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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실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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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청원권과 인권은 한심한 법조인과 국회의원들이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청원권과 인권은 한심한 법조인과 국회의원들이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 나라는 한심한 역대 대통령 및 국회의원과 법조인들이 헌법과 청원법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엉터리 판례(대법원 2000.2.25. 선고 99두11455 판결 및 1990.5.25. 선고 90누1458 판결 참조)등을 만들어 놓고 선의의 사법 피해자들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검사가 헌법까지 자의로 판단하여 "국헌 문란죄"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자살하도록 만든 살인 공화국으로 절락되었다. 사법부에 공권력을 행사한 자들이 누구인지 국민들의 심판대에 올려 놓고 끝까지 토론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혀 보자는게 저자인 박흥식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www.buchusil.org) 및 밝은세상뉴스(www.buchusil.com)의 발행인(편집장)의 견해다. 부추실 회원들의 억울함은 별론으로 하고, 본인이 18년간을 외롭게 국가 기관인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재정경제부, 감사원, 대검찰청, 대법원, 헌법재판소, 국회 등과의 싸움을 투쟁하게 된 문제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지난 1986년 10월 첨단보일러를 발명(실용신안등록 제39438호)하여, 상공부 '89기계류, 부품및소재개발대상품목고시 제89-16호로 고시되어, 1990년 5월 19일 제25회 발명의 날에 상공부장관의 공로표창까지 받았다. 박 대표는 1988년 10월경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창업을 승인받아 중소기업구조조정기금 5억 원과 운전자금 3억 원을 지원받게 되어 경북 상주군 공성면 평천리 농공단지에 입주하여 보일러공장을 신축하고자 제일은행 상주지점에서 시설자금 5억 원을 대출받기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서 5억 원을 발급받아 은행에 제출한 후 공장을 건설하던중 1991년 2월 12일 제3차 기성금 1억7천1백만 원에 대한 커미션을 요구하여 거절하였다. 커미션이 적었다고 앙심을 품은 동 은행의 류춘덕 차장이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하여 박 대표의 처, 명의로 저축예금 2,520만 원(어음 8매분)을 결제하기 위해 꺽기하였는데, 통장을 만들지도 않고 유용하다가 박 대표가 기계대금으로 발행한 어음 2,300만원 짜리가 1991년 2월 26일 은행에 지급 제시되자, 예금 잔고가 3,460만 원이 있었는데도 고의로 부도처리하고, 다음날 거래정지처분으로 내몰기 위해서 "꺽기한 저축예금(잔액 2,191만원)은 ‘적색거래처 규제’ 이후에 지급제시된 어음 7매(2,174만원)를 결재할 경우" 통장에서 남은 17만원을 당일 지급하고, 그 다음날 기술신용보증기금에 대출금 4억1천8백만 원을 상환을 청구했다. 이에 박씨는 부도처리후 3개월 이전에 부도된 어음 3억3천만원을 모두 회수하면서 공장을 준공받아 은행에 담보로 제공했는데도 이를 거절하고, 기술신보에서 대출금을 대위변제로 받음으로써, 기술신보에서는 박 대표의 공장을 가압류하고 경매하도록 만든 불법 부도처리가 이 사건의 시발점이다. 당시 박 대표는 노태우 대통령 및 은행감독원, 재무부,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지방검찰청, 감사원 등에 민원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기각 당하였다. 1992년 10월 17일 민주자유당 김영삼 총재에게 불건전한 금융정책의 일환으로 본 사건을 제안했다. 1993년 1월 6일 서울방송(SBS)사는 "출발서울의 아침" 프로에 '꺽기와 커미션으로 중소기업이 부도처리 되었다'고 방송되자, 재무부 이용만 장관(노태우 대통령)은 고발하여 줄 것 처럼하다가 1월 15일 은행단 간단회를 소집하여 ‘은행 불필요 인원 축소지시’로 끝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입성한 이후인 6월 14일자로 한국경제신문 1면 사설(두 기업인의 편지)에 본 사건이 보도되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민정비서실에서는 박 대표의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청와대 민원실로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고 민원실에 갔더니 당시 은행감독원 분쟁조정과장 조재호와 제일은행 류춘덕 차장이 참석하였다. 청와대 민원 과장은 박 대표에게 무슨 연유로 한국경제신문에 보도가 된 것이냐고 묻기에, 본인이 "억울한 것은 '91년 2월 26일 부도 당시 보유한 예금중에 은행에서 보관하고 있는 본인의 처, 명의의 저축예금 2,191만원이 있었는데, 그 예금에서 어음을 결재해 주던지 아니면 통장을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는데도 이를 거절하고 부도처리를 하였으며, 그 후 은행에서는 저축예금의 남아 있는 돈을 '적색거래처 규제' 이후에 지급제시된 약속어음 7매(2,174만원)를 결제한 후 통장과 어음 7매를 본인에게 반환하지 않아서은행감독원에 민원을 냈는데도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서 본 사건을 기각하였기 때문에 억울해서 편지를 한국경제신문에 보냈더니 신문에 보도를 낸 것입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그러자, 민원 과장은 제일은행 류춘덕 차장에게 “왜 저축예금 통장을 반환하지 않았으며, 부도처리후 어음 7매를 결재한 이유가 무었이냐?” 라고 질문하자, 류춘덕은 "저축예금을 만들기로 한 것은 시공회사와 함께 박 대표가 발행한 어음만 결재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라고, 답변하였다. 민원과장은 ‘그 증거가 있느냐고’ 다시 질문하자, 합의각서가 있었는데 분실했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민원과장은 은행감독원에서 참석한 조재호 과장에게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조사하여 기각한 것이냐” 라고 질문하였다. 조재호 과장은 류춘덕의 말대로 합의각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었다는 시공자의 확인서에 따라 기각한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청와대 민원과장은 박 대표에게 이 사건은 더 이상 볼 것 없이 잘못된 결정이니, 바로 민원을 해결토록 하겠으니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말하기에 박 대표는 청와대에 함께간 아들(영균)과 먼저 민원실을 나왔다. 그 후, 청와대(김길환 민정사정 비서관)에서 아무런 열락이 없자 박 대표는 민원 과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 사건은 골치가 아퍼서 더 이상 청와대에서 처리할 수 가 없으니 법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국제그릅 재산권침해” 사건은 구제가 될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행사하여 구제받았다. [1993. 7. 29. ‘89 헌마 31 위헌확인【공권력행사로 인한 재산권침해에 대한 헌법소원】[판례집 5-2, 87∼125] 이에, 박 대표는 1993년 9월 3일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에 가서 한국경제신문에 보도된 억울한 내용을 접수하였는데, 경실련(사무총장 서경석 목사)은 이 사건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1994년 7월 27일 재무부장관에게 금융분쟁에 대한 재조정을 해 달라고 신청하였으며, 1994년 8월 6일자로 시민의 신문(이형모 사장)에 "은행예치 '중소기업 지원자금' 주인은 누구?" 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인 보도를 하였으며, 한국방송국(KBS)에서는 8월 11일 오후 9시뉴스에 본 사건(취재 박영환 기자)을 보도(이윤성 앵커)하였고, 중앙일보에서는 8월 31일자로 "이제 할말은 하자" 라는 특집기획으로 본 사건을 보도(정철주 기자)하였다. 그러자, 재무부에서는 본 사건에 대해 1994년 9월 10일자로 "구제조치가 있어야 할 것임" 이라는 재심이유서를 첨부하여 경실련과 은행감독원에 협조요청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본 사건(피신청인은 부당한 업무처리로 인하여 신청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며 과다계산된 연체이자를 신청인에게 반환해야 한다)에 대해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에서는 경실련과 KBS, 중앙일보 등을 회유한 후 오히려, 제일은행을 교사하여 박 대표를 "허위 사실유포"죄로 고소하게 한 후 재조정 사건을 12월 19일자에 각하로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제일은행에서 박 대표를 "허위 사실유포"로 고소한 사건은 동부지방검찰청에서 수사하던중에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오규락과 류춘덕은 1995년 1월 20일자로 고소를 취하 하였다. 그 후 박 대표는 1995년 6월 26일경 제일은행이 제기한 대여금 청구의 소송에서 민변 출신 박연철 변호사를 선임하여 부당이득금 반환으로 반소를 제기하였으나, 1심에서는 오승종 판사의 도둑재판(문민정부 민정비서관을 지낸 이충범 변호사가 원고측 소송대리인임)으로 패소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강민형 부장판사의 공정한 재판에 의하여 '98년 11월 24일 승소하였으며, 제일은행이 상고를 하였지만 1999년 4월 13일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므로서 제일은행에서 예금반환거부 및 거래정지처분이 불법이었음이 판명되었다. 하지만 대구지방법원에서는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제기한 구상금 청구사건이 1심에서 부도처리를 전제로 한 구상금 청구는 부당하므로 기각된 사건을 항소심에서 원고측 변호사 장익현과 소송고지인 제일은행측 변호사 전하은 및 피고측 변호사 김익환 등이 공모하여 피항소인 박 대표를 194,654,957원의 채무자로 만들었다. 이에, 박 대표는 상고를 제기하였는데도 대구지방에서 추천된 배기원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임명되자,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선임한 대구지방의 변호사들은 배기원 대법관에게 로비를 하므로서 구상금 사건은 부도처리를 전제로 발생된 청구이므로 제일은행의 부도처리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과 판례등을 첨부하여 상고이유를 제출하였음에도 배기원 대법관은 본 사건에 대해 대법정을 개정하지도 않은 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상고를 기각하였다. 따라서, 박 대표는 2000년 11월 8일 제일은행 앞에서 집회(11월 10일자 내일신문 보도)를 개최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구상금 사건을 담당한 대법관에 대해 재정신청(청원)을 하였는데도 대통령 비서실에서는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 이송하였으며,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답변은 이미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상태이므로 사법절차를 통하여는 더 이상 다 툴 수 있는 방법이 없음으로 회신하였다. 이에, 박 대표는 사법부를 통해서는 더 이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되었으므로 최초 이 사건을 담당한 금융감독원이 제일은행의 부당이득(형법 349조)에 대해 시정명령이나 고발조치를 아니한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하므로 제일은행의 부도처리로 인한 공장경매, 공장분양계약 해제, 투자손실, 적색거래자 등록 신용훼손 등 정신적, 물리적인 피해(약 53억 6천만원)를 국가에서 조사하여 보상하여 달라는 “금융분쟁조정기관의부작위에따른피해보상에관한 청원”을 제15대 국회에서는 한영수 국회의원이 소개하였고, 16대 국회에서는 김영춘, 박승국, 송광호, 엄호성 국회의원들이 소개하여 청원을 접수하였으며, 국회의장은 정무위원회에서 청원을 심사하여 의결토록 회부하였는데도 정무위원회에서는 심사 ․ 의결을 하지 않고 2004년 5월 28일 제16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종료되자 박 대표에게 본 청원을 폐기하였다는 통지를 할 뿐이었다. 이에 박 대표는 2004년 9월 2일 제17대 국회에서는 김영춘, 문학진, 김희선, 김원웅 국회의원들이 청원을 소개해 주어 다시 청원을 접수하였으며, 당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제11기 위원으로 활동하던중 9월 15일 ‘평화번영정책에관한 건의’ 사항으로 본 사건을 제안한 바 2005년 3월 5일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자치부 민원보고대회를 통해서 국회도 민원을 적극처리해야 한다는 주문을 언론에 보도하였다. 그러자,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청원심사소위원회에 2005년 4월 22일 청원인을 출석시켜 진술을 들었으며, 2006년 2월 15일에는 청원심사를 개의한 후 구두로 금융감독원과 은행에게 청원인과 합의를 보라고 의결하여 박 대표도 합의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금감원과 제일은행은 7000만원 이상은 합의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당시 박 대표는 빗만 10억 원 이상이기 때문에 합의할 수가 없어서 국회에 금액을 정해 달라고 진정했었다. 그러나 정순영 수석전문위원은 본건 청원을 처리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2007년 4월 5일 경기도청 의회 브리핑실에서 "내 기업 살려 내라"고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러자, 경기도청에 출입하는 11개 언론사(대한방송, 매일경기, 경기신문, 일간경기, 시대일보, 수도권일보, 오늘신문 현대일보, 우리일보, 시민일보, 헤드라인뉴스)에서 보도되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는 감사원에서 감사하라고 이송하였음에도 다시 금융감독원으로 이송하므로서 박 대표와 회원들은 2007년 8월 2일부터 감사원 앞에서 핑퐁식 감사를 중단하라는 집회를 계속하던중 감사원에서 공권력(경찰)을 투입하여 민원실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관계로 8월 29일 오전 10시 40분경 감사원 현관에 오물까지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박 대표는 제17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본건 청원에 대한 심사 의결을 끝내지 못한다는 위기감에 결국에는 사법부를 통해서 청원심사를 이행하라는 판결을 받기 위해서 2008년 2월 4일 서울행정법원에 국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2008구합5155호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 이경구(판사 이진석, 판사 정욱도)는 박 대표가 본 사건 청구취지를 청원심사이행등에서 부작위위법확인등으로 청구취지를 변경하였는데도 사건 명칭을 변경해 주지도 않았다. 또한 증인 23명(노무현 전 대통령 외 22명)을 신청했는데도 단 1명도 채택하지 않고, 서증목록에 대해 인부도 아니한 채, 본 청원이 헌법 제51조 단서에 의하여 2008년 5월 29일 폐기되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의 “소는 소의 이익이 상실되었다”는 이유로 2008년 7월 23일 각하로 판결하였으나 당시 박 대표는 재판장을 법관기피신청을 미리 선고기일 전에 접수하였다. 그러나 박 대표는 다시 18대 국회에 문학진, 이종걸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서 2008년 9월 17일자로 청원을 접수하였고, 다시 정무위원회에 회부한 통지서를 증거로 제출하였으며, 한나라당 최고위원 공성진 국회의원이 2008년도 국정감사까지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이성보, 판사 반정우, 판사 조건주는 제1차 변론기일에서 증거가 충분하다는 부당한 이유로 변론을 종결한 후 지정한 선고기일인 2009년 1월 8일자에 제1심 판결의 이유는 제1심 판결 이유란의 기재와 같으므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판결로 선고하였다. 따라서 박 대표는 제18대 국회에 접수한 청원에 대해 청원심사기일인 90일이 경과되자, 서울행정법원에 부작위위법확인등을 구하는 소장을 다시 접수하였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 재판부는 제18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현재일까지 청원심사소위원회를 구성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입법 행정업무가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2009년 5월 21일 오전 10시 10분경 서울행정법원 2009구합3279호 사건을 담당한 제13행정부 재판장 정형식, 판사 이예슬, 판사 허이훈은 제201호 법정에서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박 대표가 국회사무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작위위법확인등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잠시 후 법정이 개정되자 제13행정부 정형식 재판장은 선고판결을 하겠다고 개정한 후 2008년도 사건부터 선고한 다음 4번째로 부추실에서 제기한 사건 번호와 원고 및 피고 국회사무총장을 호명한 후 판결 선고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라고 주문했다. 박 대표는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히 “각하 한다”는 선고를 들은 것이다. 재판장이 나머지 사건에 대해 선고를 끝내자마자, 박 대표는 일어나서 2009구합3279호 사건을 각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였다. 그러자 재판장은 “청원은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하여 어떤 사항에 관한 의견이나 희망을 진술할 권리로서 단순히 그 사항에 대한 국가기관의 선처를 촉구하는데 불과하므로 청원을 심사하지 않아도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이에, 박 대표는 그렇다면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산심사소위원회 및 법률심사소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심사를 안 할 경우는 정부가 예산이 없는데 어떻게 운영을 하느냐? 라고 말한 후 헌법 제26조 제1항과 제2항 및 국회법 제123조, 제124조, 제125조, 제126조의 규정이 모두 위헌이라는 말이냐? 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이 사건의 제2차 변론조서와 같이 법원은 거짓진술을 인정하였고 피고는 4. 14.자 준비서면과 답변서를 철회하였으면, 의제자백으로 당연히 원고가 승소해야 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각하로 선고한 이 사건의 판결은 국민과 원고를 기망하는 행위로서 사기소송을 한 것이므로 더 이상 본 법정은 재판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면서 항의에 항의하자, 201호 법정에 앉아 있던 부추실 회원들과 재판을 받으러 온 국민들 간에 말싸움까지 발생하자, 제13행정부 정형식 재판장은 휴정하겠다고 말한 후 법정을 나갔으며, 서울행정법원에 근무하는 청원 경찰이 몰려왔다. 201호 법정에 몰려 온 청원경찰들은 박 대표와 부추실 회원들을 끌어내려고 몸을 붙잡았으나, 박 대표는 사기소송을 한 현행범 재판장을 먼저 체포해야 한다면서 회원들에게 112 신고를 하라고 말하자, 부추실 회원들은 “행정법원 판사는 재판을 하지 않는 것이 국민을 도와주는 것이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 20명의 청원경찰들은 201호 법정에서 부추실 회원(4명)들을 끌어내려고 하고, 박 대표와 회원들은 청원경찰들의 손을 뿌리치는 등 몸싸움이 발생하였다. 이어서 박 대표는 청원경찰에게 사기소송한 현행범을 체포해야 한다면서 핸드폰으로 112를 신고한 후 사법경찰을 불렀으니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테니 몸을 붙잡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청원경찰들은 무조건 몸을 붙잡아 끌어내려는 관계로 몸싸움이 계속이어지자 법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당일 재판을 받기위해 법정에 출석한 많은 국민들이 항의하는 관계로 법정을 나갔던 정형식 재판장이 다시 법정에 들어와서 청원경찰들 앞에서 박흥식씨는 법정에서 소란을 피워 재판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대표는 사기소송으로 국민을 기망하는 재판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함께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자고 말했다. 그러나 청원경찰들은 먼저 회원들을 모두 들어 낸 후 박 대표를 4명이 팔과 다리를 붙들고 법정 밖으로 끌어냈다. 범죄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2명은 법원 2층으로 올라와서 누가 신고한 것이냐고 법원 공무원에게 물었고, 청원 경찰들은 박 대표가 신고한 것이라고 안내하였다. 박 대표는 출동한 사법경찰관에게 내가 신고한 사람이라고 말한 후 서울행정법원 판사가 사기소송을 하여 범죄를 저질렀으니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함께 조사를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법경찰은 법원 공무원에게 말을 듣더니 박 대표만 연행하기 위해서 신분증을 요구하기에 박 대표는 내가 112 범죄를 신고한 사람이니까 앉아서 신고인에 대한 진술을 작성한 다음 사기소송한 판사를 체포하여 조사하라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본 사건은 고소를 해야만 조사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변명하면서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자, 박 대표는 사법경찰관 2명중 1명은 정복과 모자를 착용했으나 1명은 모자를 착용하지 않았기에 사법경찰에게 112 범죄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면 정복차림으로 공무에 임해야 하는데도 근무하는 자세가 틀렸다고 나무라자, 연행하려는 자세에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바꾼 후 슬그머니 돌아가 버렸다. 그 다음날 박 대표는 본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은 빨리 망해야 서민들이 살아 갈 수 있다" 라는 제목으로 서울행정법원에서 발행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여 메일링을 발송하였다. 그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에 갑짜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하였다는 것이다. 박 대표가 증인으로 신청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횡포(수사)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중에는 언론의 횡포로 인한 충격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권력은 이명백 대통령의 수하에 있는 청와대를 비롯하여 감사원과 검찰, 경찰, 국세청 및 사법부와 입법부 뿐만아니라 각 정부기관에 출입하는 언론사 기자들의 권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범죄 행위를 자행하면서 거기에 대한 반성이 없다. 철 밥통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영철 대법관 사건에 관해서 사법부가 들썩거릴 이유가 있는가? 권력에 하수인의 역할로 자청하지만, 국민의 소리는 전혀 듣지 않는 것에 있어서 오십 보 백 보 이면서 말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면 세금을 받는 것은 몰염치한 것이다. 사법부의 관료주의 태도를 가지고 국민을 대한다면 사법부는 존재의 가치가 없다.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변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결국 억울한 국민만 늘어날 뿐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엉터리 판례(대법원 2000.2.25. 선고 99두11455 판결 및 1990.5.25. 선고 90누1458 판결 참조)를 만들어 놓고, 헌법 제26조 제1항과 제2항 및 청원법과 국회법 등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 "원고(국민들)에게 청구취지와 같은 부작위 위법확인 구할 당사자 적격을 인정할 수 없다" 라고 청구를 각하한다면, 이 사건 원고는 소에 이익이 없는데도 소를 제기한 것과 같다. 이런 말도 않되는 억지를 부리는 이명박 정부의 사법부는 사라저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부패방지위원회)을 비롯한 한나라당의 친이 세력들은 빨리 물러나야 한다. 국민을 위하는 정부, 국민의 억울한 소리를 들어난 사법부가 들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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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구행렬' 지나갔지만...아직 서울광장에 남은 시민들
    [특별 취재팀 : 덕수궁-서울광장 현장] ▲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노제를 지낸 뒤 서울광장을 빠져나간 직후 경찰은 광장 주변을 다시 에워싸기 위해 차량 동원을 시도했다. 이에 격한 추모행렬이 차량을 광장 밖으로 밀어내자 경찰이 살수차를 들이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후 노제가 끝나고 운구행렬이 수원 화장장으로 떠난 뒤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남아 있던 시민들에게 경찰이 도로점거를 풀라고 경고방송을 하며 살수차를 전진배치시키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신 : 20일 오후 7시 5분] 민주노동당 주최 시민추모발언대회... "당장 MB 재신임 투표해야" 어둑해지고 있지만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서울역에서 돌아온 시민들까지 합세해 저녁 7시 현재 약 1만여 명이 서울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프레지던트 호텔 앞에서는 민주노동당 주최로 시민추모발언대회가 2시간 넘게 진행 중이다. 자유발언에 나선 시민 대다수는 이명박 정부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건국대 학생이라 밝힌 20대 청년은 "국민들의 이 슬픔과 분노의 정체는 전과 14범 이명박도 대통령인데, 광주를 학살한 전두환도 살아있는데, 서민 대통령인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라며 "오늘 광장을 둘러싼 차벽을 몰아낸 우리가 이명박과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침묵해온 비겁한 역사전공생"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대학생은 "어제 부산 시민들과 거리추모행진을 했으나, 불법시위로 규정당했다"며 "지금이라도 행동하는 시민이 되겠다, 후에 역사교사가 되면 학생들에게 우리 시민들도 불의에 대항해 싸웠다고 말하겠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유학 중인 강기훈(19)군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 그는 "대통령은 국민의 일꾼이자, 발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이 나라의 CEO라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씨는 "우리 세금으로 만든 광장을 가로막고, 세금으로 먹고자는 전경이 국민을 가로막는다"며 "왜 나라가 이 꼴인가, 반드시 이 정부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심하게 쓴 40대 남성은 "당장 내일이라도 MB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 이상 불의와 기득권층이 판치는 것을 볼 수가 없다"며 "재신임 투표를 해야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저녁 7시 즈음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12신 : 29일 오후 5시 20분] "남의 할아버지 장례식에 경찰이 왜오나" 인권위 앞 도로에서 자유발언...경찰과 대치상태 ▲ 29일 오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를 마친 시민과 경찰이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한 장애인이 시청 앞 서울광장 인근에서 추모인파에게 해산 명령을 하는 경찰 병력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경찰 '슬픔의 광장'은 곧바로 '분노의 광장'으로 변했다. 경찰이 서울광장 봉쇄작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시민들과 경찰의 충돌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오후 5시 국가인권위 앞에선 '광장을 지키려는 이'들과 '광장을 봉쇄하려는 경찰'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앞서 경찰은 방패를 휘두르며 무교동까지 나아갔던 시민들을 밀어냈지만 인권위 앞에서 대열을 정비한 상태다. 현재 이곳에서 광장을 사수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대학생들이다. 이화여대, 아주대, 건국대 등 각 대학 총학생회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의 깃발이 눈에 띈다. 이들은 현재 도로 위에 앉아 자유발언을 진행하고 있다. 간간이 "공안정권·살인정권·이명박 정권 퇴진하라" "민주주의 사수하자" 등의 구호도 외치고 있다. S대학 법학과 새내기라고 밝힌 이아무개씨는 맨발로 도로 위에 섰다. 이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려 나왔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도로 위에 선다"며 "아까 전경들이 방패를 치며 달려올 때 구두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로 벌어져 놀랍다"며 "정말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나도 대학생들의 싸움에 함께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새내기 이아무개씨도 "남의 할아버지 장례식에 경찰이 온다는 게 말이 되냐"며 경찰을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분노할 문제는 이것 말고도 많다"며 "비탄하고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말했다. 한편, 대학생들과 경찰들 사이에선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과 당직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운구차량, 추모객들에 에워싸여 용산까지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후 서울역에 마련된 국민분향소로 운구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추모객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오후 3시 30분께 서울역을 출발한 운구차량은 시민들에 에워쌓여 도보 속도로 이동했다. 오후 5시 23분 현재 운구차량이 위치한 곳은 용산구청 문화센터 앞 고가도로. 이 도로 위에만 4000여 명이 운집해 있다. 화장 장소인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 예정시각은 오후 3시. 하지만 시민들은 "밤새라도 갈 수 있다"면서 운구차량의 흐름을 막고 있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자 노건호씨가 고가도로 위에 나타났다. 일부 시민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잠시 뒤 시민들은 운구차량을 보내줬다. 하지만 시민들은 고가도로 위에 남아 있다. [11신 : 29일 오후 3시 55분] 서울광장 앞 추모객- 경찰 충돌 시작... 길어지는 운구행렬, 서울역까지 1시간 10분 ▲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노제를 지낸 뒤 서울광장을 빠져나간 직후 경찰은 광장 주변을 다시 에워싸기 위해 차량 동원을 시도했다. 이에 격한 추모행렬이 차량을 광장 밖으로 밀어냈으나 추가투입된 경찰에 다시 떠밀려 광장으로 뛰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노제를 지낸 뒤 서울광장을 빠져나간 직후 경찰은 광장 주변을 다시 에워싸기 위해 차량 동원을 시도했다. 이에 격한 추모행렬이 차량을 광장 밖으로 밀어냈으나 추가투입된 경찰에 다시 떠밀려 국가인권위 방향에서 광장으로 뛰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오후 2시께 노제가 끝난 뒤 서울광장을 출발한 운구행렬이 서울역에 도착한 것은 3시 10분. 노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물론이고 주변 직장인들까지 운구행렬에 동참해 행진이 더뎌졌기 때문이다. 운구행렬을 따라가던 시민들은 "잘 가요" "행복하세요" 등을 외치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곡하고 오열하던 분위기는 시나브로 차분해지고 있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수원 화장터까지 가야겠다" "봉화마을까지 가자" 등의 얘기가 터져 나왔다. 오후 2시 55분께 운구행렬이 YTN 앞을 지나자 YTN 직원들은 창문을 열고 노란색 종이비행기와 종이 꽃가루를 뿌렸다. 운구행렬을 따라가던 시민들은 "YTN 힘내라"를 외치며 지지 박수를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을 싣은 운구차량은 서울역을 빠져 나가 수원 화장터로 이동할 예정이다. 시민들, 서울광장에 진입하려던 경찰버스 저지시켜 ▲ 29일 오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를 마친 시민과 경찰이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시청 앞 서울광장 인근에서 경찰 병력이 시민들의 해산을 종용하며 추모인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경찰 운구차량이 서울역을 빠져 나갈 즈음 서울광장 근처에서는 경찰과 시민들 간에 충돌이 벌어졌다. 오후 3시 25분께, 노제를 마치고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수천여 명의 시민들은 서울광장으로 경찰버스가 진입하려고 하자 흥분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이 경찰버스를 향해 물병을 집어던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이에 가세했다. 이들은 경찰버스에 물병을 던지고 차량에 발길질을 했다. 물병 공격을 받은 경찰버스 유리창은 군데군데 금이 갔고, 결국 경찰버스는 5분 만에 광장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충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광장 오른쪽에 주차해 있던 경찰버스 두 대에도 물병을 던지고 발길질을 해댔다. 결국 광장 주변에 배치돼 있던 경찰버스는 모두 쫓겨났다. ▲ 29일 오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를 마친 시민과 경찰이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시청 앞 서울광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해산을 종용하는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경찰 그러자 경찰은 경찰버스를 보호하기 위해 오후 3시 35분께 전경들을 서울광장에 긴급 투입했다. 시민들은 물병을 던지며 강력히 저항했고, 전경들은 서서히 무교동쪽으로 후퇴했다. 시민들은 "독재타도" "명박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후 3시 45분께부터 전경들이 시민들에게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해 격한 충돌까지 예상되고 있다. 한편 서울역을 지나친 운구차량은 도보 속도로 용산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버스 전용차로로 가고 있는 운구차량은 시민들에게 둘러쌓인 상태다. 50대 남성은 운구차 앞에서 큰 절을 두 번 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천천히 가라" "빨리 가는 게 중요하냐" "밤새라도 갈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오후 4시께 운구차량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경찰차가 20여 대 투입됐지만 시민들이 되돌려 보냈다. 경찰에 대한 반감 때문에 오히려 운구차량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노무현을 살려내라" "살인마를 처단하자" ▲ 29일 경복궁 앞에서 영결식을 마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추모행렬이 광장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29일 경복궁 앞에서 영결식을 마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인 시민들 사이를 지나 서울광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신 : 29일 오후 3시 10분] 흐느끼며 고인의 이름을 부르는 시민들,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 29일 경복궁 앞에서 영결식을 마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청와대를 등지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9일 오후 1시 57분 서울광장 노제가 끝났지만 시민들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했다. 영구차가 떠날 채비를 갖추자, 시민들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향해 밀물처럼 밀려갔다. 도종환 시인이 "운구차량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고인을 보내기 힘든 마음은 이해하지만 보내주시라"고 호소했지만 사람들은 고인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사랑합니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손수건을 입에 틀어막고 흐느끼는 이부터,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떨군 이도 있었다. 앞서 사전 행사 사회를 본 김제동씨도 사회 내내 울먹였다. 그는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오늘은 좀 슬퍼해야겠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좀 미안해하겠다, 지키지 못했다"며 슬픔을 나타냈다. 또 "우리들 가슴 속에, 마음 속에 큰 비석을 세워 영원히 기리겠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뜻을 밝혔다. 슬픔에 젖은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영구차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김제동씨가 "바보 대통령 그러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웠던 앞으로도 영원히 마음속에 자랑스러울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을 맞이하겠다"며 영구차 도착을 알리자 일제히 일어나 영구차를 향해 움직였다. ▲ 2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 노제에서 한 추모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를 들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본격적인 노제는 김명곤 전 참여정부 문화부장관의 제식선언과 함께 시작됐다. 높게 올라간 크레인에 탄 이가 "해동조선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훠이~ 훠이~"라며 망자의 혼을 불렀고, 이어 국립국무용단의 진혼굿이 펼쳐졌다. 안도현 시인은 노 전 대통령에게 추도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를 바쳤다.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기꺼이 바보로 부를 수 있게 해줘 고마워요. … 미안해요. 붉은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의 추도시에 이어, 안숙선 명창의 조창으로 진혼굿이 마무리되자 장시아 시인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했다. 크레인 위엔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현수막이 내걸렸고 하얀 꽃가루가 공중에서 뿌려졌다. 도종환 시인은 유서 낭독 이후 이렇게 말한 뒤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 불렀던 노래 '사랑으로' 제창을 제안했다. "그분은 가고 우리는 남았다, 그러나 고인이 남아있는 우리 가슴에 계신 걸로 생각하겠다. 이것이 이별이 아니라 긴 인연이 시작된다 생각하겠다." 수십만 명의 합창이 이어지자 건호씨와 정연씨는 오열했다. 대형TV를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흐느낌과 곡소리가 곳곳에서 터졌다. ▲ 29일 경복궁 앞에서 영결식을 마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청와대를 등지고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출처 : 1만 명 '자유발언'... "불의가 판치는 것 볼 수가 없다" '운구행렬' 지나갔지만...아직 서울광장에 남은 시민들 - 오마이뉴스
    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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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찌 살라고”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우리는 어찌 살라고” “대통령을 지낸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나라…. 이게 무슨 난리냔 말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를 맞은 24일에도 시신이 안치된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비롯해 전국 각 분향소와 인터넷 분향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충격에 휩싸인 조문객들의 발길과 댓글이 이어졌다. 정부와 노 전 대통령 측이 이날 오후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미 전국 곳곳에서는 국민적 추모열기가 가득했다. 고인이 한국민주주의 발전에 이룬 업적을 기억하고 계승하며 명복을 비는 애도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 못지않게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라면 평범한 우리들은 어찌 살란 말이냐”는 탄식과 애통함 역시 깊은 모습이다. 원망의 화살은 고인에 대한 검찰수사 방식에 쏠리면서,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검찰 책임론’에 대한 공방이 뜨겁게 일고 있다. 서울서 제주까지 전국이 추모열기정부ㆍ유족 國民葬 치르기로 합의‘검찰 책임론’속 시민 탄식 이어져 노 전 대통령을 공개소환하고 20일이 넘도록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은 ‘망신주기’가 아니었냐는 지적과 의혹을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 다소 지연된 것을 비난한다면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수사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항변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명품시계 등 자존심을 건드리는 내용을 일부 언론에 흘려 고인의 심리적 부담을 키웠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검찰과 일부 언론의 합작품’이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봉하마을을 찾는 일부 정치인과 조문객들 간 마찰을 예로 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사회갈등과 정치적 혼란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게 일고 있다. 한편 정부는 전국 각지에 공식 분향소를 마련하고 재외공관에도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준비되는 분향소는 25일 오전 8시부터 주한 외교사절을 중심으로 문상을 받고, 서울역 광장에 마련되는 분향소는 25일 오전 7시부터 일반 시민 위주로 조문을 받는다. /박영순기자 노무현 前대통령 유서 전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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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거부당했던 정동영, 다시 와 조문 마쳐
    [특별취재팀 : 봉하 현장] 취재 : 윤성효 김영균 선대식 이윤기 기자 / 총괄 : 황방열 기자 사진 : 유성호 기자 / 총괄 : 권우성 기자 동영상 : 김호중 기자 / 총괄 : 이종호 기자 ▲ 24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을 찾은 한 조문객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임시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오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오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봉하 분향소 동영상 현장중계 바로가기(사람사는 세상) [13신 : 24일 오전 11시 30분] 조문 행렬 이어져...정동영 의원도 오전에 조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 행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 24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23일 설치했던 임시분향소 옆에 새 분향소를 마련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새 분향소에 천막을 설치하고, 국화꽃을 진열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씨와 아내 김초혜 시인이 조문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유성호 조정래 유명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조정래 작가와 부인 김초혜 시인이 이날 오전 10시10분경 조문했으며,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조정래 작가는 봉하마을 회관 앞에 한동안 서 있다가 다른 장소로 옮겼는데, 기자들이 질문했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무소속 정동영 의원이 조문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유성호 정동영 23일 저녁 방문했다가 조문하지 못했던 정동영 의원이 이날 오전 10시40분경 조문했다. 또 추미애 의원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장관, 손학규 전 대표 등의 조문이 이어졌다. 추미애 의원은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이 물었지만 말을 하지 못하다가 "희로애락 없는 곳에 편히 가시길 빈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비통하다"고 짧게 말했다. 허성관 전 장관은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평소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분의 성격을 안다, 담백하고 마음이 여리고, 반듯한 분"이라면서 "(검찰 소환이) 자기에게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걱정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주위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신 것이다.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 가슴 뜨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모두는 이번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오체투지 순례단이 오전 11시 20분경 봉하마을에 도착해서 20여분간 기다린 후 조문했다. 조문행렬이 어어지나 오전 11시 30분부터 비좁았던 첫 분향소 대신 새롭게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사 취재진에게는 이날 오전 343개의 '비표'가 배부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 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불교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애도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법보종찰 해인사 독경단이 조문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법보종찰 해인사 불교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스님들이 24일부터 대거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과 독경을 진행했다. 법보종찰 해인사 독경단 스님 350명이 24일 오전 9시30분경 봉하마을을 찾았다. 주지 선각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은 먼저 분향소에 조문한 뒤 분향소 옆에 자리를 마련해 독경에 들어갔다. 스님들이 조문할 때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나와 맞이 했다. 25일 통도사, 26일 쌍계사, 27일 범어사 소속 스님들이 대거 릴레이로 참석해 독경할 예정이다. 선각 스님은 "심장이 녹아 내리는 거와 같다"고 말했다. 기자들을 만난 선각 스님은 "노 전 대통령은 해인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비록 운명하셨지만 대중들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선각 스님은 "대중들은 참회와 반성하면서 독경을 통해 고인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왔다"고 덧붙였다. 선각 스님은 "고인이 남긴 유언을 보면 삶과 죽음은 하나이고, 원망하지 마라고 했는데, 그 말은 불교적 소양에서 나왔다고 본다"면서 "유언에는 평소 고인의 생각과 불교성향이 담긴 것이라 보며, 그것이 민주화 완성의 원동력이었다"고 덧붙였다. 선각 스님은 "큰 거목이, 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대해, 불교계와 국민들은 안타까워 하면서 충격에 휩싸여 있다"면서 "오늘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독경을 계속하면서 고인의 극락왕생을 빌 것"이라고 밝혔다. [12신 : 24일 오전 9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일정 오전에 발표될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일정은 24일 오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8시경 사저에 모여 장례 일정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건평씨는 8시경 집에서 나와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향했으며 30여분 뒤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마을회관으로 다시 왔다. 노건평씨가 마을회관 주변으로 나오자 언론사 취재진들이 몰려 들기도 했다.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장례 일정 등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으며, 오전 10시를 전후해 발표가 있을 것 같다"며 "국민장으로 할지 아니면 가족장으로 할지 장례형식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마을회관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봉하마을에는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 전날부터 와서 밤을 지샌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은 "용산 참사도 그렇고 이명박 정부는 왜 이렇게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할 말이 없다, 국민들의 마음이나 우리들 마음이나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해 조문을 마친 김한길 전 의원은 "할 말이 없다, 비통하고 우리 정치현실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과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도 조문했다. 빈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흐느끼며 울기도 했다. 한 여성은 "믿어주는 국민들이 있는데 왜 죽어"라며 울기도 했다. 해인사 스님 350여명이 집단적으로 오전9시 30분께 조문을 진행했다. 한나라당 임태희 전 정책위의장은 24일 새벽1시 30분경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임 전 의장은 안희정 최고위원과 백원우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임 전 의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직 대통령께서 안타깝게 서거하신 것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꼭 조문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밤 늦게 다녀왔는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새벽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한 추모객이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즐기던 담배를 올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오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신 : 24일 오전 8시 20분] 밤새 조문 계속돼...형 건평씨, 노 전 대통령 사저로 ▲ 노건평씨 장례절차 논의 위해 봉하마을 도착 ⓒ 김호중 노건평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시신이 안치된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밤새 조문객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틀째를 맞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24일 아침에도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 빈소 주변에 모여 있다. 마을에는 진혼곡이 울려 퍼지면서 더 숙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마을에서 밤을 지새운 많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일부는 청소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노사모 사무실 입구에는 쓰레기 줍기 등의 활동을 벌일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마을회관에 안치되어 있는데, 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빈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조문하고 있다. 조문객은 서울과 광주 등 전국에서 몰려들고 있다. 일부 조문객은 20여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노사모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를 찾기도 한다. 경찰은 마을에서 2km 가량 떨어져 있는 본산공단 입구에서 교통통제를 하고 있다. 이에 조문객은 걸어서 봉하마을을 찾고 있다. 빈소 앞에는 아침에도 국화꽃을 들고 조문객이 줄을 지어 있다. 서울에서 왔다고 한 백효성(36)씨는 "어제 친구 전화 받고 서거 소식을 알았다"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광주에서 부인․남매 가족과 함께 온 김상철(39)씨는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에 집에서 출발해 봉하마을에 왔다"면서 "노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고 하니 초등학생인 큰애는 이해한다며 기꺼이 따라 가겠다고 해서 가족이 같이 왔다"고 말했다. 하루 전날 봉하마을에 와서 밤을 새웠다고 한 최한영(36)씨는 "나라의 큰 별이 떨어졌다"면서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역사적 지도자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장례 치를 때까지 봉하마을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국민장'으로 할지 '가족장'으로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 주변에서는 이날 오전에는 결정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법원으로부터 '일시 석방' 결정을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24일 새벽 1시30분경 봉하마을 집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건평씨는 이날 오전 7시50분경 왼쪽 팔에 완장을 끼고 집에서 나와 노 전 대통령 사저로 갔다. 비슷한 시각, 문재인 전 비서실장도 사저로 향했다. 사저에 있는 권양숙 여사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장례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마을과 진영공설운동장까지는 김해시가 조문객들을 위해 제공한 대형셔틀버스 6대가 운행중이며, 각계에서 보내오는 조화도 줄을 잇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법보종찰 해인사 독경단이 조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법보종찰 해인사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조문을 마치고 나오며 슬퍼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신 : 24일 새벽 3시 50분] 봉하마을 앞 길게 늘어선 추모 촛불... 장례 절차 아직 논의중 새벽 3시 50분 현재까지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교통이 벌써 끊긴 시각인데도 봉하마을로 걸어들어오는 조문객들이 많다. 빈소 앞 분향소와 노사모 분향소에도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조문객들이 아직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주차장에 마련된 조문객 접대소에도 약 300여 명 가량의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을 회관 옆 자갈밭에는 조문객들이 둥그렇게 촛불을 켜놓은 채 삼삼오오 앉아 있다. 새벽이 깊었지만, 울음소리도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봉하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돌아가는 조문객들이 놓고 간 촛불들로 '촛불길'이 만들어졌다. 가로등도 없는 봉하마을로 들어오는 도로 오른쪽으로 촛불들이 길게 줄을 지어 길을 환히 밝히고 있다.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비서관 숙소에서는 아직 국민장인지, 가족장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9신 : 24일 새벽 2시] 건호, 정연씨 빈소에서 사저로...분향소 또 설치 새벽 1시 53분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씨와 딸 정연씨가 마을회관 안 빈소에서 나와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들어갔다. 침통한 표정의 건호씨는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걸었고, 그 뒤를 이어 정연씨 부부가 사저로 향했다. 몇몇 취재기자가 뒤를 따랐지만, 대화는 없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마을회관 빈소 앞 마당에 또 하나의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조문객이 너무 많아 일반인들을 위해 만든 분향소로 나중에는 영결식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또 이와 별도로 노사모에서 회원들을 위해 마을입구 노사모 회관에도 분향소를 만들어놨다. [8신 보강 : 24일 새벽 1시 30분] KBS, 차 빼라! 조중동, 나가라! 23일 자정이 지났지만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봉하마을 입구에는 시민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마을회관 앞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추모객들은 상주들의 안내에 따라 4~5명씩 짝을 이뤄 조용히 빈소에 들어서는 중이다. 경황없이 추모객을 맞은 터라 준비된 흰 국화가 부족해 외부에서 꽃 배달도 이어지고 있다. 빈소 주위에서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등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빈소가 너무 혼잡해서 마을 입구에 위치한 노사모 회관에 임시 분향소를 마련했다. 추모객들은 빈소와 임시분향소 두 곳으로 나뉘어 헌화하고 참배를 하고 있다. 노사모는 봉하마을 입구 노사모 회관에 대형 펼침막 2개를 걸었다. 검은색 바탕의 오른쪽 펼침막에는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였고, 왼쪽의 펼침막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새겨졌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흥분을 참지 못한 일부 노사모 회원들은 곳곳에서 취재기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24일 새벽 0시 20분께는 KBS 방송차량 앞에 몰려들어 "KBS, 차 빼라!"고 요구했으며, 몇몇 사람들은 철제 간이의자를 들어 방송차 문을 내리치기도 했다. 결국 KBS 취재 차량은 새벽 1시10분경에 봉하마을 바깥으로 차를 빼버렸다. 앞서 저녁 8시30분에는 취재기자들이 빈소 주변에서 노트북을 펴자 흥분한 추모객들이 몰려들어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다. 일부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몰아세운 조중동 등 보수언론 기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기자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다녔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기자석으로 마련된 테이블을 점령하고 "모든 기자들은 나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나서서 말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한때 기자들 모두 노트북을 접고 일어서야만 했다.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도 마을방송을 통해 "슬프고 힘들더라도 오늘은 노 전 대통령님의 뜻을 기억하자"면서 "언론의 취재 자유를 보장하고 취재에 불편이 없도록 우리가 돕자"라고 여러차례 호소하기도 했다. 이해찬 전 총리-정세균 대표 등 장례 절차 협의 중 한편, 24일 새벽 0시 40분 현재 이해찬 전 총리 등 참여정부 인사들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은 봉하마을 비서관 숙소에 모여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직 대통령 예우를 갖춰 국민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노 전 대통령의 뜻대로 조용히 치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례 절차 등은 이날 아침이 돼야 공식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 23일 저녁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문재인,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시로 마련된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옮기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저녁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신 : 23일 밤 11시] 정동영 의원도 조문 못하고 발길 돌려 밤 10시께 정동영 의원(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부인과 함께 봉하마을 입구에 도착했지만, 노사모 등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발에 조문을 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시민들은 "배신한 정동영이 여기올 자격이 있느냐"고 외쳤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항의에도 빈소가 마련돼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김 전 의장을 본 시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비판하더니 무슨 낯으로 여길 찾아왔나, 철판 깔았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특히, 명계남씨는 김 전 의장에게 다가가 "맞장 뜰 사람 없어져서 좋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 전 의장은 이에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기자들에게 "슬프다, 슬퍼해야할 때"라고 짤막하게 말한 후 마을회관으로 들어갔다. 밤 10시 30분께 이해찬 전 총리가 부인과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술 한 잔을 따른 후, 아무런 말없이 조문을 마쳤다. 이날 조문에 참여한 참여정부 인사들은 비통한 심경을 나타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심정을 묻는 질문에 "말로 형언할 수 있겠어요? 솔직히 벼락 맞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할 말 많고 생각은 많고, 다들 할 말이 많겠다"면서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천호선 전 대변인은 울먹거리며 "난 지금도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남아 있는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명예를 지켜내고 뜻을 이어나가야할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무슨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백원우 의원은 "지금은 무슨 말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말 할 자격이 없다"며 "나는 울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심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기자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문을 한 정치권 인사들은 "비극적"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인권, 자유 등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인데, 이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인권과 자유를) 지켜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수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자"고 덧붙였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가적인 비극이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적 평화적 선거에서 대통령을 선출했고 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뒤에도 존경받고 사랑받기를 바랐다. 민주화를 갈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슴 속에서 열망했던 것"이지만 "이런 비극적인 일은 갈망했던 국민들의 염원을 꺾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호 경남지사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을 찾아 모든 지원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경남도 차원에서 필요하면 모든 조치들을 하고 행정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필요한 시설이나 물자에 대해서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문을 마친 정치권 인사들은 마을회관 근처에 있는 노 전 대통령 비서관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한명숙 전 총리, 원혜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인근 식당에 모여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인 이재우 진영농협 조합장은 "3일 전 저녁 통닭 두 마리를 갖고 사저에 들어가서 노 전 대통령 가족을 만났다"며 "그때 아들과 부인이 함께 있었는데, 노 전 대통령은 특별한 말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당신은 잘 산 인생이다, 용기를 갖고 사소, 당신을 위해 울 사람이 많다'고 했더니 노 전 대통령은 웃기만 하고 특별한 말이 없었다"며 "한 시간 정도 가족들과 있다가 나갔는데 막상 이런 일 당하고 보니 할 말 없다"고 말했다. ▲ 한승수 총리 쫓겨가 "사람 죽이고 조문이냐?" ⓒ 김호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신 : 23일 밤 10시 30분] 한승수 국무총리 조문 못한 채 발길 돌려 ▲ 한승수 국무총리가 23일 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경남 봉하마을에 들어서려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저지되어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한승수 국무총리가 밤 9시 50분경 버스를 타고 봉하마을에 도착했으나 문상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한 총리는 빈소가 차려진 곳에서 500여m 떨어진 마을 입구까지 왔으나 문상을 하지 못하고 버스 안에서 문재인·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났다. 한 총리는 세 사람과 버스 안에서 대화를 나눈 뒤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김종민 전 청와대 대변인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한 총리가 들어갈 수 없는 입장이다. 문재인, 이병완, 유시민 세 분에게 대신 조문하고 것으로 하고 내일이나 상황 봐서 다시 조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을 입구에선 노사모 회원 등 수백 명 사람들이 "이명박은 물러가라 훌라훌라" "한승수는 물러가라 훌라훌라"를 외치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정연씨가 운구행렬을 따르며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정연씨가 운구행렬을 따르며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신 : 23일 밤 9시 20분] 봉하마을 조문 시작...아들 건호씨 하염없이 눈물 흘려 저녁 8시 45분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봉하마을 마을회관 앞에 임시분향소가 설치되면서 조문이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 그는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고 계속 어깨를 들썩거렸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쉽게 절을 하지 못했다. 힘겹게 절을 끝내고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조문을 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계속해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 김원기 전 국회의장, 문희상 국회부의장, 정대철 전 의원과 송민순, 천정배, 유시민 등 참여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낸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한편, 마을회관 정면 주차장에 천막 1개당 16명이 들어갈 수 있는 조문객용 천막 20개가 설치됐으며, 이 천막들 근처에서 200명 정도가 촛불을 들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음식을 준비하는 천막 4개가 설치됐으나 음식재료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마을 측은 방송을 통해 "너무 황망하게 일을 당하는 바람에 준비가 원활하지 않다.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은 친척들에게 음식을 갖고 오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또 마을 입구 노사모 회관 앞에 설치된 대형천막스크린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생애와 탄핵정국상황, 참여정부 인사들이 평가하는 참여정부 등의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4신 : 23일 오후 8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계란세례...조문 못하고 돌아가 ▲ 봉하마을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러 마을에 들어서자 시민들이 계란을 던져 이 총재가 탄 차가 되돌아가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봉하마을에 마련된 빈소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조문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서자 시민들이 조문을 저지하여 되돌아 가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봉하마을에 도착했지만, 노사모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로 조문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저녁 7시 32분께 버스를 타고 온 이 총재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봉하 마을회관 앞에 내리자,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지지자들은 이 총재를 향해 "이제와서 조문이냐" "살인자"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가 지킨다"고 외쳤다. 위협을 느낀 이 총재는 버스에서 내린 지 1분도 안 돼 다시 버스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 총재가 탄 버스를 둘러싸고 물병을 던지고, 계란을 던졌다. 버스 안에서 이 총재는 굳은 표정으로 정면만을 응시했고, 버스는 바로 봉하마을을 빠져나갔다. 한편, 봉하마을 곳곳에서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취재 중인 기자들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한 지지자는 "조중동은 취재하지 말고 가라" "KBS와 SBS는 똑바로 해라" "써야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라"고 외쳤다. ▲ 짓밟히는 '이명박 대통령 조화' 23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경남 봉하마을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를 일부 조문객들이 넘어 뜨린 뒤 밟고 있다. ⓒ 선대식 노무현전대통령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 도착한 전두환 전 대통령 조화에 일부 문상객들이 불을 놓고 있다. ⓒ 김영균 노무현 [3신 : 23일 오후 7시 15분] 성난 조문객들 이 대통령이 보낸 보낸 조화 밟아 오후 6시 55분에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도착했다. 조화가 분향소가 차려진 마을회관으로 옮겨지는 도중, 일부 조문객이 이 조화를 잡아 쓰러뜨리고 발로 밟았다. 결국 조화는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안내요원들이 흥분한 노사모 회원들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화가 도착하자 일부 문상객들이 이 조화에 불을 붙였으나 태우지는 못했다. [2신 : 23일 오후 6시 50분] 노 전 대통령 운구차 도착...'통곡의 장'으로 변한 봉하마을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하자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등이 빈소로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하자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등이 빈소로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오후 6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검은색 리본을 단 운구차가 봉하마을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봉하마을은 거대한 통곡의 장으로 변했다. 노사모 회원들은 노무현을 연호하며 주먹을 치켜들었고, 일부 회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차에서 내려져 마을회관으로 옮겨졌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 김만복 전 국정원장,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 백원우·이용선 의원 등이 노 전 대통령의 관을 들었고 한명숙 전 총리,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 이기명씨 등이 오열을 터뜨렸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노사모 회원들은 마을회관에서 마을 입구까지 약 100여미터를 길 양편으로 도열했고, 이들의 손에는 노란색 끝이 이어져 있었다. 봉하마을에는 정치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오후 6시 10분경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도착해 노사모 회원들이 도열해 있는 길 가운데로 지나갔다. 그러자 일부 노사모 회원들은 이들에게 "검찰 수사 저렇게 됐는데, 당신들은 뭘 했느냐"며 거친 욕설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하는 <부산일보> 호외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조금 뒤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 심상정 전 대표, 조승수 의원 등이 도착하자, 한 노사모 회원은 "노회찬이 너, 노무현 깔 때 기분 좋았지, 더러운 X"이라고 욕설을 하기도 했다. 천정배 의원과 김희선 전 의원,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도 봉하마을에 왔다. ▲ 봉하마을에 마련된 빈소에 민주당 정세균 대표, 이강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조문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신 : 23일 오후 6시 10분] 23일 오후 5시 40분께 부산대학교 병원을 출발한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6시 30분께 봉하마을에 도착할 예정이다. 현재 봉하마을 마을회관 앞에는 흰색 천막과 천막으로 둘러싸인 분향소가 준비 중에 있다. 분향소 현장에는 수백명의 노사모 회원과 마을 주민, 일반 시민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모인 이들은 대부분 침통하고 우울한 표정 속에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취재 기자들도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 검찰 수사와 관련한 언론들의 보도태도에 화가 많이 난 모습이다. 따라서 취재 기자들은 현장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장 분위기를 의식한 듯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오후 5시 30분에는 봉하마을 회관 뒤쪽 비서관 숙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와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이 모습을 나타냈다. 세 사람은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분향소가 마련되고 있는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다. 이기명 후원회장은 '심경이 어떠시냐'는 질문에 "마음 아픈 것? 말해서 뭐하느냐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태영 전 대변인은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걸었다. 조 전 홍보수석은 걸어가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한편, 현재 분향소 옆 주차장에는 문상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대형 가스레인지와 솥단지가 준비 중이다. 마을회관 앞쪽 주차장 앞에는 문상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대형 천막 10여개가 펼쳐졌다. 오후 5시 50분 현재, 봉하마을 입구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문상객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마을입구 앞 1킬로에서부터 차량통행이 통제되는 바람에 걸어서 마을로 들어오는 중이다. 출처 : 서거 이틀째...점점 더 길어지는 애도행렬어제 거부당했던 정동영, 다시 와 조문 마쳐 - 오마이뉴스
    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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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객 급증 탐방로 지ㆍ정체를 피해 샛길 이용
    북한산국립공원 입장객이 급증하자 탐방로 지ㆍ정체를 피해 샛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자연생태계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입장료 폐지 이전 연간 480만명이던 입장객은 지난해 1000만명을 돌파했다. 당국은 샛길 이용 금지 캠페인에 이어 일부 구간에 대한 휴식년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15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북한산국립공원의 정규탐방로가 74개(160.26㎞)인 반면, 입장객이 급증하면서 샛길은 이보다 4배가 넘는 365개(221.8㎞)가 최근 새로 발생했다. 두 길을 합치면 382㎞로 서울에서 밀양까지의 거리다. 마치 거미줄처럼 엉킨 탐방로와 샛길들은 북한산을 약 605조각으로 파편화시키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샛길은 노면 보호장치가 없어 토사유출로 나무와 풀이 말라죽고 있다. 동ㆍ식물의 서식처를 빼앗는 것은 물론 이동에도 장애물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산국립공원 입장객이 입장료 폐지 이전에 비해 배 이상 급증, 연간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샛길이 정규탐방로의 4배로 늘어났다. 무분별한 샛길 이용으로 토사유출과 식생고사 등 자연자원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북한산국립공원은 도시 중심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연자원”이라며 “최근 산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탐방객이 늘어나면서 자연훼손이 심각해 국립공원의 가치가 위협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공단은 북한산, 도봉산 등 북한산국립공원이 탐방객의 무분별한 샛길 출입으로 최근 훼손이 심해짐에 따라 대대적인 ‘정규 탐방로 이용’ 캠페인 활동을 오는 16일부터 전개한다. 공단은 주말인 16일과 23일 2회에 걸쳐 북한산국립공원 10개 지점에서 신한은행, 도시철도공사, 서울메트로, 한화프라자호텔 등과 합동으로 1000여명이 참석해 샛길이용 금지 캠페인을 펼치기로 했다. 캠페인을 통한 계도가 끝나면 샛길이용 등 위반활동에 대해 단속활동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훼손이 심한 구간에 대해서는 ‘특별보호구’로 지정, 일정기간 출입을 못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태경 공단 환경관리팀장은 “북한산국립공원은 서울의 허파기능을 담당하고, 시민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유산”이라며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도록 정규탐방로만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m.com
    20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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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전체 노인의 4∼5%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 10개월째를 맞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전체 노인의 4∼5%에 그치고 있다.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말까지 서비스 대상자는 21만4480명으로 65세 이상 노인 510만9644명의 4.19%에 그쳤다고 13일 밝혔다.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요양 시설 치료 또는 요양보호사의 가정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장기요양을 신청하면 의사 소견서와 신체 기능 등 52개 항목 조사를 거쳐 심사에 통과한 사람만 1∼3등급으로 나뉘어 대상자로 선정된다.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1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이 제도가 갖는 의의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치료나 재활을 받지 못한 노인들이 건강을 회복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지난 7일까지 장기요양시설 등에서 서비스를 받아온 2만9542명 가운데 7053명(23.9%)은 건강이 호전돼 요양 인정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하지만 재정 문제에 따른 까다로운 선정 조건 때문에 혜택을 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난해는 37만6030명이 서비스를 신청했으나 57%인 21만4480명만 대상자로 선정됐다. 2010년부터 대상자 범위를 확대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체 노인의 7∼8% 정도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수익을 노리고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민간 요양시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다. 현행 제도는 독거노인, 치매노인 등이 직접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는 사정을 감안해 대리신청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일부 민간 요양시설 관계자들은 이를 악용해 건강한 노인을 치매노인인 것처럼 속이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하게 요양시설 급여를 타내기도 한다. 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한 민간 요양시설장은 서비스를 받을 필요 없는 사람까지 포함해 400명을 대리신청한 경우도 있다.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요양시설 종사자의 대리신청은 제한할 방침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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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ㆍ남부지법서..다른 법원, 회의 결과 주시
    오늘 첫 판사회의..`申 사태' 기로 // 연합뉴스 | 입력 2009.05.14 12:24 // 서울중앙ㆍ남부지법서..다른 법원, 회의 결과 주시 이용훈 대법원장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신영철 대법관이 공식 사과를 하면서도 사퇴할 뜻은 없음을 밝힌 가운데 14일 전국 법원 처음으로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서 단독판사회의가 열린다. 또 전국의 상당수 법원이 이날 회의를 주시하면서 판사회의 소집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이날 회의 결과가 신 대법관과 관련한 사태의 향방을 가름할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116명의 서울중앙지법 소속 단독판사 중 74%인 85명의 요구에 따라 이 법원 단독판사회의 의장인 이성복 판사(49ㆍ사법연수원 16기)는 이날 오후 6시30분 서울법원청사 1층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개최한다는 소집 통보를 한 상태다. 일선 법관들의 의견수렴의 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5년 단독판사회의라는 기구가 만들어진 후 매년 두 차례씩 정기회의가 열려왔지만 이번처럼 일선 판사들의 요구에 따라 특정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임시 회의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이날 회의 공식 안건은 `재판권 독립을 위한 제도 개선 요구' 및 `전국 법관 워크숍 결과 보고 및 의견수렴' 등이다. 하지만 이는 의제에 불과할 뿐이고 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태 이후 대법원 진상조사단과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보며 자제해왔던 각종 의견이 자연스럽게 표출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판사들은 고위 법관이 개별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법원장에게 주어진 광범위한 배당 재량권을 제한하는 방향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을 `엄중 경고'하고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은 것이 적절한 판단인지도 토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 대법관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전통적으로 다른 법관의 거취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법원의 오랜 관행을 들어 이에 반대하는 입장도 나올 것으로 보여 팽팽한 의견 대립도 예상된다. 논쟁 끝에 회의에서 참석자 과반의 찬성으로 특정한 결론이 나오면 이는 이인재 서울중앙지방법원장에게 보고되고, 별도로 대법원에 직접 전달될 수도 있다.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들도 33명 중 21명의 소집 요구에 따라 이날 오후 1시 단독판사회의를 갖는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김예영(34. 30기) 판사가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서 "신 대법관의 사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 5명의 판사가 신 대법관 사과 이후 용퇴를 촉구하는 글 등을 잇따라 올렸다. setuzi@yna.co.kr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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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시력 장애인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
    서울시내 보도(步道)에 검은색과 스테인리스 점자블록이 늘고 있어 저(低)시력 장애인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서울시가 점자블록 설치에 장애인 의견을 적극 수렴키로 했다.서울시는 "앞으로 점자블록을 새로 깔기 전에 장애인단체와 학계 등의 의견을 폭넓게 받아들여 장애인 안전을 도모하겠다"며 "이달 중 이들과 모임을 갖고 점자블록 색상과 규격 등에 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12일 말했다.하이힐을 신은 여성들은 걷기에 불편하다며 일부 여성단체에서 점자블록 설치를 반대하고 있어, 구간을 줄여 횡단보도나 계단 앞 등 중요한 위치에만 점자블록을 설치하되 안전성이 높은 황색으로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시각장애인들이 점자블록을 따라 걷다 보면 유리문과 충돌하는 구조로 돼 있는 명동지하상가 12·13번, 14·15번 출구 점자블록은 본지 보도 이후 60㎝ 정도 옆으로 옮겨졌다. 상가를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은 점자블록 위에 유리문이 설치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택했지만, 검은색 점자블록은 그대로 사용해 장애인들 반발은 여전하다. 전국 저시력인 연합회는 13일 서울시에 점자블록 교체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로 했고,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도 이날 성명을 낼 계획이다.[곽수근 기자 topgun@chosun.com] 조선일보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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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살림 핵심 직책 방치… 내부도 술렁거려
    국세청장의 부재 사태가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 해 160조원이 넘는 국세를 걷어 나라살림을 꾸리는 국세청장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 것은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역성장이 예상되고, 세수 목표 달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세청은 청장 부재에 따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또 국세청장의 장기 공백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미숙한 국정운영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12일 국세청에 따르면 한상률 청장이 지난 1월19일 그림 상납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4개월 가까이 허병익 차장의 청장 직무대행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는 국세청 출신 인사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고위 관료를 중심으로 국세청장 후보를 물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4개월째 적임자를 찾지 못한 채 국세청장 자리를 비워두는 인사 난맥상과 부실한 정부조직 운영의 실상을 드러냈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지난해 말 차장으로 승진한 허 청장 직무대행을 적절한 시기에 청장으로 승진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국세청장 부재 여파로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 세무조사를 총괄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자리도 4개월째 공석이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청와대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서울청 조사2국장을 허 차장이 임명하기에 벅차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매년 2월 열리던 전국세무관서장 회의도 두 달 늦춰진 지난 4월에야 열렸다. 국세청의 한 해 세정 방향을 정하는 전국세무관서장 회의가 청장이 없는 상태에서 열린 것은 국세청 개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침체로 정부의 올해 세수목표 달성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민간소비 감소로 부가가치세가 크게 줄었고, 이달 말 확정신고가 마무리되는 소득세 징수도 목표치를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국세 징수실적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조3000억원 줄어 정부의 연간 세수감소 예상액을 넘어섰다. 최근 검찰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세무조사 무마 로비 수사 과정에서 국세청은 ‘청장 없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지난 6일 검찰이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했고, 당시 세무조사를 지휘했던 조홍희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전 서울청 조사4국장) 등도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서울청 조사국의 서류와 컴퓨터는 물론 관용차와 자가용 승용차의 내부도 샅샅이 뒤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청장이 있었으면 검찰에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국세청은 지난 11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업무지원을 위해 파견나간 직원 20명을 모두 복귀시키겠다고 검찰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가 검찰의 만류로 파견기간이 끝난 직원 3명만 복귀시켰다. 자칫 ‘권력기관 간 알력’으로 비화될 뻔했던 이런 움직임은 검찰에 대한 국세청 직원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익대 김유찬 교수는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올해 국세청장의 장기공백이 지속되면 세정의 효율적 운영이 불가능하고, 나라살림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서의동기자 phil21@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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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위에 신고되는 불공정거래 관련 분쟁 급증
    경기침체 여파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되는 불공정거래 관련 분쟁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공정위 서울사무소는 올해 들어 4월 말까지 접수한 사건은 661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44% 증가했다고 12일 밝혔다.유형별로 보면 가맹 관련 사건이 97건으로 169%, 일반 불공정거래 사건이 205건으로 38%, 하도급 관련 사건이 269건으로 35%, 소비자 관련 사건이 90건으로 23% 각각 늘었다.가맹 사건은 영업환경이 나빠진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게 가맹금을 반환하지 않거나 가맹 계약 때 정보공개서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신고가 많았다.일반 불공정거래 사건은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거래 조건을 변경하는 행위가 다수였다. 예컨대 A회사는 판매위탁 대리점 거래관계를 5년 동안 유지하다가 최근에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율을 일방적으로 낮췄다.하도급 관련 사건은 건설 분야에서 공사대금 및 추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공사대금을 깎는 행위에 대한 신고가 많았다. 소비자 관련 사건의 경우 분양 아파트 허위.과장 광고와 전자상거래 분쟁이 주류였다. 공정위 서울사무소가 처리한 사건은 올해 들어 4월 말까지 총 710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24% 늘었다.처리 사건 중 법 위반이 인정된 '경고' 이상 조치 대상은 114건이었고 유형별로는 하도급법 위반 53건, 소비자법 위반 46건, 공정거래법 위반 12건, 가맹사업법 위반 3건이었다.공정위 안영호 서울사무소장은 "중요하거나 복잡한 유형의 사건에 대해서는 '자체 쟁점사건 심의회'를 개최해 처리하고 있다"며 "분쟁조정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사건처리 기간도 줄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hojun@yna.co.kr (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기사출처>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b%b6%88%ed%99%a9&contents_id=AKR20090511178900002
    200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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