증기금에 대해 (주)만능기계의 부도처리 및 경매로 인한 피해를 원상회복하라는 시정조치와 고발을 안하고 있다. 박 대표는 대통령 이하 서울시장과 담당공무원은 국민이 법으로부터 소외를 당하여 억울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기초생활지원과 억울한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 주기를 청원했다. 국가공무원이 국민을 상대로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여 신성한 법정에서 사기소송까지 하는 범죄등은 공소시효배제등 법령을 개정해 주기바라며, 18대 국회가 채택한 ‘금융분쟁조정기관의 부작위에 따른 피해보상에 관한 청원’을 하고 지난 2010년 7월 국회에서 ‘법 소외 극복을 위한 대안마련 토론회’를 개최한 후 민원을 접수했다, 청원심사 결과 통지를 안한 ‘인권침해 및 차별대우’에 대해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으나, 동 위원회는 국회를 상대로 “부작위위법확인”등 행정소송을 했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이에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처분취소 소송을 했는데 행정법원은 위원장을 상대로 하는 피고의 적격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진정할 당시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해 법원의 재판이 종결된 경우에 해당함’이라는 위헌성 판결에 대해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국가인권위원회진정기각등처분무효확인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까지 신청하여 귀추가 주목된다.
    20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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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감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좀 더 객관적인 시각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초빙교수 신분으로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커질 전망이다문 후보자는 올해 3월부터 서울대에서 '저널리즘의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했다.그런데 문 후보자가 중간고사가 진행될 때인 올해 4월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굳이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문 후보자의 수업을 들은 서울대 학생 A씨는 "문 교수님이 '우리나라는 예전과는 다르게 선진국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굳이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일 정도로 나약하지 않은 국가가 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A씨는 또 "당시 강의에서 문 교수님은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언론인이다'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반일감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국제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벌언도 나왔다.문 후보자의 편향된 역사 의식은 지난 2005년 3월 7일 쓴 '나라의 위신을 지켜라'란 제목의 칼럼에서도 드러난다.당시 3·1절을 맞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를 언급하며 배상문제를 거론한 것을 놓고 문 후보자는 "위안부 배상문제는 이미 40년 전에 끝났다"며 "끝난 배상문제는 더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당당한 외교"라고 비판했다.또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다"라고 썼다.이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일본의 태도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며 적극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현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UNHRC) 연설을 통해 우리 외교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직접 제기하기도 했다.문 후보자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용서라는 게 공식 사죄를 하고 인정을 해야 용서를 하는 거 아니냐"며 "일본에서 아무런 사죄나 인정을 안 하고 오히려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문 후보자는 또 3년 전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 특강에서도 "일제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는 등 편향된 역사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문창극 후보자 측은 CBS노컷뉴스의 확인 요청에 "모든 것은 인사청문회에서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sdjinny@cbs.co.kr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 국무총리 자격없어 항의] http://www.youtube.com/watch?v=IJSS0MZnols&feature=youtu.be 이하 강의전문.◇문창극 후보자=제가 이렇게 강단에 설 자격이 없다. 여기는 다 목사님이 서야 하고 하는데 저한테 전화가 왔다. (중략) 나라를 위해서 뭐를 기도해야 하느냐, 기도하는 제목을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다, 부탁을 받았다. 다음 주에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걸로 아는데 제가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길을… (중략) 나라를 위해서 왜 기도를 해야 하느냐. 우리는 각자 개인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지요.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를 한다. 왜 기도를 하느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알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서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걸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가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나라라는 것은 뭡니까. 저는 비행기 어떤 때 타면 3등칸을 주로 타지만 가끔 어떤 기회가 있어서 2등칸을 타게 되면 또 굉장히 대우가 다르더라고요. 1등칸을 다르면 아마 더 대우가 달라지겠지요.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3등 나라에 3등칸에 있는 손님이 되고 1등칸에 타면 1등칸에 탄 승객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1등칸에 타면 서비스도 훨씬 좋고 편하고 얼마나 안락합니까. 우리가 1등의 나라를 만일 만든다면은 1등의 나라 안에서 저희들은 개개인의 삶의 고통과 개개인의 삶의 고민을 3등 나라보다는 우리가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가 복받은 나라가 돼야 한다는 기도를 우리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한국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켜가지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무엇에 쓰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먼저 기도의 방향이 될 것 같다. 그 뜻을 알아야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겠나.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그런데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런 것을 어렴풋이나마 우리가 알 수 있을 겁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은 그럼 대한민국에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거를 저 나름대로 한 번 찾아보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우리는 1890년 그 때가 처음 선교사님들이 이 나라에 오신 때입니다. 1890년 그 이전에, 이조 말기, 고종 때, 그 이전에는 사실상 선교사님들이 아주 가끔 왔찌만 당시 조선에 상륙을 못했다. 배를 타고 있다 돌아가고, 쇄국정책 때문에. 1890년에 선교사님들이 오시게 되시면서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189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됐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제목을 놓고 제가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란가. 저는 가만히 돌이켜보면 고비고비 마다 구비구비 마다 하나님의 뜻의 분명히 있었다 라는 것을 저는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 민족한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신 것이다. 또 고난을 주신 다음에 또 하나님은 우리한테 길을 열어주셨어요.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중요 고비마다. 그러면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라는 것은 지금까지 구비구비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됐다. 그 기회가 돼가지고 지금 이 나라가 왔다.먼저 조선말의 풍경을 하나 말씀드리겠다. 제가 책을 찾아가지고 조선말의 풍경에 대해서 한 두 가지만 먼저 알려드리겠다. 1832년에 영국 상선 암허스토호 배가 우리나라 몽금포, 저 황해도 서해에 왔다. 그 때 거기에 선교사가 동승을 했다.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다. 1832년이까 순조 31년이다. 퀴츨 라프이다. 이 사람을 조선을 어떻게 봤냐. 자기가 북경에 가서 보고서를 냈는데, 조선에 대한 현실을 이렇게 썼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 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피부는 어김없이 때로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달씩 씻지 않아서 이 따위의 해충이 득실댔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해충을 잡아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이 1832년이 선교사님이 우리나라 서해 몽금포에 와서 북경에 자기네 선교본부에 보고한 조선말의 상황이다.그 다음에 30년 뒤에 1874년에 달레 신부라는 분이 왔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이다. 한국에 와서 한국을 삭 보고나서 ‘꼬레의 교회 역사’, ‘코리아의 교회 역사’사를 썼다. 거기에 1874년의 조선의 상황을 제가 또 읽어드리겠다. 창고에 저장은 장부상에만 있다. 지방 병기고에는 쓸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먹고 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 나부랭이를 대신 갖다 놨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만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밀수업자에게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다. 길 마다 송장이 널려 있다. 이것이 1874년 달래신부?가 본 한국의 현상입니다.그다음에 1890년대에 또 한 분이 왔어요. 이 분이 비솝여사라고 영국 분인데 이 분은 책으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비솝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다 샅샅이 들여다 봤어요. 이 사람은 부산에서부터 저 신의주, 강개? 넘어가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던 분이에요. 그래서 책을 한 권 냈는데 이 사람이 부산에 와 보니까 한국이라면서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그 하수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나라고 자기가 놀란 것은 그 당시 일본인들이 거처하는 동래라고 있습니다. 부산 동래가 옛날에는 일본인들이 거기에 거처했었습니다. 동래를 가보니까 동래현에는 그렇게 깨끗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야, 일본은 이렇게 일본인 사는 지역은 이렇게 깨끗한데 어떻게 한국사람들이 사는 이 부산진?에는 이렇게 더러우냐 . 놀라서 썼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서울에 와서 서울구경을 또 했습니다. 서울도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풀풀 나서 다닐 수가 없는 정도로 서울이 그 당시 더러웠습니다. 그게 언제냐. 지금부터 100년 전 일입니다. 100년 전 한국이 그런 나라였습니다.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서 영월까지 갔어요. 영월까지 배를 타고 갔는데 그 당시 서양여자라는 건 보기가 힘들었잖아요. 중간중간 내려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서양 여자귀신이 왔다 그래서 구경을 하려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빈대, 이같은 것 때문에 잘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동네 사람들이 문을 전부 다 구멍을 뚫어서 문을 보느라고, 다 보느라고 눈이 그러니까 창호지에 눈이 몇 십 개가 이렇게 있는 거죠. 사람이 하도 밀려서 그 문이 이렇게 완전히 방 안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이 사람이 한국여행을 했는데 양평을 갔습니다. 옛날에 군수가 있고 그랬는데. 거기 가서 아까 읽어드린 것처럼 그 군 사정을 알아봤는데 그 조그만 군에 이방 이런 것 있잖아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렇게 볼기치는. 이런 이방 사람들이 800명이나 있다는 거야. 이 조그만 군에 이방이 800명씩이나 되면 그 사람을 누가 다 먹여살립니까? 다 백성들이 먹여살리는 거야. 그 백성들이 집에 뭘 가지고 있는지 이방들은 다 안대요. 이 사람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장 담그는 독이 몇 개. 아주 낱낱이 잘 알고 있대, 이방들이. 그리고 이방들이 그 집에 조금 뭐가 생기잖아요. 농사 열심히 지어서 뭐가 좀 생기면 그 이방이 부른다는 거야. 불러서 그냥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거예요. 곤장을 쳐, 왜 치느냐. 자기는 모르겠다는 거야, 왜 치는지. 그런데 이방이 하는 얘기가 네 죄는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알렸단 말이야. 어떻게 이방이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아니까 고해라, 그래서 곤장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쌀이라도 한두 말 있으면 다 뺏긴다는 거야.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왜? 일을 하면 다 뺏기니까. 그러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암만 노력해봐야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세월은 가라, 이렇게 되어 있는 거야.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 가보고 평양을 지나서 대동강을 따라 올라가보고 조선 상황은 똑같았습니다.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그 당시 연해주, 지금 소련(러시아) 있는 데죠. 블라디보스톡 갔는데 당시 거기에도 한국에서 이민간 사람들이 북간도, 연해주에 그 때 이민을 많이 갔거든요. 거기를 둘러봤어요. 조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사냐. 그랬더니 연해주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 가보니까 깜짝 놀란거야.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그렇게 게으르고 그렇게 아주 그냥 하루 삼류민족,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민족이 연해주에 사는 조선민족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산다 이거예요. 이야, 조선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정말 놀랐다. 그러면 왜 연해주에 있는 조선인은 그렇고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나라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야.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라가 백성이 뭐만 생기면 볼기를 쳐서 뺏으니까 일을 안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나라를 떠나서 자기들끼리 모여사니까 그렇게 잘 사는 거야. 그래서 조선민족을 자기는 다시 봤다, 이런 얘기를 한 걸 제가 책을 읽었습니다.이것이 사실은 한국, 우리의 전신 조선의 말의 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조금 더 그 시절을 하면 1904년 고종이 그때 있었습니다. 민비도 그때, 민비는 죽었죠. 1895년에 을미사변인가요. 그걸 뭐라고 하죠. 민비시해사건, 우리가 민비를 지금은 무슨 굉장히 많이 높이잖아요. 민비에 대해서. 명성황후 이래가지고 오페라 같은 것도 있고 그러는데 그런데 그 당시 왕은 그럼 어땠느냐. 왕도 똑같았어요.그 당시에 윤치호라는 분이 일기를 쓴 게 있어요. 쭉. 그 사람은 스물 몇 살 때부터 죽을 때 까지 일기를 썼어요. 그게 우리 귀한 자료가 됐는데 그 사람은 전부 다 영어로 일기를 썼어, 그 당시에. 왜? 한국말로 쓰면 혹시 나중에 잘못되면 그것 가지고 누가 흉잡을까 봐 1890년대 영어로 전부 일기를 썼어요, 매일매일. 그런데 그 사람이 쓴 일기에 당시 고종과 민비에 대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얼마나 그 당시 왕궁에는 점쟁이, 무당, 내시, 이런 사람들만 버글버글 한 거예요. 1904년에 러일전쟁 일어나지 않습니까?러일전쟁 일어나면 자기가 왕이면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될 거냐, 조선은 이제 러시아에게 먹히는 거냐, 일본에게 먹히는 거냐 조선이 정신을 차려야겠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자기가 생각을 하고 당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니까 기도는 안 하더라도 지도자로서, 왕으로서 자기가 진짜 뭘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얘기를 들어 보면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을 하느라 바쁘다. 이걸 이 사람이 일기에 쓴 거예요. 우리 고종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능하고 그렇게 나약하고 그렇게 타락한 사람이었다, 이거예요. 민비라는 사람 똑같아요. 그 다음에 민비가 죽기 전에 이 사람 민비에 대해서 평을 하는데 영리하고 이기적인 이 여인은 미신을 섬기는 것의 반만큼 백성을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했을 것이다. 민비라는 사람도 백성을 섬기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고 전부 다 미신 섬기는 것. 지금 덕수궁 자리, 그리고 경기여고 자리가 경운궁이었거든요. 러시아에서 아관파천을 하고 경운궁으로 옮겼어요, 고종이. 1907년 이때 쯤에. 그런데 그 옮길 때 그 즈음 1900년대의 덕수궁과 경운궁, 지금 시청 부근이죠. 시청 부근에는 그렇게 점쟁이와 무당이 들끓었대요. 왕이 점쟁이와 무당을 좋아하니까 점쟁이하고 무당만 있는 거야. 백성들은 그 사람들 먹여살리느라고 세금 내야 되고. 이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어요. 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대신 뭐냐 있었느냐. 왕과 왕비, 세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이것이 민비의 자세였다, 이거예요.제가 책을 읽어보니까 그 당시 민비라는 사람 죽고 나서 또 고종이라는 또 엄비인가 그 사람들이 대신을 했는데 얼마나 나라에 대해서 무책임하느냐 하면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 먹어도 좋다.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우리 왕실, 그러니까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게 조건이었어요. 1910년 한일합방할 때의 가장 큰 조건, 이완용이 그 조건을 들고 일본하고 협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거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 나라가 없어 지는 거예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 지면 조선의 국왕이라는 것, 대신이라는 것 다 없어 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거야. 그리고 일본에게 나라, 조선을 너희들한테 바칠텐데 이 씨 왕조만 살려달라,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러면 나라를 다 너희들한테 갖다 바치겠다. 그래서 갖다 바친거예요, 사실.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 그런 나라에서 100년 전, 이게 오래된 나라가 아니에요.100년 전에 그런 나라였어요. 이런 나라에 들어 온 게 뭐였느냐.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 기독교가 들어 온 거야. 그 때 기독교가 들어 왔어요, 선교사를 통해서. 이승만 박사 전기 같은 것을 읽어보면 그런 게 잘 나타나 있어요.이승만 박사가 처음에는 이 사람은 그 당시 과거를 보려고 했어요. 과거를 보려다가 과거를 안 봤어요, 못 봤어. 과거를 안 보고 어렸을 때 눈병이 났는데 이 사람이 눈이 멀게 돼서 아무 것도 안 보여. 그래서 이승만 박사 그 어머니가 깜짝 놀랐어요. 이거 큰일났구나. 네가 외아들인데 네가 이렇게 눈이 벌면 봉사가 되겠구나. 그래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해보고 해도 안 낫는 거야. 그 이승만의 어머니가 큰일 난 거예요. 그런데 수소문을 해보니까 서양 선교사가 왔다는 거예요. 의사인데 그 양반, 그 분은 뭐든지 병을 잘 고친다더라. 그래서 이승만 데리고 서양 선교사에게 갔습니다. 의사에게. 그래서 서양선교사가 약을 발라주고 집에 가 있어 보라고. 그래서 가 봤어요. 며칠 지났어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승만이 이만한 애가 문을 열고 어머니, 내 엄마가 보여요.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네가 정말 내가 보이니? 네가 눈을 떴구나. 이승만 엄마가 그렇게 기뻐한 거야. 그래서 너무 너무 고마워서 이승만을 버리고 그 선교사에게 갔어요. 그냥 가지 않았잖아요. 그때 어머니 이런 분들 다 이렇게 계란 한 줄 이렇게 가지고 갔어요. 이승만 어머니도 계란 한 줄을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에게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 눈을 이렇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선교사에게 갖다주니까 선교사가 그거 계란은 당신 아들 먹이세요. 당신 아들이 눈이 먼 건 영양부족 때문에 그런 거예요. 계란은 당신 아들 갖다 먹이세요. 그렇게 해서 계란을 안 받았어요.그때 이승만이 깜짝 놀란거예요. 이야, 서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저 선교사라는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냐. 나는 과거를 봐서 썩어가는 나라를 고치려고 했는데 지금 과거볼 때가 아니구나. 이 선교사라는 건 뭐고 서양의 의술이라는 건 뭐냐. 완전히 머리가 180도달라졌어요. 그래서 과거를 다 때려치웠어요. 과거 공부도 때려치우고 이승만이 어디 들어 갔죠? 배제학당을 들어 갔어요. 배제학당 들어 가서 신학문을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무슨 독립협회니 이런 가입을 했잖아요. 그런데 23살 때 감옥에 들어 갔어요. 왜 들어 갔냐. 고종에 대한 반역죄, 이런 걸로 들어 갔는데 그래 가지고 1907년에 6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거예요. 그때 조선 은 이미 러일전쟁 일어났지 이미 조선은 일본에 먹히게 될 상황. 그래서 이 사람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썼어요. 감옥에서 29살 때. 지금 읽어봐도 아주 뛰어난 책이야. 그러니까 이승만이라는 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분이었던 것 같아, 젊었을 때. 제가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네가 쓰라고 해도 그것보다 못쓰겠어요. 29살 때, 100년 전 이승만이 그걸 썼어요. 썼는데 거기에 결론이 뭐였냐. 결론이 있어요. 그 결론이. 독립정신, 마지막 부분 결론입니다. 그걸 읽어드리겠습니다.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에서 일어나고 썩은 데에서 싹을 틔우고자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지 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 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건국 4237년 6월 23일. 이게 1904년에 쓴, 1904년에 이런 글을 쓴 거예요. 이 사람 결론이 뭐였느냐. 이승만이 20세 때의 결론이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되겠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서는 조선은 살아날 길이 없다. 이 사람이 결론을 내린 거예요. 결론을 그렇게 내렸어요. 이승만이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합방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가지고 일본이 차지하게 됐죠.그런데 그때도 그러면 왜 그럼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그런데 저는 아까 말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거예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이거예요. 우리가 지금 와서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핏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서 지금 이것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게, 지금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 기독교가 들어 온 반면, 그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것은 일제 시대 때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 걸 하나의 모토로 삼았습니다.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저는 어렸을 때, 요즘에는 찬송가에 그런 게 없어요. 찬송가, 그 당시 1930~40년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지금 우리 찬송가에 있습니까? 일하러 가세~ (노래 부름) 기독교가 뭡니까? 기독교가 우리 조선 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그걸 깨우쳐 준거야. 스콜필드 박사라는 분이 선교사였는데, 일제 때.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조선 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셨다고. 아마 양반들이 옛날 청나라 사람처럼 손톱을 안 깎은 모양이에요. 우리나라 양반들이.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시면서 너희들이 선택해라, 이렇게 하나님 말씀하셨다. 그런데 조선 민족은 애닳게도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긴손톱을 선택했다. 양반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민영익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비의 친척되죠. 일제 말에 굉장히 높은 벼슬도 하고. 이 사람은 일을, 물론 그때 양반들은 아무도 일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양반들이 일하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면 양반들은 뭐하느냐. 긴 담뱃대에다가 담배 피우고 그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앉아가지고 독경, 독경이 아니고 감독? 같은 걸 합니다. 그것만 하느냐. 그러면 또 이렇게 하여튼 게으른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거야. 그런 게으른 것을 우리 기독교 정신이 들어 와서 그걸 깨자고 한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당시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이 양반 자제겠죠. 일본 유학가서도 일을 하느냐. 일을 안 해. 조선 민족의 그 못된 관습 때문에. 일을 안 해. 일을 안 하고 뭐하느냐. 지금 제가 또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선 지식인이 어떤 거였나, 그 당시. 조선 유학생 90%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에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일 것이다. 이거 윤치호 일기에 나온 거예요.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일본 가서 유학했을 때 공학을 한다거나 의학을 한다거나 진짜로 우리가 이 나라가 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것 아닙니까? 과학을 한다거나. 그런 것 아무 것도 안 하는 거야. 사회학, 철학, 정치학 그거 뭐냐. 다 혓바닥 놀려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 그거야. 그게 우리 조선사람들 엘리트들의 생각이었어요.윤보선이라는 대통령 아시죠. 그 사람이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을 나왔습니다. 문학을 했어요. 그 사람은 집이 백 칸이 넘는, 백칸짜리 집이에요. 안국동에. 그런데 이 사람이 부자니까 영국가서 뭘 했느냐. 문학을 했어. 문학을 했는데 그 때 문학을 하면서 집에 다가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학비를 보내라고 했는데 800파운드, 그 당시 아마 한 학기하고 생활비하고 800파운드였던 모양이야. 아마 쌀이 100가마 이상 되겠죠. 그걸 이제 보내라고 한 거야. 그걸 보고 통탄을 하였네, 윤치호가.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서 그것도 영국 에든버러에 가서 문학을 하다니, 지금 우리나라가 당장 필요한 거는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떻게 해서 든지 국권을 회복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문학을 네가 선택하냐, 꾸짖는 편지를 쓴 게 있어요. 우리나라 그 당시 지식인들이 라는 게 다 똑같았어요.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또 버전업을 시켰느냐 하면, 이 윤치호라는 사람은. 조선유학생들이 일하기가 싫다, 이거야.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 좋아한다 이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윤치호라는 사람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는 거다, 체질상. 왜 그러냐.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자기 일 안 하려고 하잖아. 정부가 세금 내라고 해서 세금 내서 나니까 어떻게 해서 든지 놀자고 하는 게 공산주의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력과 땀으로 일해야 하는데 돈 번 사람들은 다 우리 것을 착취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 것 뺏어서 우리가 먹자. 그게 아주 심플하게 얘기하면 그거 아니겠어요? 조선의 과거 조상들의 그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는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조금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 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버전의 볼셰비즘, 공산주의죠. 공산주의는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 이조 말기에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게 아주 몸에 박혀 있었대요. 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가지고 변화를 시킨 거야. 제가 국립민속관인가요? 경복궁에 있는 것. 거기에서 재작년에 무슨 사진전이 있었어요.사진전을 가봤는데 그게 뭐냐 하면 북간도에 명동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거기에 한 100 몇 명이 처음 가서 정치학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학을 해서 자기들이 일궈 나갔느냐 하는 것을 그 후손이 사진을 전부 다 발견을 했어. 그래서 사진전을 연거야. 거기에 가보니까 그 당시 북간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정말 감명스럽더라고요. 이렇게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났는데 선교사님들, 거기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김약연?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한 120명 5가구를 끌고 가서 거기에서 교회를 만들었어요. 명동교회를 만들고 명동학교를 만들고 명동유년주일학교를 만들고 명신여학교를 만들고. 사진전을 했는데 이렇게 아까 이가 득실거리고 냄새가 나니까 조선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애들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전부 다 여학생들에게는 세라복을 입히고 실험실에는 전부 다 실험복을 입혀서 비커 이런 실험 기구들이 다 차 있고, 애들도 악패?를 만들어 가지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서 지휘복을 입혀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가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거기에서 잘 살았어요.우리가 게으른 가운데 기독교를 개종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기로 작정한 다음에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 민족들에게 보여줬나 하는 걸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그렇게 해서 일제 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어. 독립을 주셨으면 잘 살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36년을, 40년을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을 했는데 잘 살아야 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 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아까 얘기했죠. 조선 지식인들이라는 건 다 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때.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 당시 남한에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 그러니까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 여순반란 사건 같은 것 일으켰는데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위에는 다 소련이고 그 옆에는 다 중공이고, 그러면 우리가 거기에서 견뎌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를 분단시켰어요. 분단시킨 이유가 뭐냐. 그때는 안타깝고 이게 뭐냐, 도대체. 우리는 독립을 얻었는데 독립도 못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너희들은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앞으로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의 그 게으름, 죄 깨끗하게 안 된 거야. 분단을 시킨거예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분단이 됐기 때문에 한국이 이렇게, 이 정도 살게 된 거예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지금 몇 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우리 현실이에요.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되어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놔둬 주신 게 아니야. 하나님은 너희들은 안 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그래서 분단을 시켰어요.그것 뿐입니까? 6·25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이 6·25까지 주신 거야. 우리 생각에는 이야, 하나님 참 너무 하다, 이럴 수가 있냐. 어떻게 6·25를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6·25가 저는 이렇게 얘기하면 지가 죽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6·25를 또 저렇게 미화한다는.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 거예요, 6·25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그 당시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1949년에 애치슨 라인이라는 걸 만들어서 미국은 방호책임을 한국에서 제외한다. 일본하고 대만까지 만 미국이 방호책임을 진다. 그리고 1949년에 여기 남한에 있던 미군들은 다 철수 했어요. 철수하고 나니까 1950년 북쪽에서 쳐들어 온 거예요. 소련과 중국을 지원을 받아가지고. 그러면 그때 6·25 전쟁이라는 건 6·25전쟁이 그렇게 났으면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 밑에서 그 후원을 받은 북한에 우리 다 지금 다 흡수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안 되겠다, 너희들 붙잡아야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느냐. 미국을 못 가게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 딱 붙잡아 주셨어요. 미국이 6·25 사변이 끝나면서 우리하고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 그건 뭐냐.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면 미국이 침략을 당한 것처럼 도와주고 미국이 침략을 당하면 우리가 침략 당한 것처럼 또 미국을 도와준다. 우리가 무슨 미국을 도와줄 힘이 있습니까? 괜히 미국에 조약을 맺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그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까지 그 조약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지금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한국에 미군이 없는 한국을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반미, 제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미군이 없는 한국은 금방, 옛날에는 소련 밑에 가 있는 거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 거예요. 중국의 속국이 될 수 밖에 없어. 이미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거의 되어 있지 않습니까? 6·25를 왜 주셨느냐.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주신 거야.그다음에 경제발전 했습니다. 경제발전했는데 경제발전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물론 우리가 새마을 운동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뭐하고 다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진짜 하루에 3교대씩 밤을 새워가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해서 상품을 만드는 게 다 어디갔습니까? 그 당시 신발, 앨범, 흑백TV 이런 것 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것 다 어디서 사줬죠? 미국에서 사준 거야.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우리 경제개발도 사실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습니다.저는 이런 얘기는 우리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경제도 부강해야 되고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돼. 그런데 그거 있는데에 하나님의 뜻이 지금 돌아보니까 다 이해가 될 만 하더라 하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때 1960년대에서부터 70년부터 우리는 공업화를 했잖아요. 그런데 공업화를 했던 가장 큰 힘이 뭡니까? 일본의 기술력이야.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기술을 다하고 일본이 우리보다 앞장섰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만 따라 가면 되는 거야. 박정희나 삼성이나 다 일본 따라서, 현대자동차 다 일본 따라서 우리가 이만큼 컸습니다.일본이 우리는 지금 우습게 보지만 우리 일본 사람들 특히 우습게 보죠. 쪽빠리들 이렇게 생각했지만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또 하나, 중국. 그냥 지금은 중국이 달라졌지만 우리가 막 경제발전을 할 때 중국은 뭐했습니까? 중국은 문화혁명을 했어요. 모택동 밑에서. 문화혁명이라는 게 뭡니까? 그 공산주의 젊은 애들이 다 내쫓는 것 아닙니까? 윗 사람들 다 내쫓고 다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한 20년을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경제고 뭐고 다 내팽개쳤어요. 우리가 그 사이에, 20년 사이에 우리는 올라섰어요.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어요. 그러니까 깜짝 놀라고 중국이 1980년부터 지금 등소평이 와서 이런 개혁개방이다 해가 지고 지금 세계의 G2나라가 된 것 아닙니까?그러면 안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미국을 우리한테 주셨고 경제가 필요할 때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리나라를 있게 해 주시고 이런 게 그냥 보통 생각하면 다 역사가 그런 거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이게 당연하게 이렇게 온 우리의 역사라 이거예요. 지금 제가 걱정되는 거는 이제 중국이 옛날 중국이 아니잖아요. G2가 됐어요. G2가 뭡니까? 세계에서 두 번째 강대국이야. 우리는 평생 미국이 제일 큰 나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인줄 알았는데 앞으로 2015년, 많이 남지 않았어요. 4년 뒤에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대국이 된다. 아니, 강대국보다 제일 생산을 많이 하는 경제제1의 국가가 된다 이거예요. 물론 인구가 많으니까 개별 소득을 따지면 미국이 앞서지만 전체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1위예요. 그러면 지금 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게 2015년이에요. 그러면 2015년 이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계속 있으니까 잘 봐주겠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중국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아주 막대한 영향 준다 이거예요. 이것도 우리가 잘 해결을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입니다.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에 나는 또 하나님이 뜻이 저는 있다고 봐요. 그건 뭐냐. 과거에는 세상의 축이 어디였느냐 하면 대서양이었어요. 미국과 구라파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가는 거예요. 중국이 1위 국가가 되지,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지. 한국이 7~8위 국가지. 그러면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권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또 뭐냐. 거기에 또 우리 한국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가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지정학적인 것이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우리가 지금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역사를 제가 훑어보면서 중국을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 물건을 수출해야 하니까 중국이 우리하고 친해져야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잖아요. 또 북한하고 가깝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의 영향에 따라서 우리는 통일이 되고 통일이 안 되고 그럴 가능성도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로 우리한테 됐어요. 그러니까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하셔야 된다. 중국을 어떻게 터치할 거냐. 그것은 우리가 아직 모르겠어요. 중국에 지금 1억명이 기독교 신자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말고 그건 교회를 세우게는 하거든요. 그건 나라가 다 감시하는 거고 처속? 교회까지 합쳐서 1억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이 앞으로 하나님의 터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공산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무슨 협상을 통해서 이렇게 망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안 망해. 하나님이 터치가 되어야 해.그건 뭐냐 하면 동부에서도 다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폴란드가 제일 먼저 변했는데 폴란드를 제일 먼저 변하게 한 건 누구입니까? 그 당시 바오로 2세입니다. 바오로2세가 거기에 가서 설교를 하고 했기 때문에 그때 터치가 되어서 폴란드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소련이 왜 붕괴를 했습니까? 소련이 그냥 붕괴한 게 아니에요. 레이건 회고록에 보면 레이건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무슨 핵무기 개발 경제를 서로 덜해서 소련을 개방하고 이래서는 소련이 변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터치를 해야 한다. 레이건이 아주 믿음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아요. 겉으로는 무슨 영화배우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경시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터치를 어떻게 만들거냐. 고르바초프를 개종을 시켜야겠다. 고르바초프가 교회 나오도록, 하나님 믿도록 만들어야겠다. 그래 가지고 정상회담을 하는데 1985년 한 4차례를 만났는데 그때 비밀이죠. 두 사람만 있을 때 레이건이 고르바초프한테 전도를 했어요. 너, 하나님 믿어야 한다. 너 나보고 헤어질 때는 God bless you 이러더라 이거야, 고르바초프가. 너 God bless you라고 얘기하지 않았냐. 너 하나님 믿어라, 하나님이 계시다. 내 아들이 있는데 내 아들은 지금 하나님 안 믿는다. 나는 내 아들이 꼭 하나님 믿기를 바란다. 그러나 걔한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뭐냐, 좋은 식당에 데려가서 우리 아들한테 좋은 음식을 먹이겠다. 그러면 잘 먹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나서 아들한테 묻겠다. 얘야, 이 음식이 어디에서 만들어 졌는데 네 앞에 와 있니. 그러면 글쎄요, 그거 주방에서 만드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얘기할 것 아니냐. 그러면 너는 누가 만들었냐. 너 여기 와 있는데 누가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 하나님. 고르바초프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세요. 직접 정상회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했어요.카터 대통령이 1978년에 한국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하여튼 공산주의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뭐 협상을 통해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남북통일이 되고 이런 것 없어요. 그런 것 일어날 수가 없어. 지금 남북을 분단시킨 이유가 다 있어. 왜냐, 하나님은 통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걸 우리 민족한테 다시 한 번 보여주려고 한다이거야. 분명히 보여주실 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뭐 남북회담해서 개방정책을 써가지고 그렇게 안 돼. 분명히 10년 내에 하나님의 터치가 온다 이거예요. 그때 한국민족이 아, 이게 뜻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제가 왜 이 기회의 나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우리나라 기도를 하느냐 하면 우리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한테 매 순간 매 순간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은 어떤 기회를 주셨습니까? 모든 나라가 한국으로 다 오려고 해요, 아시아에서. 우리도 아시아 전도대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합니다. 한국의 예술, 체육, 문화, IT 기술 그거 다 배우려고 해, 다 오려고 해. 그 사람들 생각에 한국은 기회의 나라라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가 미국을 보고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했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기회의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는 그런 축복받은 청교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 까지 복을 받아서 제일의 국가가 되었지만 지금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 왜 쇠퇴하는 겁니까? 미국은 왜 쇠퇴합니까? 사이클이 있는 거예요, 사이클.그 사이클은 우리 인간 잘못으로 있는 거야. 가난하고 어렵고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해. 절약해. 그러면 가난한 고난 있다가 절약하고 열심히 하다가 그러면 돈이 생겨, 부유해져, 번성해. 그러면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그 다음에 퇴폐, 퇴폐로 가는 거야. 그건 인간사가 똑같은 거야. 모든 세계역사는 똑같은 거예요. 번성하고 잘 살게 되면 그 다음 사이클이 뭐냐. 그 다음에는 자기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부패해지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다음 단계는 뭡니까? 몰락이야. 그다음에 몰락이 되는 거야. 이 사이클이야. 하나님은 우리 한테도 이런 사이클을 주실지 몰라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이 사이클을 막을 수 있는 거야. 이 사이클을 막는 것은 하나님 뜻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이거지. 기회의 나라를 달라는 건 뭐냐. 만들어 달라는 건. 미국 선조들이 처음 미국에 올라갔을 때 청교도들이 원하는 건 뭐냐 미국이라는 나라를 저 언덕 위에 빛나는 집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환한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교도들이 기도한 것 아닙니까?그런데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서 G2의 국가가 됐어요. 앞으로 G3가 될지도 몰라. 미국 기독기독교가 점점점, 유럽은 이미 끝났어요. 이제 그다음에 미국 차례야. 미국도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몰라. 그러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써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이 쓸 사람은 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요. 왜? 이건 제가 괜히 우리가 우리 민족이 잘났고 뭐 이런 걸 부추기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 소서행장?을 따라서 선교사가 이미 조선에 왔어요,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00년, 300년 앞서서 선교사가 왔는데 일본은 하나 님의 나라가 안 됐어.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그런데 중국도 하나님 나라가 안 됐어. 한국이 유일하게 그래도 지금 천 만 교인이라고 하는데 천 만 교인을 지금 가지고 있는 거야. 참된 신자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라로 지금 되어 있는 거예요.아까 동북아 시대가 열렸다, 여기가 중심이다 할 때 하나님은 아, 한국을 써야 되겠구나. 한국을 다음 세계의 중심국가, 세계의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그런데 우리가 다음 주에 우리 오대원 목사님이 와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 뭘 해야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기도. 시간이 없어서 제가 간략하게 하고 그만하겠습니다. 아까 사이클이 있다고 했죠.흥망성쇠, 번영, 퇴락, 부패 이거 다 이어 진다고 했죠. 우리가 이 사이클을 끊어야 돼. 이 사이클을 끊을 힘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성령님 밖에 없어. 그 사이클을 끊어야 돼, 우리 스스로가. 그래서 이 나라를 다시 성령님으로 도덕의 나라, 개혁의 나라로 다시 정신적으로 우리가 다시 바꿔야 된다, 이거야. 그게 우리의 첫째 기도가 되어야 해.요즈음 왜 자살이 많습니까? 왜 꺼떡한 하면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장관 지낸 사람들. 나라가 벌써 부패해 진거예요. 정신이 썩어진 거야, 벌써. 이러면 이 나라는 고꾸라 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 이 나라의 정신을 살려주십시오. 이 나라에 성령이 임해서 정신의 부흥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게 제일 첫째입니다. 둘째는 뭐냐. 우리가 개혁, 지금 정신개혁에 따라 오는 건 뭐냐. 지금 이 시국, 이 나라가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요.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그것은 잘 살게 된 데에도 큰 원인이 있어요. 그것은 또 있는 사람들의 그 원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열이 된 이 나라가 다시 통합이 되어야 해요. 지금 갈등에 쌓여있는 이 나라가 다시 화합을 해야 돼요. 그게 우리나라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 없으면 이 나라는 이제 쓰러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분열, 이런 것이 이 나라에서 떠나가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세 번째 기도가 있습니다. 세 번째 기도는 북한에 대한 기도입니다. 아까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지, 북한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 통일원? 사람들을 몇 사람 만나봤는데 이 사람들 예측은 2020년까지 북한에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서 자기들 보기에는 통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2020년까지 우리 통일이 온다 이거예요. 그건 하나님 터치가 있을 때 통일이 오는 거예요. 그때까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돼요. 지금 못 먹고 있는 북한 애들을 위해서 우리가 또 도와줄 것 있으면 도와줘야 돼요. 지난 번에 목사님도 그런 말씀하셨죠. 왜? 애들은 못먹이면 뇌가 상해요. 3~4살까지 뇌가 100% 발달을 하는데 그때 영양부족이 되면 평생을 애들이 IQ가 낮은 저능아가 되는 거예요. 북한애들이 다 저능아가 되면 나중에 통일되면 우리가 어떻게 다 먹여살리겠습니까? 우리가 북한을 도와줄 것은 식량이나 의약품이나 영양가 있는 것 이건 도와줘야 돼요. 도와주면서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기를 기도해야 된다.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해서 기도.네 번째, 중국의 민주화, 중국의 자유화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해요. 그 필요는 아까 말씀드렸죠. 중국이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나라가 됐어요. 지금 식으로 가면 조선반도, 이 한반도가 어떻게 될지 몰라. 중국에 자유화, 민주화가 있고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져야 해.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 통일은 자연히 되고 중국의 민주화도 자연히 이루어지니 겁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그걸 놓고 중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다섯 번째,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 좋은 지도자를 좀 주십시오, 좋은 지도자. 이거 중요한 시점인데 저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 조지워싱턴, 제퍼슨, 존 아담스, 해밀튼, 1976년 미국이 독립을 차지했을 때의 그 미국의 무수하게 좋은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 독립이 가능했던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 당시 월급을 안 받으려고 했어. 나라일을 하는데 월급을 받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안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에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은, 그런 사람들이야. 링컨은 너무나 잘 아니까 말할 필요가 없죠.링컨은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다기도하면서 했어. 링컨의 명 연설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링컨이 공부 못 한 사람이에요. 켄터키 옛집에서 책 이렇게 해서 그 사람 학교도 못 가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그렇게 명연설을 합니까?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세우겠다. 그런 명 연설을 어떻게 합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중요한 연설이 있을 때는 요즈음 우리나라는 다 밑의 사람이 써오잖아요. 자기는 그거 안 해요. 안 하고 성경책 하나, 미국 헌법 하나 딱 두 개만 들고 자기가 혼자 멀리 백악관을 떠나서 혼자 갑니다. 가서 성경을 읽으면서 미국 헌법을 읽으면서 내가 이 백성들한테 미국 시민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되겠나 일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연설문을 썼어요. 그래서 링컨의 연설문이 그렇게 명 연설문이 된 거예요. 우리 지도자들이 저는 그런 지도자가 좀 나와야 된다. 지도자가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지도자에 너무나 기근이 들렸어요.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우리가 과거 미국 파운딩 파더 같은 그런 지도자들 우리한테 주십시오. 그런 정치지도자를 주셔서 이 나라를 좀 살리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제가 기도, 마지막 할 것은 우리 크리스찬들이에요. 한국이 천 만이에요. 그런데 이 크리스찬이 지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걸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돼요. 며칠 전에 임요한이라고 연대 세브란스 병원 교수인데 선교사 아드님이신데 어느 신문에 기고를 했더라고요. 거기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만일 지금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며칠 목욕을 안 하고 또 허름한 넝마를 거치고 한국교회에 들어 설 때 한국교회에서 그거 받아줄 교회가 한국교회에 어디 있느냐, 있겠느냐 하고 기도를 했어요. 우리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우리 크리스찬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돼요. 다른 사람 손가락질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각성해야 돼요. 영국이 그렇게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된 건 뭡니까? 그리고 영국은 망했죠. 이유가 윌보 포스너? 그리고 감리교 했던 누구죠? 그런 분 존 웨슬러, 요한 웨슬러나 이분들의 성령운동?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당시 영국에서 영국 상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정직했다 이거야. 제일 정직하니까 영국 상인들은 다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왜 영국상인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윌보 포스너 이런 사람들이 개혁운동을 했기 때문에, 크리스찬 개혁운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찬이 개혁운동에 앞장서야 해요. 준비한 건 많았지만 시간이 되어서 나중에 기회있으면 개인적으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여튼 크리스찬이 먼저 정신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어요.우리나라 옛날에 80불 하던 소득이 아프리카 기니? 하고 같은 80불의 나라였어요. 불과 50년 전에. 그런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주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괜히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까? 미국이 기회의 나라가 됐듯이 우리나라도 기회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수요 여성 예배, 이렇게 또 주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주님, 저희들 이 나라를 향해서 주님의 뜻을 지금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 저희 우리 크리스찬들이 각성하게 먼저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축복하셔서 이 나라 사람들이 고통당하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가 앞으로 세계 복음화와 세계 선교화의 주축이 되는 나라, 미국을 다음 이어 가는 나라가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옵소서. <중앙일보 제공>
    201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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